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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Dec 17. 2022

사실 난 두 사람과 결혼했다.

자유로운 한 사람과 불안한 한 사람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불안한 그녀 이야기>


두 사람 중 불안한 쪽은 확실히 말수가 적은 편이라 많은 얘길 듣지 못했다. 결혼을 했음에도 그 사람은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한 번 등장하면 존재감이 확실한 편에 속했달까. 그녀는 발을 종종 거렸고, 쉽게 우울해졌으며, 강박적으로 일을 하거나 아니면 모든 걸 내려놓았다. 박자를 찾던 발을 쉽게 삐걱거렸고, 그녀의 불안과 함께 널을 뛰는 날이면, 그에 맞는 장단을 찾기위해 꽤나 어버버버 하곤했다. 적어도 처음엔 그러했다.


물론 요즘도 그녀는 영상을 만들며 자기 손으로 똥을 싸고 있다며 엉엉 울고있고, 직장에 가고싶다고 소리를 지르다가, 요즘엔 내 회사에 취직시켜달라고 날 압박하고 있다. 여행을 앞두고는 밤을 새며 죽을 듯이 일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주변 사람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옷에 묻은 치약이나 양말과 상의의 깔맞춤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불안함에 있어선 나도 뒤지지 않은 석사급 불안러인데, 그녀는 때로 우리 업계에서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의 불안함을 선보이곤 한다. 물론 그 빈도가 잦진 않아서 아직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자유로운 그녀 이야기>


지금에서야 그녀의 불안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그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겨우 한 사람에게 적응되나 싶으면, 어김없이 자유로운 그녀가 나타나는데 이 분도 사실 만만치는 않다. 그녀는 십 몇년째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 대기업을 때려치고 스타트업을 하다가 대강 말아먹고, 갑자기 유튜버로 전향해 이름을 떨쳤던 대한민국 1호 북튜버였다. 순도가 매우 높은 ENTP로써 일을 벌려야 하고, 통제욕구가 높으며, 가까운 사람에게 무척이나 엄격하고, 작은 모임과 회식, 수다를 좋아하는 외향형 인간이다. 갑자기 1주일씩 여행을 떠나자고 하기도 하고, 결혼도 느닷없이 베트남에 집을 사기 위한 경제적 MOU체결처럼 이루어졌다. (물론 아직도 사진 않았고, 살 돈도 없다.) 단순히 자유를 추구하는 성향을 넘어, 그녀는 굉장한 실행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침없는 새로운 사업에 큰 돈을 투자하기도 하고, 생전 해본 적 없는 북카페나 출판사도 일단 그냥 차려본다. 맞다고 생각되는 일은 힘을 들이지 않고 뚝딱뚝딱 빠르게 만들어내는데 그 완성도가 엄청나진 않아도 어쨌든 시작해서 구색을 갖추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놀라운 건 그녀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현실은 사실 그녀의 아이디어 중 1% 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일러스트를 그리고도 싶어하고, 캐릭터사업도 하고싶고, 가족들과 집을 지어 긱워커를 위한 숙박업도 하고 싶어한다. 에어비앤비, 다리에 끼고 자는 베개 제품개발, 출판사, 강의플랫폼, 통일관련 콘텐츠도 만들고 싶다.


처음엔 이러다 망원굴다리 아래 2인용 텐트깔고 사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녀도 그저 스치는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말했고 덕분에 적당히 한 귀로 흘릴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실현된 것도 몇 개 있다.)


그녀와 나와 무척이나 상반된 존재였다. 연애 초기엔 이 사람의 뇌구조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생각난 건 바로 말해야 하는' 화법이 무척 무례하고 당황스럽다고 느끼기도 했었다. 그녀의 대화패턴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상식적인 맥락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모자장수*'화법이라고 이름지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그 모자장수가 맞다.)


이를테면 일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내일 강아지 옷 뭐입힐지, 그리고 관리비를 냈는지 안냈는지를 물어보고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가거나 그냥 재벌집막내아들을 보기도 한다. 앞 단의 궁금한 점이 해결되지 않아 물어보면 대부분 대답을 안해주거나, 이틀 뒤에 갑자기 대답해주기도 한다. INTJ입장에선 충격적인 대화법이지만, 이도 많이 적응되었다.



<함께 사는 이야기>

ㅋㅋㅋㅋㅋ

이 둘은 놀랍게도 한 사람이고, 나는 그녀와 살고 있다. 배우자지만, 그녀의 상황은 결혼 이후에도 드라마틱하게 바뀌고 있다. 새로운 이슈와 새로운 고민이 매일 태어난다. 혼자서 자기 생계를 이끌어나가야 했던 20대의 당찬 청년은 이제 30대 후반이 되었다. 결혼도 했고, 연차도 쌓였고, 고집도 쌓였지만 여전히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고 통장은 허전하기 그지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생계와 직원들의 월급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대표에게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선택은 오롯히 스스로 풀어야 하는 숙제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남김없이 짊어져야 했다. 결혼을 했다고 그 짐이 나뉘어질 것 같은가. 물론 배우자가 쫄딱 망해 1인용 텐트를 들고 망원굴다리로 가는 것은 막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함께 해나가는 것일 뿐, 그 과정에 훈수를 둘 순 없다. 그녀는 한 회사의 대표이자 프리랜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드는 그녀의 삶에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덤덤히 지켜보는 것 뿐이다.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단 걸 서로 알고 있기에 우리 와인이나 조지며 강아지를 껴안고 마라샹궈를 먹는다.



 그리고 서로 귀담아 듣지 않는 불안을 토로하고, 다음 날 일어나 스스로 해결한다. 어젠 울었지만 오늘은 해결한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듯 옷을 챙겨입는 모습이 너무도 익숙해 가끔 먹먹하다. 화장으로 외투로, 마스크로 전날 밤의 불안을 가리고 자유로운 그녀가 출근한다.



<그녀가 쓴 이야기>


책을 쓰겠다고 매일 2,3시간씩 꼬박꼬박 앉아서 원고를 쓰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녀는 눈이 빨개졌고, 탈진상태에 가까워져서야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투고했던 출판사로부턴 몇 번의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조건은 팔리는 스토리로 컨셉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녀는 원고를 바꾸지 않았다. 이윽고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버렸고, 소중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불안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가득 담은 짠내나는 작은 책. 이것은 흡사 호크룩스다.


그녀는 이번책을 애정했다. 거기엔 엄마가 보면 가슴 아릴 내용들과, 내가 몰랐던 이야기, 그리고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들이 있었다. 이 책은 얼핏 프리랜서나 크리에이터를 위한 몽글몽글한 에세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명확히, 이 책은 헌사다. 20대 어느 날 좁디좁은 오피스에서 그 흔한 생수하나도 없는 빈 냉장고, 아무것도 없는 가구, 빈 책상에서 몸만 누이며 일하던 그녀는 경의선 숲길을 걸으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눈이 부어있던 과거의 어느 날, 그 수없는 하루하루에 전하는 헌사와도 같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짐들을 안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고. 그리고 조금은 단단해졌다고.



배우자가 쓴 책이니 광고라고 쓰진 않고싶다. 가볍게 읽으면 짠내나는 스토리이고, 자세히 읽으면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은 작은 의지이다. 그녀는 이 책을 쓰며 울지 않았다. 오히려 몹시 행복해했고, 수도 없이 진행했던 '남의 북토크'가 아닌 '내 북토크'를 처음으로 하며 손을 떨었다.


그녀의 반려자로써 이 책이 참으로 사랑받았으면 한다.



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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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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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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