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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Sep 10. 2023

회사에서 그걸 본 순간 들리지도, 말할 수도 없었다.

악마를 잡으러 출근합니다 제5화

이번에 새롭게 기획한 10회 분량의 사내 판타지 소설입니다 :) 처음부터 보셔야 꿀잼이고, 중간에 갑자기 보시면 뭔말인가 싶으실 거에요! 이곳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와 이름, 상황은 가상이고 특정한 기업, 성별, 종교, 신앙, 동물, 음식, 신념, 가치관 등을 비하하거나 저격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01 천상의 오피스


두 번째 악마를 물리친 후 냐봉과 엠제이는 잠시 천상 오피스의 탕비실에서 커피타임을 가지는 중이었다. 사실 육체가 사라진 지금 딱히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맛도 제대로 느껴지진 않지만 왠지 피곤이 몰려왔던 건 매일 3잔은 마셔대던 커피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천상의 커피라고 별반 다른 맛은 아니었다. 1년 정도 지난 굳은 다크 로스팅 카누 맛. 


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 문득 어제 악마를 퇴치하며 무모했던 엠제이의 행동에 대한 피드백이 시작됐다. 냐봉은 없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진짜 팀장님은… 가끔 그렇게 급발진하는게 있다니까요. 평소에는 안그러다가…어휴]

[엠제이, 아무리 그래도 목걸이 없이 그렇게 뛰어드는 건 좀 위험했어요.]

[그 땐 방법이 없었어요. 그리고 사실 그게 가장 정확한 방법 아닌가요?]


신은 엠제이의 말에,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뭐…….. 물론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이번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망각 그 놈은 덩치만 컸지 물들이는 속도가 느려서 겨우 먹혔던 거랄까요. 조금이라도 강한 녀석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버틸 시간조차 없을 거에요. 이를테면… 이번에 내려가 만나게 될 녀석같은…]


냐봉과 엠제이는 신의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뭔데요 뭔데요. 어떤 놈이길래 그래요. 쎄요?]

[두 사람 이전에 이 미션을 수행했던 사람들이…보통 이 녀석과 맞닥뜨리곤 실패했거든요.]

[왜요.]

[어떤 방식으로 공격하는지 밝혀내질 못했거든요. 그냥… 갑자기 끝나버렸달까.]


두 사람은 침을 꼴깍 삼켰다. 데이터가 정확히 없으니 이번에도 몸으로 부딪혀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신은 주머니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꺼내 엠제이에게 들어밀었다. 엠제이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며 물었다.


[이게 뭐에요?]

[엊그제 택배요청했는데, 그래도 딱 맞게 도착했네요. 겨우 구했어요. 엠제이는 영혼상태라 냐봉처럼 영혼계열의 무기가 없으면 실제로 악마에게 영향을 줄 수 없어요. 무기를 찾아볼까했는데, 저번에 창고정리하면서 다 버렸다더라고. 이 구슬은 무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일정 거리에 있는 주변 물건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해요. 염동력같은거랄까. 정확히는 물건의 에너지를 움직이는 것에 가깝죠. 실제 세상에선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일거에요. 어떻게 쓸지는 본인의 자유고… 여튼 이거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염동력…. 오 뭔가 멋있네요. 오오오..이거봐…]


엠제이가 구슬을 쥐고 고개를 돌려 책상위로 손을 뻗었다. 근처에 있던 연필이 둥실. 가볍게 들렸다. 엠제이는 신기한 듯 오오오를 연발하며 말했다.


[오오오오..이건 이름이 뭐예요?]

[이래라저래라]

[에?? 뭔 이름이..]

[와………직관적이긴 하네요...]


냐봉과 엠제이는 일제히 입을 벌렸다. 너무 대충 지은 이름이다. 커피잔은 바닥을 보였다. 엠제이는 작은 들숨을 들이쉬고 커피잔을 내려놨다. 신은 고개를 끄덕였고, 냐봉은 작은 단검 반려를, 엠제이는 주머니속의 이래라저래라 구슬을 움켜쥐었다.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는 '초월의 진'이 완성됐고, 엠제이와 냐봉이 진 위에 올라가려는 순간, 신이 말했다.


[지금 내려가는 곳은, 앞서 보았던 현실세계와 좀 달라요.]

[어떻게 달라요?]

