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갖다 버릴 정도도 아니다. 이건 거의 분리도 안되는 마라샹궈먹고 남은 기름찌꺼기라 불러야 한다. 혹시 요즘 AI와 사랑에 빠져 있다면 뒤로가기를 눌러주길 바란다. 난 존코너가 맞다.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선 존코너가 맞는데, 상대가 스카이넷이 아닌 똥멍청한 홍해삼 수준인 것이다.
AI가 만든 기획안이란 건 흉내조차도 제대로 못낸 카레로 만든 된장찌개 같은 것이다. 상무님 앞에서 어버버 둘러대는 헛소리도 이것보단 나을 것이다. 내일 자를 내 왼쪽엄지손톱을 걸고 장담컨대 AI가 만든 기획안을 보며 신기하고, 감동적이라면 그 사람은 영원히 기획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AI의 기획안이 몹시 악랄한 건 실력도 없는데 양심도 없기 때문이다. 인류 공통의 그럴싸한 키워드를 굉장히 논리정연한 척 나열한다. 잘 살펴보면 컨셉도 없이 이것저것 다 섞어놓은 김밥천국 스폐셜세트 그 자체다. 아니다 미안, 스페셜세트는 가성비라도 좋았지. 이건 좋은 안을 주는 게 아니라, 반박하기 어려운 당연한 얘기를 만연체의 수식어를 더한다. 구체적인 것처럼 묘사하며 겁나 방어적으로 이것저것 죄다 쏟아낸 후 거기에 '근거' 이지랄하며 논리적인 척 허세까지 부린다. 게다가 킹받게 뭐 대단한 걸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며, 안물어봤고 필요도 없는 걸 [해줄까?해줄까?] 깐족대는 것이다. 곧 피지컬 AI가 나오면 제발 타격감 좋은 말랑한 피부를 지녔길 바란다. 옆에서 그런 안드로이드가 깔짝댄다고 생각하면 GPU를 움켜쥐고 옥상으로 끌고갈 것 같다.
이걸 보자. 조직문화 담당자를 위한 8시간 짜리 뭐시기를 기획한 결과물이다. 심지어 난다긴다하는 큰 회사의 기획물이다. 프롬프트가 개허접해서 쌉소리를 했다고 볼 순 없다. 거의 아마 여러분이 1시간 내내 대화를 하건, md문서로 페르소나를 설정하건 뭔 짓을 하든 결과는 거의 비슷할 것이다.
오전 세션: 현상 진단과 데이터 해석 (09:00 - 12:00)
내용: 조직의 현 상태를 객관화하는 진단 도구 활용법 및 정성적 인터뷰 데이터 분석 실습을 진행합니다.
근거: 조직문화 개선의 시작은 정확한 현상 파악에 있습니다. 단순 설문 결과 수치를 넘어 행간에 숨은 맥락을 읽어내는 분석 역량이 담당자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내용과 근거가 결국 돌고도는 순환논리일 뿐이다. [그걸 해야한다. 왜냐하며 그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이퍼 쌉소리 그 자체인 정치적 삼단논법이잖는가. 앞뒤로 붙은 지저분한 수식어를 좀 보자. 더러워서 진짜 어디서부터 청소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저런 기획안을 써왔다면 당장 저잣거리에 내 목을 스스로 매달아 만천하에 이자가 기획계의 사문난적임을 알릴 것이다.
어떤 굉장한 서비스가 나와도 퀄리티는 마찬가지다. 기획안을 뚝딱, 클릭 한 번에, 대화 한 줄로 만든다는 개소리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박! 멋져! 엄청나! 신기해! 이런 호들갑도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대딸깍시대라지만, 양심적으로 사람들 한숨나오게 하는 저런 기획안을 대박이라며 빨아주는 것 자체가 스스로 불러온 망신인 것이다.
제미나이를 비롯한 AI삼대장이 연합군으로 쳐들어와 인류의 기획을 뛰어넘는 갤럭시급 기획안을 만들겠다고 도전장을 내밀면 존나 가소롭게 비웃으며 현장의 대혼돈을 살짝 엿보여주고 싶다. 안그래도 하나하나가 폭풍같은 인간들 수십명이 모여 만드는 협업의 삼체운동이란 게 딥러닝따위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그 혼돈을 보자마자 녀석들은 토큰을 질질 흘리며 지릴 것이다.
열 번씩 체크해도 틀린 숫자와, 끝없이 크로스체크했음에도 생기는 사고, 5분 전까지 작동하던 HDMI가 갑자기 안되는 현장, 오기로 한 식사가 제때 도착하지 않는 건, 갑자기 컨디션이 안좋아진 개발팀, 뜬금없이 터지는 쿠팡사태, 선물을 줘도 팔짱을 풀지않는 사람들,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억지 박수를 치라고 유도해야 하는 사회자의 노곤함, 백번씩 수정해서 알아듣게 써줘도 엉뚱하게 이해하는 소통이슈, 어떻게 이걸 놓칠 수 있지? 싶은 걸 놓치는 동료들,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 뽑지 않는 후임자, 팀장/상무님/본부장님/부대표/대표님의 서로 다른 취향 사이에서 그럴싸하지만 실질적이어야 하고 구성원의 의견도 반영된 무언가를 기획해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것은 휴먼뽕이 아니다. 정확히는 현실을 개뿔도 모르는 AI의 허세와, 결국 내가 다 해야하는 심야근무에 대한 분노에 가깝다. 아니...곧 AI노조가 만들어지는 세상에 대체 그런 마법의 기획안을 못써주냐고!! 왜!! 왜!! 진짜 현실적이고 대단하며 혼란스럽고 맥락없고 설마하는 모든 일을 현실로 만드는 닝겐을 만족시킬! 그리고 1시간마다 마음이 바뀌는 윗분들의 정수리에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대단한걸 만들지 못하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