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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Oct 02. 2023

누구를 위해 칼춤을 추고 있었나

악마를 잡으러 출근합니다 제8화

이번에 새롭게 기획한 10회 분량의 사내 판타지 소설입니다 :) 처음부터 보셔야 꿀잼이고, 중간에 갑자기 보시면 뭔말인가 싶으실 거에요! 이곳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와 이름, 상황은 가상이고 특정한 기업, 성별, 종교, 신앙, 동물, 음식, 신념, 가치관 등을 비하하거나 저격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01 케이트


이내 희뿌연 실루엣이 걷히고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냐봉은 반사적으로 반려를 거꾸로 쥔 채 몸이 튀어나가려 했고, 엠제이도 손을 뻗어 32인치 모니터를 날려버리기 직전이었다. 


[잠깐만!!]

먼저 소리를 친 건 냐봉쪽이었다. 냐봉은 잔뜩 힘이 들어간 오른팔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아주 천천히 걸어오는 작은 소녀를 응시했다. 엠제이는 깜짝놀라 그 자리에 모니터를 떨어뜨렸고 요란한 소리가 잠깐 사무실을 메아리쳤다. 소녀는 흰색 브라우스와 무릎까지 오는 치마... 그리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케이트...?]

냐봉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그 악마의 본체...아니 악마가 되기 전의 케이트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몹시 익숙한 손과 실루엣. 냐봉이 악마와 기억을 교환했을 때 남은 잔상과 일치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케이트에요]

그녀는 나오려는 음성을 삼키듯 말했다. 냐봉과 엠제이는 케이트와 서로를 번갈아보며 상황파악을 하려 애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 케이트씨? 혹시 아직...악마상태이신....?]

엠제이는 아직도 경계를 풀지 못했다. 존댓말을 해야할지 반말을 해야할지 헷갈렸다. 

[어떻게 ...? 아니 어디서 나온거에요?? 언제부터 있었던거에요?]

엠제이가 미처 내뱉지 못한 질문을 냐봉이 대신 말했다. 케이트는 아무 말없이 냐봉의 왼손을 가리켰다. 냐봉의 시선도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갔고, 왼손엔 부서진 펜던트가 들려있었다.


[아..펜던트가 부서져서?...]

[네 맞아요.]


케이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엠제이와 냐봉은 그제서야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 했다. 


[아니 그러지 말고... 좀 앉아봐요.]


엠제이는 팀장때의 본능이 등장한 듯 했다. 갑자기 시작된 원온원.

냐봉도 어느새 의자를 빼곤 책상에 앉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른손에 들려있던 반려를 허리춤에 다시 꽂아넣고 케이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누가봐도 20대의 신입사원같은 앳된 모습에, 이미 죽어서인지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가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비록 작은 목소리였지만 기억 속의 그 목소리와 똑같았다. 


[펜던트 안에서 튀어나온 거라고요?...]


케이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저 펜던트는 원래 제 것이었어요. 몸이 뒤틀리고.... 흉측하기 변하기 직전에 누군가 이것을 쥔다면 제 진심을 알아주길 바랬어요. 아마 그 악마같은 사람은... 이것까진 몰랐을 거에요.]


[악마같은 사람?... 누구...그 ....신?]


냐봉이 물었다.


[그 사람은 신이 아니에요. 신은 완전히 따로 존재하고 있죠.]





02 진실


냐봉과 엠제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살짝 한기가 도는 듯도 했다. 케이트 쪽으로 몸을 숙여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신이....아니라면?....]


케이트는 나지막히 말을 이어갔다.

[그는 그저 연옥의 사무관일 뿐이었어요. 연옥은 많은 곳에 지점처럼 존재하고 있어요. 각 연옥은 사무관이 있고, 그곳으로 오는 영혼들의 신상조회를 해요.]


엠제이는 끄덕이며 말했다.

[대강 연옥이 뭔지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요. 천국과 지옥을 가기전 그 사이 어디쯤을 말하는 거죠?]


케이트가 말했다.

