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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Oct 26. 2022

내가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

왜 나는 그냥저냥 먹고만 살고 있을까.

이 글을 자기비하나 열등감 뭐 이런 것이 아니야. 난 지금 매우 객관적, 이성적이야. 딱히 큰 성공을 바란 것은 아니야. 하지만 연말이 되면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왜 난 여전히 꽁냥꽁냥 살고 있을까.


<연말이 되면>

내 일이 일인지라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나 큰 조직을 운영하는 분들을 좋든 싫든 만나게 되는데, 가끔 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해.

나처럼 고작 4,5명 조직을 꽁냥꽁냥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TIPS에 선정되면 어떤 기분일까. 시리즈C까지 받고 센터필드에 입주하게 되면 기분이 좋을까? 연매출500억이 넘어가면 어떤 느낌이지? 존나 크세르크세스같은 자비를 외치게 될까?

이런 소소한 궁금증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같은 자문자답을 하게 만드는거지.


아마 이런 복잡한 심경엔 SNS가 주는 현타도 한몫했을거야. 물론 SNS 속 그들 또한 현금이 어딘가에 물려있을거고, 나름의 고충과 목디스크가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원래 SNS는 매일매일 자랑거리를 찾는 곳이잖아. 남들이 지지배배 자랑을 해대는 걸 보다보면 나도 뭔갈 올리고 싶잖아. 근데 뭐가 없어. 오늘 먹은 탱글한 식감의 미친 새우속살이 달콤한 만두 사진 정도를 올려야 하나?






<생존 문제 있어?>

생각해보면 먹고사는데는 문제가 없어. 이 정도가 되면 그냥 잘사는 건가 싶긴 하지. 맞아, 난 분명 잘은 살고 있는 것 같애. 하지만 어설프지.

이런 어설픔이랄까


어설픔이란 무엇일까.

브런치에서 많은 구독자와 조회수를 보유하고 있어. 하지만 이젠 모두 과거형이지 :) 그걸 뛰어넘는 콘텐츠는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어. 책을 7권이나 썼어! 많이 쓴거지. 근데 딱히 뭘 할 정도의 인세는 벌지 못했어. 지금까지 낸 책을 모두 합쳐봐도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베스트셀러의 발목조차 따라가지 못하지.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4,5명 정도되는 회사지. 연매출은 3억 남짓이야. 작은거야. 사업이라고 하긴 뭐하지. 약간 동네 당산나무 아래에 오고가는 동네사람들 그릇갯수까지 알고 있는 은희네수퍼 정도의 자영업 정도랄까. 클라이밍을 1년반 넘게 했어. 보통 이정도면 이제 리딩도 하고, V6,7까지도 막 하더라고. 하지만 난 그 정도는 아냐. 그냥저냥 중간정도. 초급도 중급도 아닌 뭔가 애매한 지점의 수준이지.


이것도 못한 사람도 있는데 뭐냐!! 자랑이냐!! 돌려까는거냐!!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줘. 이 글의 주제는 나는 왜 아무것도 못할까...가 아니야. 난 분명 능력이 있고 잘해. 내 삶 정도는 이끌어갈 힘이 있어. 사실 여러분들도 그럴걸? 뭔가 다들 자랑거리들이 있어. 근데 딱히 당당히 내놓기에는 좀 애매한 그런 것들 있잖아. 난 '크게' 성공하지 못했냐가 핵심인거야. 하긴 하는데 왜 어설프냐는 거지.


그래, 나는 왜 매사에 이렇게 어설펐을까.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01

작은 인정을 좇았어. 인터뷰, 뭐 강의 이런 거 있잖아.


줍줍한거지.

사실 나는 인정욕구가 정말 강한 타입이야. 이게 묘한 딜레마인데, 나는 내가 어느 정도 천재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그래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존재란 말야. 그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게 남들의 인정같은거야. 이렇다보니 짧게 자주 인정받고 싶은거지.


인터뷰, 작은 강의, 뭐 소소한 커뮤니티... 이런 곳에서 어깨으쓱하며 젠체하는 건 꽤나 재밌는 일이야.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거든. 도파민 뿜뿜인 경험들을 하고 나면 왜 강의가 안들어오지? 왜 날 섭외안하지? 하면서 쓸데없는 열등감에 집착하게 돼. 그리고 본래 해야하는 것보다 이런 소소한 이벤트에 집착하게 되지. 보통 인터뷰는 내 이야기 하는거고, 강의는 다들 내 이야기를 들어주잖아. 세상 어디에도 내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주는 경우는 없거든. 


