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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Mar 09. 2023

#디자이너 #for생존과부귀영화 #조언 #20가지

알아두면 나쁘지 않은 것

이제부터 하려는 말은 완전히 '옳은 것'이 아니지만 보통 이런 콘텐츠 쓸 때는 안 지키면 죽을 것처럼 써야 하기 때문에 주제넘은 말투를 써보았습니다. 현장에서 정말 오만육만칠만 상황들을 다 겪어보았어요. 물론 짬은 벼슬이 아닙니다. 단지 마치 등산같은 겁니다. 거기 돌 뒤에 돌아가면 지름길이 있다. 정도를 알고 있는 등산아재 관록이랄까요. 그런 느낌으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그렇고 우리 회사 멤버들도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디자이너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너무도 급변하는 가운데, 저도 디자인회사를 슬슬 정리하려고(폐업이 아니라..ㅎㅎ 살짝 포지션을 바꾸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이 와중에 느끼는 몇 가지들을 주절주절 해보겠습니다.


주절거려 보겠습니다.







01

클라이언트의 말을 그대로 믿지말자. 그걸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닐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독성이 안나오니 폰트를 키워달라고 한다면 폰트를 키우기 전, 그를 진정시킨 후 폰트 하이어라키를 명확히 잡고, 배치를 시선 위치에 따라 바꿔보자. 간단히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방법은 우리에게 있지 클라이언트에게 있지 않다.


02

무슨 모피즘은 그냥 롱패딩, 숏패딩 유행과 비슷하다. 이런 건 매년 등장하는데 근거도 출처도 분명치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무슨 모피즘같은 단어를 클라이언트에게 써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 단어를 아는 사람은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 (페친들만 알고 있다.)


03

정크사이언스에 속지말자. 파충류뇌는 없다. 그건 그냥 우주가 까만 도화지같다고 비유한 것일 뿐. 황금비도 없다. 그저 유명해진 이론일뿐, 실제론 8:5 단비를 적용한다. 반복적인 자극 이후 의미가 추출되지 않는 게슈탈트 붕괴이론은 심지어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온 단어이고,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시선이 흐른다는 시선이동원칙도 사실 죄다 퍼퓰러(popular)심리학에 불과하다.


04

견적을 쓸 땐 내가 일하는 프로세스대로 항목을 나눠 쓰자. 그래야 중간에 스탑되어도 거기까진 요청할 수 있다. 통으로 얼마라고 적는 건 몹시 위험하다. 항상 항목을 잘잘하게 나누도록 하자.


05

수정3회 이상 얼마 추가라고 적는것보다 애당초 비용을 높여받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돈을 주고 수정을 요청할 때 기대치와 요구가 높아짐은 물론, 궁극적으로 잦은 증액과 지불이 계속되면 일이 끝나도 클라이언트 만족도는 떨어지게 될 것이다.


06

거북목은 만성피로와 두통을 유발하고, 반쯤 누운 자세는 당신을 3년 내에 걷지 못하게 만들것이다. 어깨통증은 그냥 딱 죽고싶을 정도로 짜증나고, 허리통증은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나올 정도로 고통스럽다.

곧 죽을거다.




07

영어로 쓰여진 게 항상 대단한 건 아니다. 새로운 영단어에 현혹되지 말자. 대부분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08

형용사없이 시안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는 시안의 목적과 제작원리, 어떤 부분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그려진 시안을 묘사하는 것은 설득이 아니다. 직관적인, 심플한, 역동적인, 발랄한 이 4단어부터 빼보자.


09

'느낌'이란 말을 빼자. 그건 말그대로 느낌일 뿐이다.


10

이론은 중요하지만 냅다 적용하진 말자. 이론은 모든 것이 통제된 상태에서만 유효하다. 우리가 만드는건 오만 인간들의 욕망과 변수가 뒤섞여있는 상태다. 이론은 내 가설의 근거일뿐, 진리가 아니다.


11

클라이언트 뒷담화는 외국에서 까도록 하자. 귀는 어디에나 있고, 여러분 앞에서 맞장구쳐주는 사람의 마음속은 내 생각보다 더욱 변덕스럽다. 뒷담화를 할거면 당신의 선택지는 두 개 뿐이다.

1. 죽을 때까지 들키지 않기.

2. 시발 선전포고다.


생각보다 1번은 쉽지 않다. 뒷담화를 할 땐 2번을 각오하자.


12

아티클을 모으는 건 마음의 안정을 주지만, 조각지식은 친구들끼리 얘기할 때만 통한다. 아티클에서 읽은 지식들은 보통 두 마디 하고나면 할 말이 없다. 중요한 건 더 깊은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13

예술을 하고싶다면 확실히 예술을 하자. 예술은 개쩔어야 한다. 문신과 민머리, 수염, 과도한 피어싱, 오버사이즈 린넨셔츠나 개량한복 두루마기같은 걸 휘두르면 효과가 더욱 배가된다.

요즘엔 이런 눈빛도 큰 효과가 있다



14

아래 4가지 원칙을 외우자. 클라이언트가 뭔갈 해달라고 했을 때


A ) '네'라고 하면 맘은 편하지만 여러분이 죽는다.

B ) '아니오'라고 거절하면 속은 시원하지만 관계가 상한다.

C ) '네, 그런데' 라고 제안하면 내 일은 2배가 되지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

D ) '아니오, 그런데' 라고 제안하면 리스크가 2배로 커지지만 감탄을 선사할 수 있다.


15

자뻑의 시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깨지는 시기가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에게 겸손과 평화는 가장 피해야할 것 중 하나다.


16

잠수의 후폭풍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으면 그 위험성을 실감할 수 없다. 어느 정도로 위험하냐면 고객에게 시발좆같네 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지경이다. (진짜로 하진 말자)


17

돈을 달라고 말하자. 내 생각보다 클라이언트는 흔쾌히 돈을 준다. 항상 쫄아있는 건 내쪽인 것이다.


18

'저희가 만들 수 있는데 손이 모자라서 의뢰했습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전속력으로 도망쳐라.

마!! 마떼요!!


19

'저희랑 하시면 다른 곳에 소개도 시켜드리고, 커리어에 도움도 되실거고, 앞으로도 많이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어쩌고' 라는 말을 한다면 돈을 깎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뭔가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 굳이 까칠하게 굴 필욘없지만 '이번에 제대로 받고 다음에 또 오시면 그때 네고해드리겠다.' 고 하는 편이 낫다.



20

포트폴리오에 시안 사진을 때려박는 건 몹시 좋지 않다. 하나만 넣어도 좋으니 시작과 끝을 설명하며 서사와 맥락을 부여하자. 채용하는 사람은 '결과물'이 아니라 '어떻게 일하는지'가 더 궁금하다. '결과물'만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을 디자인자판기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

AI의 발달로 디자이너가 사라질 거라는 전망들이 많다. 디자이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라질 디자이너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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