[이제까진...현실에서 여러분만 볼 수 있는 악마를 상대했지만. 이번 녀석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면요?]

[내면의 세계. 즉 영혼상태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그곳으로 가게 될 거에요.]

[지옥같은 곳으로 가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레이어를 생각해보세요. 현실세계가 위에 놓인 레이어라면, 내면세계는 그 아래있는 레이어에요. 둘은 기본적으로 같은 형태지만, 한 쪽만 처참하게 변하기도 해요. 현실에선 웃고있지만, 속마음으론 맹렬한 욕설을 퍼붓고 있다면. 두 레이어의 풍경은 달라질 거에요. 아마 지금 내려가는 곳의 풍경도 그리 유쾌한 곳은 아닐 것 같아요.]

[속마음이 있는 곳이라니... 그러니까 어찌보면. 법과 이성이 없었다면. 이런 세상이 펼쳐졌겠구나... 하는 느낌이겠네요.]

[상상력까지 더해졌으니 더 판타지스러울 거에요. 더 이상하거나...]


그때 엠제이가 조금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영혼이 존재하는 내면세계라면. 우리와 같은 상태의 사람들이겠네요.]

[그렇죠]


엠제이는 잠시 텀을 주고, 조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들도 우릴 보고 공격할 수도 있나요?]


신은 입술을 말아 깨물곤, 몇 번 눈을 깜박인 후 입을 열었다.


[이론상으론 가능해요. 그러나 기본적으론... 현실세계에서 감정과 관계가 연결된 것들만 인지해요. 사람이 왜, 관심있는 것만 보인다고 하잖아요. 여러분은 그쪽 사람들과 직접 연결된 '유관자'가 아니니...일단은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긴 할 거에요. 하지만... 분명히 그들도 여러분을 볼 수 있고. 실제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요. 때릴 수도 있고.] 

[관심을 받으면 안된다 이런 말인가요?]

[가급적... 주의를 끌지 않는 것이 좋죠. 그들에게 자꾸 노출되고, 서로 물리력을 주고받으면 그 때부터 여러분도 유관자가 되거든요. 그리고 '소문' 이라는 법칙에 의해 삽시간에 여러분의 존재가 노출될 거에요.]


신은 엠제이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펼쳐보았다.


[그 구슬은 사람에겐 통하지 않아요. 물체에게만 통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물체를 다룰 땐 조심해야해요. 물체엔 내면이 없어서, 내면세계에서 움직인 사물은 현실세계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게 돼요. 멀쩡하던 A4용지가 쏟아지거나, 갑자기 복사기가 고장나는 것, 또는 방금까지 있던 USB가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아 그게..그것 때문이었어요?]


엠제이와 냐봉은 서로 마주보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꿈벅였다.

그 때 냐봉은 무언가 생각났다는듯 고갤 돌려 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왜요]

[아니 이 악마들이 원래 여기 직원들이었다면서요. 그럼 본명을 이미 알고 있을 거 아녜요.]

[몰라요]

[왜요?]

[우린 영어이름 닉네임 쓰거든요]

[.....아…별…참…가지가지…네요. 갈게요.]

[행운을 빌어요.]






02 악마는 보이지 않는다.



이 대화를 끝으로 눈 앞이 환히 열렸고, 아득한 한점으로 휘몰아치듯 발끝부터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느낌은 딱 수면 내시경하며 10부터 거꾸로 세는 느낌.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둘은 다시 사무실에 서있었다.


이미 사무실엔 먹구름이 낀 듯 뿌옇고 검은 안개가 드리웠고, 평범하지 않은 위화감이 가득했다. 내면의 풍경. 뭔가 불평불만이 가득하고 시끌벅적할 것이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이곳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중간중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만, 이어지지 않는 대화. 적막과 피곤한 표정만이 가득한 검은 사무실의 모습이었다. 아직 악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안개는 손으로 휘저으니 마치 물 속의 잉크가 아지러지듯 손의 궤적을 따라 부드럽게 흩어졌다. 


[이러다 또…갑자기 튀어나오겠죠?] 냐봉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한 손엔 반려가 들려있었고, 다른 한 손으론 목에 걸린 펜던트를 꼭 쥐고 있었다. 엠제이 또한 주머니 속의 이래라저래라 구슬을 만지작 거렸다. 오른손을 이용해 주변의 것들을 조금씩 들었다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둘은 잔잔한 걸음으로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겠지?... 너무 조용해서 말하기도 민망하네. 이번 상황이 …소통이라고 했죠?]

