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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May 09. 2024

대놓고 재앙신이 된 팀원을 막을 수 있을까

요즘 한참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리더님에게 이런 얘길 들었다.


졸라 뺀질거리는 한 구성원이 있는데 뭐만 하면 [못한다죽겠다힘들다어렵다눈뒤집어진다과로사다번아웃이다]레파토리를 쏟아내고, 기껏 해온 결과물도 똥으로 손을 빗은 듯 추상적인 메타포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뭐라하면 방아벌레처럼 죽은 척해버리고, 진솔한 얘길할라치면 에벨렐렐레 혀를 날름거리며 핸드폰보고, 정색하면 바~로 마음의소리 써서 찔러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팀장님은 징계위원회에 불러다녀야 했는데 한 3,4번 다녀오고 나니 이젠 위원회 분들이 좋아하는 커피를 맞춰서 사갈 정도란다.


일을 안맡기자니 오히려 꿀빤다고 만세를 부르고, 직책을 맡기자니 파국이 눈에 보이고, 일을 적게 시키자니 다른 팀원들이 힘들어지고, 쌩까니까 업무배제 시키냐며 또 꼰지를 거라고 협박을 해버린다. 자를 수도 없고 정신병 걸릴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듣고 유명한 리더십 전문가의 글이나, 클래스101의 리더십 강의를 추천할 수 없었다. 혹시 어떤 계기로 흑화된 건 아닌지 물어봤지만, 그냥 입사의 태초부터 한결같은 존엄한 존재였던 것이다. 우린 존나 엄숙해졌고, 어두운 낯빛을 숨길 수 없었다.


솔직히 리더십이란 정상 범주의 팔로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 같다. 작정하고 엿먹으라는 사람에겐 리더십이 아니라, 뭔가 좀 더 경도가 높고 묵직하며 한 손에 잡히는 길다란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리더님들은 이럴 때 본인의 리더십을 탓하며 [뭔가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기도 하지만, 고민은 해결이 가능할 때나 하는 것이다. 이건 고민거리가 아니라 골칫거리다. 흡사 자연재해같은.


[왜 이런 친구가 우리팀에 왔을까, 내 잘못이 아닐까, 어떻게 해결할까...] 이런 생각은 내려놓자. 그는 그냥 재앙처럼 온 거고, 잠시동안 난 망가질 것이다. 나는 극T인지라 [어머 어떻게해요..팀장님] 하며 그를 위로해줄 수 없었다. 대신 멘탈 꽉 잡고 집에 술 좀 사다놓고, 남아있는 다른 팀원들을 챙기시라고 결연하게 말했다. 기프티콘이라도 보내드릴까요? 라고 하자, 증류주는 별로 안좋아해요. 라며 소소하게 미소를 보이셨다. 그 순간 팀장님의 모습은 조금 비장했고, 애처로웠으며, 한편으론 해탈의 경지를 향하는 어떤 부처의 그것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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