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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an 02. 2023

우리 멤버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했다.

연초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며, 그들에게 전하는 편지

회사가 뭔가 변한다는 건 사실 두렵고 어려운 일일 겁니다. 저는 지난 일주일간 잠을 거의 제대로 자지 못했어요. 경기침체에 대한 매출고민도 있었지만, 이 와중에 직원수를 늘리면서 꽤나 고민이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대표는 뭐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작은 회사니까 모두가 일을 해야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더니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가 일러를 잡고, 구글독스에 글을 쓰고, 직원이 남기고 간 것들을 직접 뒤치닥거리하면서 지치기 시작했고, 멤버들은 이런 저에게서 미래를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조차도 내가 어떤 비전을 선사해야하는지 헷갈렸으니까요. 깊은 고민끝에, 내가 '건강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문화를 직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친절과 배려라는 포장으로 뒤덮인 방만과 안일함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개인주의적이고 서로 관심 없이 '일만 하는' 조직을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학습한 으쌰으쌰 조직을 향한 거부감과 좋은 대표가 되고싶어하는 인정욕구가 만들어낸 잘못된 명제였어요.

그래서, 2023년의 시작을 준비하며. 눈이 벌개져서는.


우리가 자랑처럼 말했던, 인간적유대는 없다는 문장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복지나 약속들도 지웠습니다. 딱 하나만 신경쓰기로 했습니다. '피드백'을 완전히 정착시키자. 그렇게 멤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안녕하세요 애프터모멘트의 소중한 동료 여러분. 새해를 맞아, 여러분들께 무한한 행운과 건강, 성장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연말내내 묵직히 저를 누르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던 두통같던 문제를 바라보고, 하나하나 풀어헤쳐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소 민망한 진실을 발견했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그것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하려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극히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고,

서로 그것을 침범하지 않는 문화를 고수했습니다.


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저는 여러분과 대립하려 하지 않고, 개인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개인적 관심이란, 주말에 어떤 영화를 보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일을 할 때 동기부여가 되고, 어떤 칭찬에 성장하는지 그의 자아를 들여다보는 일을 말합니다.




이것은 결국

고의적 거짓을 말하게 했습니다.


우린 직접적인 피드백이 없이, 격려와 좋아요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을 호소했을 때 괜찮다며 이건 내가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일을 가져왔고, 손에서 일을 덜어내고, 문제가 있었지만 괜찮다고 덮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선 서로의 성장의 기회를 뺏고 조직내에 안도의 한숨만을 가득하게 만들었을 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서로의 결과물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았고,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 진솔하게 나누지 않았습니다. 대신 서로가 공유한 시안에 칭찬 이모지를 남기는 것으로 피상적인 친절을 나누곤 했습니다. 사실 개중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있음에도 말입니다.


물론 피드백이란 한국사회에서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린 대립이 없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상사와 직원의 관계를 규정하는 수많은 정보들로, 우린 '높은분' '피고용자' '좋은 상사' 라는

선입견의 높은 벽에 수많은 말을 삼켜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명백히 성장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선 회사가 여러분들에게 충분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명확한 칭찬과 조언을 통해 업무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생각합니다. 그것을 해내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제가 이 역할을 애써 외면하거나 방만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스러움과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완전한 솔직함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어디선가 문제들이 곪아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것은 조직에게 무엇보다 큰 위협이자, 서서히 모두를 피폐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종의사결정을 하고, 회사를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닌, 그런 역할을 지닌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프로젝트를 리딩하고,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튼튼하게 만들며,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팀장님은 전체 그림을 이해하고, 각 멤버들의 업무수행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우린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고, 서로의 시각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때문에 피드백이 아닌, '아웃사이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용어란 의외로 중요한 것이더군요)


제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지. 명확한 방향성을 수립하고 있는지. 일관된 기준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지 여러분들의 진실된 조언이 필요합니다.저 또한 여러분들이 어떤 점을 어려워하는지. 더 개선될 방법은 있는지. 회사가 지향하는 역량에 부합하는지 진실된 조언을 나눌 것입니다. 우린 때론 진실이란 단어를 두려워합니다. 이는 아프고, 당황스러우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스러워졌을 때

우린 훨씬 가벼운 마음과

온전한 자아로 함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제언이 아닌 선언이자, 절실함입니다. 이런 대화에 익숙해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몇주, 몇개월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완성된 진솔함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없는 성장과 자유를 선사할 것이라 믿습니다.


다만, 우린 완전한 솔직함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쩌면 잘못된 표현과 방식으로 자칫 도움이 아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대화하고 표현하는 법도 명백히 공부가 필요합니다. 


우린 매일 30분 이상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방향을 맞추고, 더 진솔하고 구체적으로 조언하고 칭찬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말하는 법을 함께 공부하고, 입을 열 것입니다. 어색하지만 의무적으로 서로를 관찰하며 세세한 것 하나까지도 말해줄 것입니다. 비난과 지적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상대를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이 제도가 굳건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착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서투르지만, 더 이상 제 역할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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