본업으로 돌아가잖아? 씹히는 게 일상이야. 역제안을 해도 씹히고, 영업을 뛰어도 잘 안먹히고, 클라이언트도 자기 말을 더 많이 하지. 그래서 저런 곳에서 자꾸 만족감을 얻으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어. 본업에서 부딪혔어야 할 문제였는데 말이지.



02

부정적인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삼았어.


불안..

앞서 말했듯 나는 우울보다 불안이 큰 사람이야. 불안해서 뭔갈 끊임없이 하지. 그리고 어설픈 결과물을 빠르게 내놓아. 대신 우습게 보이고 싶진 않으니 자존심을 세우지. 뒤로는 어설픔이 부끄러워서 나를 몰아부치는 편이야.


이건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어. 빠르게 공부할 수 있었고, 급격하게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 늘 조급하고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웠으니까. 항상 나를 미워하며 채찍질할 수 있었거든. 근데 20대때까지는 이게 괜찮았다? 근데 30대 후반이 되니까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만으론 살 수 없어. 그러면 점점 괴팍해질 뿐이야. 사람이 나이먹으니까 안좋은 면이 점점 진해지더라? 고집도 세지고, 꼰대력도 상승하고, 짜증도 다채롭게 지랄맞어져.


나이먹고 둥글어진다는 건 멀티버스 이야기야?


여튼, 이젠 다른 에너지를 찾아야 할 때야. 불안은 자꾸 그릇된 선택을 하게 만들어. 그리고 종국엔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03

안락한 삶, 치열한 삶을 합리화하고 지냈어.


그 그릇된 선택에 뭐가 있는 줄 알아? 바로 안빈낙도 부심이야.

하아,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서 남는게 뭐가 있어. 한 번 밖에 없는 삶, 즐기고 나를 찾고, 내가 행복하게, 없어도 소소하게 그렇게 살아야 하는거지. 쩝. 찌든 서울현대인들 같으니라고...

라며 치열한 그들을 비하하는거야. 그리고 지금의 어설프고 적절히 가난하고, 적절히 배부른 삶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거지. 이게 욜로다. 이게 워라밸이다. 이게 Own life 다. 이러면서.


그리고 컨셉충이 되는거야. <나는 지방에 가서 살래. 나는 남아공가서 살란다.> 그럼 주변 사람들이 뭐라그래. '우와..자유로워.멋있어.......' 그러겠지. 근데 과연 그런 삶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진짜 그거 하고 싶은건가? 글쎄... 사실 존나 비싼 워커힐 애망빙을 아무렇지 않게 조질 수 있는 찌든 서울현대인을 원했지만 가질 수 없으니 졌잘싸 합리화하는 거 아닐까. (신레몬 합리화라고 했던거 같아)



04

흩어진 경험과 마구잡이식 지식이 가득했지.


대충 이런 느낌의 난장판

어쨌든 치열하게 살아왔어. 그 흔적같은 지식과 경험들이 있지. 치열함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뒷처리가 까다로워. 정리없이 손에 잡히는대로 오기로 긁어모으거든. 이를 악물고 뭐가 되긴 하는데,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 클라이밍할 때도 그러더라고. 진짜 뒤질 것 같아서 막 아무거나 잡고 안간힘을 쓰고 올라가다보면 뭘 어떻게 올라왔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아. 체력이 길러지는 게 아니라 진이 빠지지. 지식과 경험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조금씩 정리가 되고 있어. 아주아주 최근의 일이지.


05

아이디어에서 자부심을 가지면 망하더라고.


가난이 무서운 게 뭔줄 알아? 뭐든 안되는 이유를 찾는다는거야.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하지만 자존심은 지키고 싶잖아. 그때 나타나는 행동패턴이 '저거 내가 생각했던 건데' 야. 우리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해요와 같은 의미지. 여러분들도 비슷한 걸 경험했을 거야. 내가 3년 전에 생각했던 거 나중에 다 서비스로 나와서 엑싯하고 떼돈벌고 뉴스나오고 하잖아. 그럼 아쉽지? 아 그때 할걸. 코인도 그때 할걸. 주식도 코로나때 할걸. 껄무새되는거지.


물론 껄무새를 짓밟고 지금부터라도 바로 뭔갈 실천하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통 껄무새 종특은 그 자체에 만족스러워한다는거야. '난 언제든 그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 이런 논리지. 난 똑똑하니까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어. 사실 그런 마음이 컸던거야. 그렇게 30대 중반이 넘었고, 지금은 뭘 하고 있나?