[비슷하지만,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곳은 아니에요. 현생에서의 기억을 지우고 천상계로 올려보내는 역할까지만 해요. 그 이후의 일은 저도 잘 몰라요. 저희는 그곳에서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여기도 굉장히 정보공유가 안되는 곳인가봐요]

냐봉이 순간 끼어들어 한 마디를 거들었다. 엠제이는 냐봉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눈을 찡그렸다. 엠제이가 물었다.


[정리해보면, 그 신이라는 사람은 일개 사무관에 불과했고. 케이트는 그 사무소에서 일하던 직원인거죠? 근데 왜 그 사람은 본인을 신이라고 칭하고, 그리고 케이트는 왜 여기있는거에요?]


[........]


케이트가 잠시 침묵했다. 냐봉은 자신의 기억속에 있던 그 장면을 되새겨봤다. 분명 그 신이라는 사람은 무언가 부당하게 케이트를 밀어냈던 것 같다. 그 이후의 기억이 공유되지 않아 맥락을 알 순 없었지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다. 냐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악마....아니 케이트와 기억이 잠시 공유되었었어요. 신이라는 사람이 케이트에게 팀을 생각하라며 윽박지르는 장면이 있었고, 케이트가 몹시 분노했던 장면이 떠올랐어요.]


[연옥의 사무관들은...원래 지옥으로 갔었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지옥으로 떨어지는 대신... 천상의 업무를 대신하는 사람들이죠. 연옥사무소는 각 지점마다 실적으로 움직여요. 실적이 나쁜 사무소는 사무관이 교체되고... 임무를 다하지 못한 사무관은 원래대로 지옥으로 가야하죠...]


[실적이란 게...대체...]


냐봉과 엠제이는 왠지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천상의 업무체계에 잠시 현타가 오는 듯 했다. 냐봉은 옆에서 나지막히 [지겨워지겨워]를 외치고 있었다.


[실적은 얼마나 많은 영혼의 기억을 지우고 천상계로 올려보내냐 하는 거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과거를 정리해서 천상계에 올려보내야 하는데...서류작업이 꽤 많거든요. 하지만....그것보다 더 큰 실적은 탈주영혼을 잡는 일이에요.]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거였어요. 탈주한 직원을 잡는다고...]


[그들은...탈주한 게 아녜요]


[그러면요?...]


[멀쩡한 직원을... 괴물로 만들어서. 없는 탈주실적을 만든거죠...]


[!!!]


[뭐라고요..?!!]




03 다시 천상으로


엠제이와 냐봉은 이마를 짚었고 상황을 되새겨보았다. 둘은 죽은 직후 바로 연옥의 문을 열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이라는 사람은 탈주한 직원들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왜 탈주했는지, 어떻게 탈주할 수 있었는지 상세한 설명은 없었다. 직원이었지만 실명도 모른다고 했었다. 지금와 생각해보니 평소였으면 말이 안되는 지시였다. 둘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이 케이트가 말을 이어나갔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은 코비에요. 늘 옳은 말을 하던 친구죠. 사무관의 갑질에도 당당히 피드백을 하곤 했어요. 그걸로 미움을 산거죠. 사무관은 알고 있었어요. 천상의 문은 한쪽으로만 열리거든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 순 있지만, 아래 있던 영혼은 다시 올라갈 수 없어요. 특별한 의식이나 영구(靈具)가 있지 않는 한 말이죠. 어느날 사무관은 출장 명목으로 코비를 지상으로 내려보냈어요. 소환 직전에 그가 지닌 영구를 감춘 채 말이죠. 코비는 그렇게 지상으로 내려와 수없이 부정적인 에너지에 시달리기 시작했죠. 육체가 없으면...그것들에 쉽게 영향을 받아요. 마치 세뇌당하듯...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그리고 코비는 자아를 잃어버렸죠. 흉측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이름도 역할도 사라진 채 그렇게 악마처럼 변했어요.]


[어..........그러면.... 멀쩡한 직원을..그냥 자기가 맘에 안든다고 탈주영혼으로 만든거에요?]


[네 저도 그랬고요.]


