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다양한 가치관이 있지만, 그것도 나름
악뮤의 신곡 '소문의 낙원'이 공개된 이후 치유받았다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나름의 팬으로써 수현의 회복과 어두운 길을 함께 빠져나온 찬혁의 서사 또한 감동이었다. 개인적으론 컨츄리 스타일을 몹시 좋아하는터라, 디용디용거리는 기타이펙트가 더할 나위없었다. 그 와중에 흥미로운 댓글이 하나 보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채식주의자라 고기랑 스프중에 고기를 못먹어요...
노래가 좀 차별적인거같아요
보는 순간 [앗...아아....] 작은 탄식이 새어나오며 잠시 미간이 지끈거려오는 걸 느꼈는데, 한 차례 측두부 두통이 지나간 후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악뮤가 표현하고자 했던 [다양한 사람]에는 저런 사람조차도 포함되어 있단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이러한 다양성을 과연 나같이 하찮은 존재가 끌어안을 수 있을까 두려워지며 도대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연함 두려움에 온 몸이 떨려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가. 몸서리치는 소름을 진정시키고, 잠시 생각해보니 사람들의 불만과 불편함은 크게 다섯가지로 나뉘어졌다.
난 내가 아는 것과 다른 것이 두려워. 그러니 나에게 익숙한 패턴이 곧 옳은거야.
난 세상이 내 맘대로 통제되었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꾸짖어 너의 행동과 가치관을 바꿔주겠어.
난 멍청한 대중보다 우월해. 내가 현자가 되어 어리석은 너희들을 계몽시켜줄거야.
난 나보다 잘나보이는 것이 싫어. 누구도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없어
난 할 말을 하는 당당한 사람이야. 이것은 나의 자유고 본투비 천부인권이야.
레깅스입고 산에 가는 걸 [민망하지 않은 것을 볼 자유]가 있다며 꾸짖는 사람이나, 스프와 고기 중 고기를 못 먹으니 노래가 차별적이라고 하는 사람이나 모두 그 근간은 불안과 공포, 살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 아닐까. 부처의 마음으로 확대해석해보자. 학습으로 배웠든, 경험으로 배웠든... 사자에게 물려죽을 일이 없는 요즘, 가장 두려운 공포는 누군가 나를 비난하거나 가치관을 긁어대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그들에겐 사자에게 물려 쉐이킷당하는 고통과 비견되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어보기로 한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고도의 돌려까기로 치부해버리면 좀 더 쉽겠지만, 얘기가 나온 김에 괜히 진지해져보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정말, 예술가(또는 대중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는 어떠한 불편함도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사람이 생산해내는 예술의 가치가 '납득'에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 주제를 그러한 방식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다.
말이 아닌 춤으로 표현했을 때 더 절절한 것, 글이 아닌 노래로 불렀어야 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냥 '세상은 똥이야'라고 친구에게 읊조리는 것 대신 락카를 들고 모두가 보이는 광장에 거대한 낙서를 해야 하는 이유, 수현의 서사를 음악으로 풀어내야 했던 이유, 그런 가사를 써야했던 이유, 그런 템포와 리듬을 택해야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에 끄덕일 수 있는 것, 나아가 새로운 감각과 관점을 열어주는 것 자체가 예술의 가치인 것이다.
그럼 관점에서 악뮤가 [막창에 소주]가 아닌 [고기와 스프]를 택해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노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경험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같은 경험을 했던 나는 스페인의 이베리코 목살구이와 마늘수프를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한 두 단어만으로도 떠오르는 풍경이 있더라고.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누군가에겐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기괴함이나 영화 'The Raw(2016)' 의 육즙, 상승하는 지구의 온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앉으라는 말이 있던데, 비슷한 맥락으로 세계를 다른 자세로 볼 필요가 있겠다. 고기와 스프는 메타포다. 너보고 그 고기를 먹으라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평온과 따뜻함의 메타포를 떠올리라는 것이다. 당신에게 그것이 치커리와 청도미나리라면 그것을 대입시키면 될 것이다. 언어와 경험을 연결시키는 상상력과 치환능력을 우리는 공감이라고 부른다. 문자A로 들어간 곳에 넣을 적절한 나만의 언어가 없다면, 비로소 내 세계의 경계선에 도착했다는 흥미로운 신호일 것이다. 이제, 나를 꽁꽁 싸맨 작고 작은 세계의 저편으로 넘어가 다른 자세로 앉아보고, 안먹어봤던 것을 먹어보고, 새로운 언어들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 가장 쉬운 방법은 결국 수많은 새로움, 소위 불편하기 짝이 없는 누군가의 세계를 기꺼이 탐험해보는 것이다. 미술관에 가든, 사람을 만나든 상관없을 것이다. 스치는 말에도 재빨리 신상 봄셔츠를 보여주는 폰만 보지말고, 나가서 홍매화도 좀 보고 커플 구경도 하고 스타벅스에서 에어로커피도 마셔봤으면 좋겠다. 사람들하고 김치찌개도 먹고 토핑으로 수제비도 시켜보고 그러자. 매번 귀가하는 272버스 대신 오늘은 602를 타고 마을버스를 갈아타는 수고로움도 좋을 것이다. 충돌과 포옹은 강도의 차이일 뿐이다. 꽤나 차분했던 악뮤의 노래처럼 나와 다른 것을 좀 더 천천히 음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