[네네.. 사실 소통의 악마면 그냥 우리가 미리 고민해서 아무 키워드나 던져봐도 되지 않을까요?]

[뭐.. 답정넌, 안들려, 쌉소리 이런거?...]

[딱 맞네요.]

[하지만 괜히 아무거나 던졌다가 정답에 가까워지면 녀석이 숨어버릴 수도 있다고 했잖아요. 만약 설건드려서 도망치면.. 기한을 넘겨버릴 수도 있다는 게…리스크가 좀 크잖아요. 어느 정도는 좁혀놓고 가야지]

[하긴.. 그렇긴 하네요. 잠시만요. 저기]


냐봉이 말을 멈추고 가리킨 곳엔 구석에 모인 몇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주워먹고 있는 듯 했다. 


[뭔갈..먹고 있는 것 같은데요?]


엠제이는 살짝 옆으로 돌아가 그들에게 좀 더 다가갔다. [읍!!!!!] 그 순간 엠제이는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손으로 틀어막고, 냐봉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가오지 말라는 듯 고개를 빠르게 휘저었다. 그들은 형체를 알 수 없는 물컹한 무언가를 토하고 다시 주워먹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의 입… 입이 뭔가 이상하다. 마치. 저것은 입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은 삼키지도 토하지도 못한 채 입에 있는 무언가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조용했던게..말이 없던 게 아니라..입에..]

[저게 뭔진 모르겠지만… 망각의 악마 때처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놈인가봐요. 그런데…형체가 보이질 않네요..]


냐봉과 엠제이는 다시 천천히 이동하며 풍경을 살피기 시작했다. 안개가 짙게 드리우긴 했지만, 안개 자체에 딱히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검은 안개는 사람들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것에 가까웠다.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걸 빼면 어떤 힘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안개는 악마가 아니다. 그렇다면… 엠제이가 냐봉의 어깨를 잡아 멈춰세웠다. 


[저기 두 명.]


엠제이가 가리킨 곳엔 팀원과 팀장인듯한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그리곤, 기괴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팀원의 입에서 물컹이는 무언가를 집어, 휴지통에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에서 나온 물컹이를 그 팀원의 입에 집어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짜..징그러워서 못봐주겠네…]

[도대체 저게 뭐하는 걸까요… 뭔가 말도 없고..딱히 행동도 없고…]


그 둘의 행동은 계속 반복되었다. 둘의 행동이 몹시 특이하긴 했지만, 그 자체가 어떤 위해를 가하는 느낌은 아니었달까. 엠제이와 냐봉은 이 기괴한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이 전까지는 그래도 평범한 상황들이 주어졌기에 사람들의 대화에서 유추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은 어떠한 단서도 없다. 


[냐봉님, 어떻게 생각해요. 아무래도 주제가 소통이었으니… 입에서 나오는 저 뭔가는 그런 ‘말’과 관련이 있지 않을… 냐봉?]


엠제이는 말을 이어가다 문득 냐봉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알아챘다. 엠제이는 손을 휘휘저어 냐봉의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


[괜찮아요? 듣고 있어요?]


냐봉은 무언가 넋이 나간듯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고, 어떤 대꾸도 없었다. 



03 마비된 냐봉



[아니 도대체 뭘 보고 있는…]


엠제이가 냐봉의 시선을 따라간 곳엔 여전히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입에서 뭔갈 빼고 다시 자기걸 집어넣는…이상한 행동. 그리고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냐봉. 분명 그녀의 목걸이는 멀쩡하다. 악마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닐텐데…


[냐봉님! 뭘 보고 있는거에요!]


엠제이는 냐봉의 어깨를 조금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냐봉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그녀의 눈은 여전히 그 둘을 향해 있었다. 엠제이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구슬을 이용할 방법은…?] 냐봉은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구슬을 꺼내 냐봉의 주머니에 넣어보았다. 구슬은 소유자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움직이게 해준다. 만약 냐봉이 어떤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대로 무언가가 움직이게 될 것이다. 냐봉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했다. 엠제이는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무언가를 바꾸거나 영향을 미치려는 게 아니야..그렇다면..]


엠제이는 다시 구슬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이번엔 냐봉의 눈을 가리고는 말했다.