06

그래도 열심히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지금은 뭔갈 하고 있어. 늘 하고 있지. 하고는 있는데 왜 안되지? 이게 바로 그 성장의 권태기인가? 사실 아니다? 성장의 권태기 아냐. 그냥 더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은거야. 솔직히 내 심정이 그래. 왜 더 성공을 못했냐...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 이걸 다 내 탓으로 돌리면 내가 너무 비참해지니까 적당히 사회와 부모탓을 댈 수 있지. 실제로 그게 큰 이유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난 이런저런 이유로 20대 시절처럼 막 이악물고 뭔가를 악착같이 하고 있지 않아. 힘이 좀 빠진 느낌이야. 그럼에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 생각만 해. 바쁜 것과 열심히는 다르다? 요즘엔 바쁘기만 한 것 같아.




07

두려움과 원칙을 착각했어

나이가 먹어갈수록 무서운 게 많아져. 등따숩고 배부를수록 이불을 벗어나긴 어렵지. 두려움은 상황을 왜곡해. 나 자신도 왜곡하지. 없던 삶의 원칙도 생겨. 사실 난 '근성'을 중요시하는 원칙이 있었어!! (언제부터...?)

갑자기 생긴 원칙으로 다른 변화를 거부하는거지. 사실 두려움을 문장으로 바꾼 것 뿐인데. 그게 왜 삶의 좌우명이 되는거지. 아니 원래 그런건가?




08

배포가 작았어


배포가 작아. 이게 수천만원씩 코인에 꼬라박는게 배포가 아니야. 그러나 될 것 같은 아이템은 빨리빨리 만들어내고, 누군가와 동업도 해보고, 퇴사로 빨리빨리하고, 뭔가를 할거면 통장을 털어서 시도도 해보고... 이렇게 거침없이 움직였었어야해. 돈이 없으면 1,000원, 10,000원 쓰는게 덜덜 거려. 이게 진짜 짠하고 안타까운 일이야. 잃을 게 없으면 더 과감해질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잃을 게 없으면 주변의 먼지조차 소중해지는거야. 배포가 작아지면 작은 돈으로 작은 성과밖에 못내. 그리고 그 작은 성과에 만족하고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지. 그걸 다시 레버리지해서 뭔갈 할 수 있냐? 노노..못해. 왜냐? 너무 소중하거든. 가진 걸 과감히 버릴 줄 알았어야 하는데.




09

개똥철학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세상을 규정하고, 원리를 언급하는 개똥같은 것들)


세상 네놈!


철학은 분명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고차원적인 의미로 만들어주는 사고활동이라고 배웠어. 하지만 모든 철학이 그런 것은 아냐. 내 꼴린대로 세상의 원칙을 규정하고, 비관적인 전제들을 동원해 개똥철학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나는 잘했는데 세상이 꼬져서 내가 지금 이 모양이다.


결국엔 이런 결론으로 귀결되는 철학말이야. 이 무적의 논리앞에선 니체도 흄도 마르크스도 칸트도 한 수 접고 갈수밖에 없다고. 세상탓은 못참지. 게다가 거기에 적절한 지식과 꼰대스러운 말투가 결합되면 그야말로 나는 갓오브유니버스가 되는거야. 근데 비참함을 곁들인. 아마 내 30대초반도 그러했던 것 같아. 나는 왜 이모양일까...에 대해서 한 두번 생각해 본 게 아닐꺼 아냐. 점점 결론이 발전했겠지. 생산적인 쪽으로 발전하면 다행이겠지만, 보통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거든. 어떤 진실과 마주해야 하니까. 그러니 변명이 화려해지는 쪽으로 발전한거야.



10

이런 글이나 쓰고있어


연례행사처럼 이런 반성 내지는 자기관찰같은 형태의 글을 쓰는 것도 사실은 이유야. 생각이 많은거지. 쓰잘데기 없이. 뭐 이런것도 나의 특성 중 하나니까 꼴배기싫거나 한심하진 않아. 하지만, 좀 더 굉장해지고 싶다면 다른 걸 했을거야. 하다못해 NPL투자라도 알아보거나, 클라이언트 영업뛰러 좀 더 멀리까지 달려갔겠지. 근데 지금 벌건 대낮에 이런걸 쓰고 있는 이유는 뭘까... 브런치가 글 좀 쓰라고 독촉해서인가...


브런치는 게으른 걸 참지않아..


사실 와디즈 펀딩 성공해서 그거 자랑하려고 브런치를 켰었어. 근데 갑자기 이런 글이 되버렸다고. 가을타는 건가. 여튼 와디즈는 성공했어. 그런 소소한 성공들이 있긴 해. 당연히 그런 것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 


다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내 삶은 꽤나 적당히 보여주기 좋을 만큼 바쁘기만 한 것이 아닌가... 싶긴 하더라고. 내가 요즘 막 뭔가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게 있나... 음..







안되겠다... 글 쓰다보니 현타가 많이 오네.
지금이라도 영업뛰러 가야겠어. 글 마친다.


정신차리자 정신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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