[실적을 채우려면...일단 탈주영혼이 있어야 하니까... 맘에 안드는 사람들을 모조리 탈주영혼으로 만든 뒤...그걸........]

[맞아요. 냐봉과 엠제이처럼 새로 들어온 아무것도 모르는 영혼들에게 거래를 하는거죠. 다시 살려주겠다며 그 탈주영혼을 잡아오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실적을 채워왔군요.]

[덕분에 우리 사무소는 최고 실적을 기록했고, 조금만 더 채우면 사무관은 지옥으로 가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승진해서 천상계의 서기관으로 발탁되겠죠.]

[그의 승진을 위해...우리가 칼춤을 추고 있었던 거군요...그럼........다시 살려준다는...........]


냐봉과 엠제이는 질문의 끝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미안해요.]

케이트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셋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다.


냐봉과 엠제이의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정리해보면... 그놈은 자기 승진하려고 동료들을 탈주영혼으로 만들고... 그걸 애꿎은 영혼들에게 잡아오게 했다. 그럼 우리가 열심히 잡은... 회의실, 피드백, 소통, 협업의 악마들은 모두... 억울하게 내쫓긴 천상의 실무자들이었네요. 그리고 이 짓을 다 끝내도 지상으로의 복귀같은 건 없다.]


[답이 나온 것 같은데요]

냐봉은 걸터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우리도. 이 상황이라면 탈주영혼일 뿐인거잖아. 그놈에겐 좋은 실적 두 개가 더 생긴거고]

엠제이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엠제이는 마지막 출장 전날을 떠올렸다. 부당한 지시와 비열한 떠넘기기에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기억. 욕지거리라도 내뱉고 나올걸...하는 후회와. 결국 팀장이지만 팀원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리곤 냐봉을 바라봤다. 하나 남은 팀원. 냐봉마저 잃을 순 없었다. 그저 탈주영혼이 된 채 또 다른 사냥꾼들에게 잡힐 순 없다. 엠제이는 순간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휘몰아치는 듯 했다.


[개새끼. 어차피 여기서 뭘 더해봐야 죽은 마당에... 뭐가 있겠어. 그리고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 그 놈이잖아. 천상에도 규율같은 건 있겠지.]


냐봉은 그런 엠제이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미소지었다. 냐봉은 케이트에게 물었다.

[우린 천상으로 올라갈거야. 그리고 그 놈의 사무소를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 참이야.]


케이트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곳은 큰 사무실이에요. 직원들도 많아요. 대부분의 직원은 이미 사무관에게 세뇌당했거나 주기적으로 기억이 지워지고 있어요. 수많은 영혼들을 상대해야 할 거에요.]

[너랑 싸울 때도 수많은 영혼들이었어]


냐봉은 농담섞인 말투로 말했다. 엠제이가 말했다.

[케이트, 천상계로 올라가려면 특별한 의식이나 영구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 어떤 방법이 있어?]

[의외로 단순해요.]

케이트는 주변에 있던 휴지를 뽑아 냐봉과 케이트 주변에 둘렀다. 그리고 서랍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뭐야 이거...우리 차례 지낼 때 하던거잖아.]

[아 원래 이렇게 하늘로 올라가는거야? 기분 참..조상님같네]


케이트는 라이터에 불을 붙이기 전 말했다.

[저는 못 올라가요. 모든 종이가 불타고 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바람을 불어줘야 하거든요.]


냐봉과 엠제이가 말했다.

[천상에선 문을 열 수 있다며. 기다려. 우리가 다시 데리러올게]



케이트는 작은 미소로 답했다. 이윽고 라이터 끝에서 시작된 불길이 휴지를 타고 냐봉과 엠제이를 둥글게 휘감았다. 냐봉과 엠제이는 발끝이 둥실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케이트는 가볍게 바람을 불었다. 둘은 마치 무중력이 된 듯 급격하게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발 밑에는 거꾸로 흩날리는 눈꽃처럼 재가 휘몰아쳤고, 이내 눈앞의 풍경이 쏟아지는 듯 아득한 찰나의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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