[뭘 보고 있는진 모르겠는데, 지금 보는 게 분명 문제가 있는 걸거야. 왜 나는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냐봉!! 정신차려. 이게 무슨 일야 대체..!]


냐봉이 보고 있는 것을 똑같이 쳐다보았지만 엠제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왜 냐봉만 굳어버린 것일까… 그리고 저게 악마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엠제이는 다시 두 손으로 머리를 탁탁 치며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토사물을 다시 주워먹는 사람들, 또는 토하지 않으려고 막고 있는 사람… 아무도 말을 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간간히 들려오는 목소리도 이어지지 않는다. 목소리가 들린다는 건… 일단 저 물컹이는 토사물이 ‘소리’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얘기. 그렇다면 뭘까…어떤 상징일텐데.. 도대체 입에서 뭐가…………. 가만.


[목소리도 물컹이도 입에서 나오고 있다. 물컹이는 말하지 못한 생각같은 것인가. 그래… 목 끝까지 나왔지만 말하지 못한 생각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


엠제이는 옆에 있던 A4용지에 스카치 테이프를 붙여 냐봉의 이마에 붙여놓았다. 일단 풍경을 보지 못하게 임시방편으로 막아놓은 채, 주변을 천천히 돌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생각이 물컹이라면.. 토하는 건 뭐지. 그리고 다시 삼키는 건…? 생각을 토한다..? 그리고 다시 삼킨다?...왜? ]


그때였다. 냐봉이 자신의 이마에 있던 A4용지를 떼고, 엠제이를 쳐다봤다. 눈은 퀭해져 있었고,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동공은 있었지만, 어딘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냐봉!! 괜찮아요???? 이제 움직일 수 있는거야? 무슨 일인거에요. 왜 그래!]


엠제이의 호들갑에도 냐봉은 무표정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냐봉의 입가에서 무언가가 흐르기 시작했다. [저들과 같은 토사물!!...] 냐봉은 아무 말도 없었다. 엠제이는 냐봉의 입에 흐르는 것들을 닦아내며 냐봉의 어깨 너머로 다시 풍경을 살폈다. 


[뭐지..뭐지!! 자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저 둘을 보고 냐봉도 저들과 같이 변했어. 저 둘이 뭔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나머지 사람들도…?? 전부 이렇게 전염이 된건가! 그럼 일단 저놈들부터!]


엠제이는 오른손으로 책상 3개 너머에 있던 의자를 가리켰고, 손을 뻗어 기괴한 두명을 향해 휘저었다. 의자는 쏜살같이 달려와 토사물을 주고받던 두 명을 덮쳤고, 우당탕 소리를 내며 각자 나자빠졌다. 엠제이는 주변의 파티션을 가리켜 그들을 향해 미는 시늉을 했고, 파티션은 둘 사이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서로 가로막힌 둘은 대낮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처럼 허우적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주저앉아 고장난 사람처럼 행동이 느려지더니, 결국 멍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혹시라도 세뇌라도 됐다면 냐봉의 반려가 위험하다. 엠제이는 냐봉의 손에서 반려를 가져와 움켜쥐었다. 순간 냐봉의 이상한 모습을 눈치챘다. 공허한 눈동자였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느낌이 아니었달까. 냐봉은 속이 울렁거리는 듯 상체를 움찔움찔 거렸고, 억지로 나오려는 토를 막으려는 듯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엠제이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구슬!! 구슬!!>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구슬을 다시 냐봉의 주머니에 옮겨넣었고 그 순간 냐봉의 입에 쌓여있던 토사물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나와 주변에 흩어졌다. 


[이 끈적이는 것들을 토해내고 싶었던 거야!.... 스스로는 할 수 없지만, 의지는 있었던 거였어. 염동력을 빌려 그것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거고!...]





03 이름을 말해


냐봉은 콜록거리며 사래들린 기침을 몇 번 이어가더니 지친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크워어억!...후우..후우... 이거 완..전히…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어땠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냐봉은 입을 닦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뭐랄까.. 처음엔 엄청 편했어요.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 마치.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이내 물에 빠진 것처럼 속에서부터 물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더니..입에 가득 무언가가….]


