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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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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Aug 17. 2022

아니 도대체 부모님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으라고

도대체 부모님들은 어떻게 살으라고, 


엄마가 LH임대주택 청약하나 넣어달라고 부탁했지. 어무니는 노트북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고, 프린트도, 공인인증서도 없으신 분이다. 이번에 어찌어찌 임대주택이라도 들어가볼까 하셔 나에게 청약을 어떻게 하는거냐고 부탁하시는데, 평생 청약통장하나만 부여잡고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듯 모아오신 분에겐 이 엄청난 여정이 그저 혼돈 그 잡채인 것이다. 그래서 대신 해보기로 했다. 나는 젊으니까.


일단 어무니의 인증서가 필요한데 인증서를 받으려면 인터넷뱅킹이 필요하고 인터넷뱅킹을 하려면 지점에 방문해서 신청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은 없고, 그냥 인터넷으로 하려니 OTP도 필요하고,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려면 중부지방 폭우처럼 쏟아지는 exe를 하나하나 설치한 뒤 기억도 가물가물한 통장 비번을 겨우 다그치듯 찾아내 누르니 신의탑23층 빌런처럼 이용자ID를 쳐넣으라는 메시지가 뜨는데 그걸 찾으려면 또 통장번호를 찾은 후 핸드폰 인증을 해야하고, PASS인증은 어림도 없으니 대략 문자로 어쩌고 해서 이것까지 어찌 해결하고 나면 그 인증서로는 뭐가 안된다고 날 가볍게 비웃어 버리는 미친 디지털자본주의 메시지에 뒷목을 잡고, 그럼 네이버인증서는 되나? 해서 어무니보고 네이버에 가입하라고 해서 인증서를 발급받으려 했더니 또 인터넷뱅킹이 필요하다고 지랄맞은 농협뱅킹 개미지옥으로 다시 돌아오는 상황에 헛웃음만 그저 나와 방금 이별을 통보받은 홍상수 영화 남주같은 아련한 표정으로 멍때리고 있다가 이렇게 된 이상 현장방문으로 간다!! 하고 청약센터 들어갔더니 이건 전국인터넷 영재반들만 쳐모아놓은 건지 청약공고 확인하는 버튼이 사혼의 구슬조각 찾기가 따로없어서 눈을 부비며 한참 찾다가 에라이 시벌 검색으로 겨우겨우 운정신도시를 쳐서 어찌어지 찾은 다음, 빌어먹을 양식을 5개나 다운받은 후 hwp로 열어야 하는데 도대체 랩탑도 없는 엄마는 이걸 다운받아서 뭐 손으로 열어야 하냐. 도대체 공공기관과 한글은 왜 이렇게 친한건지 내가 내 고등학교 베프와도 이 정도로 친하진 않은데 이놈들은 거의 뭐 자웅동첸가 뭔가, 어찌 그리 UI도 개똥같은 한글사랑을 거의 세종대왕도 한 수 접고 다시 묻히실 만큼 고집하는데 운이 좋아 어찌어찌 열었다고 쳐도 요즘 세상에 프린트해주는 곳을 찾으려면 거의 젤다의 전설이 따로 없는 오픈월드 모험을 해야 하고, 주민센터에서 등본떼라 초본떼라 양식써라 홈택스가서 재산증명해라 이래버리는데, 홈택스는 컴퓨터도 없는 하층민들에겐 다다를 수 없는 귀족들의 도시 엘리시움같은 느낌이라 우주에 떠있는 안식의 땅을 바라보는 허랑한 표정으로 잠시 숨을 고른 뒤 하나하나 수기로 써야한다는 비극적인 통보를 엄마에게 전한 뒤, 내가 내일 사무실가서 인쇄해서 종이4장을 퀵으로 쏴줄테니 당신께선 기상과 동시에 주민센터로 뛰어가서 등본과 초본을 떼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 퀵을 받자마자 현장 접수처로 달려가라는 CIA첩보물같은 지령을 전달하고 나니 



이딴 썩어빠진 디지털 세상 다 뿌셔버리고 매드맥스 워보이들과 함께 문명세계를 때려부순 후 발할라로 가고싶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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