[냐봉은 목걸이를 하고 있었어요. 이 악마의 공격 패턴은… 뭔가 이상해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사람들에게서 직접 무언가를 뺏지도 않아요… 단지 사람들을..그렇게 숨막히게 만드는?...그게 전부인데]


[그게 문제였어요. 제 힘으론 무슨 수를 써도… 끈적이는 것들을 토해낼 수 없었어요. 구슬이 억지로 그걸 끄집어내지 않았다면… 점점 의식이 흐려졌을 거에요.]


[토해내지 못하게 만든다……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 그걸…휴지통에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밀어넣는다?]


엠제이는 아까 두 사람의 행동과 자신의 가설을 대입시켜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그걸 보게 만든다… 그리고… 편해지게 한다. 다시 숨막히게 만든다…]


엠제이의 동공이 점점 커지더니 허공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쓰는 듯한 시늉을 했다.


[이 녀석은…그걸 일부러 보여준 거에요. 그걸 보고… 학습하도록 한거야. 멀쩡하던 사람도…그 모습을 보고 기운 빠지게 하는 거에요. 그 둘은 악마의 꼭두각시 같은 거였어.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영향이다보니 목걸이도 그걸 완전히 방어하지 못했고]


냐봉은 아직 이해가 안된다는 듯 엠제이에게 물었다.


[일부러 보여주다뇨? 뭘 보여줘요?]


엠제이는 이제야 모든 게 맞춰진다는 듯 속도를 높여 말을 쏟아냈다.


[일종의 학습영상같은 걸 보여주는 거에요. 소통이 그렇잖아요. 누구 한 명 깨지는 거 보면 다들 입 다물잖아. 어차피 말해봤자, 너의 생각은 휴지통에 버려질거고, 정해진 답만 되뇌이게 되는 모습. 많이 보지 않았어요?  이런 분위기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할 거고. 그런 풍경들을 이 조직에 세뇌시키고 있는 거에요. 생각이 아무리 넘쳐나도… ‘말해봤자’ 라는 암시를 받은 거죠. 아마도 사람들이 토해내고 있던 건 차마 말하지 못했던 수많은 생각과 불평불만, 아이디어들이었을 거에요. 이 사무실은 악마가 만든 고작 하나의 풍경으로 침묵에 휩싸이게 된 거였어요!]


[이 악마가 만드는 건… 결국 어차피 얘기도 안될 거라는 무기력이었군요!!]

[맞아요. 이 악마의 이름은…]

[무기력!!!]


무기력!!!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지진이 난듯 사무실이 흔들렸다. 엠제이와 냐봉은 균형이 잃고 넘어졌고, 주변의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졌다. 검은 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았고, 그르릉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선 차가운 공기와 함께 4명의 아랫층 팀원들이 걸어나왔다. 그들 또한 입에 끈적이는 액체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들을 마주한 건 문 앞에 있던 디자인팀이었다. 모두 동공이 반쯤 풀린 상태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 채 마주 서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엠제이와 냐봉은 숨죽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며 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걸어나왔던 아랫층 팀원들이 디자인팀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들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뭐야!!]

[일단 도망쳐요!!]


엠제이는 소리 지르며 그들 앞의 의자2개를 움직여 그들의 사이를 벌려놓았다.


[무기력이 아니었어요?!?!]

[아니야 이름은 정확해요. 이름을 외친 순간 아까 그 괴물같은 두 사람이 사라졌거든요. 그런데… 이번 녀석은뭔가가 더 있는 것 같아요. 하나가 아닌건가!?]

[저 갑자기 올라온 놈들은 대체 뭐에요!! 왜 갑자기..혈투가…시작된거야???]



Phase 2


엠제이는 눈을 질끈 감으며 냐봉에게 말했다.


[저 장면 너무 익숙하지 않아요??...]

[아랫층에서.. 4명… 디자인팀... 저 익숙한. 아………… TF회의…때 느낌?]

[아젠다가 바뀐 것 같아요. 소통은 결국..협업까지 이어지니까…]

[게다가 아직 악마는 실체도 드러내지 않았고.]

[맞아요. 여기서 두 놈을... 해치워야 하는 거겠죠.]


둘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아랫층으로 내려갔던 엘리베이터는 다시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엔 ‘만원’이란 경고등이 떠있었고, 엠제이이 염동력으로 잠시 사이가 벌어졌던 4명도 주섬주섬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큰 게 오려나 보네요…]

[원래도 협업은… 아찔했잖아요]


둘은 이를 꽉 깨물었고, 둔탁한 차임벨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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