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그게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경험인데
안동에 갔다. 우리는 매년 부모님들을 모시고 여행을 간다. 처가는 가족끼리의 모임을 애틋히 여기고, 우리 집은 생사확인 정도에 만족하는 편이다. 5년 전, 독특한 결혼식을 꿈꾸던 배우자는 괌에서 부모님과 동생부부네만 초대해 조촐한(?) 3박4실 결혼식을 올렸다. 2층짜리 저택에 옹기종기 모여 밤낮없이 수다떨고 술잔을 기울인 덕분에 사돈관계는 예상치 못하게 가까워졌다. 추석은 처가에서 지내고, 설날은 양가가 모여 여행가는 걸로 쇼부친 것이다. 그렇게 순천이나 남해, 목포, 울릉도를 거쳐 올해는 안동과 문경에 이르렀다. 양가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린 많은 것을 준비했고 특히 안동갈비와 문화관광단지는 그 하이라이트에 가까웠다. 그러나 갈비는 질기고 불친절해서 싫다하고 관광단지는 뭐 볼 것도 없다면서 다른 데를 가자고 반려당했다. 도산서원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에 감탄하길 바랐지만, 부모님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오래된 버드나무 고목에 새로 돋아난 새순이었다. 당시의 문화나 예술적인 부분보다 겹겹히 돋아난 홍매화가 훨씬 감동이었던 것이다.
잘 갖추어진 테마파크에서 사진을 찍으며 하하호호 거리려던 우리의 짧고 안일한 생각은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부모님들은 바로 흥미를 잃어버리고 다른 곳이 없냐며 시무룩해졌다. 버리는 카드 중 하나였던 벽화마을에 가서 멧돌커피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원두를 직접 갈아 마시는 것 정도면 그럴싸하지 않을까.
원두는 손도 못대보고, 카페는 비싸다며 반려당했다. 아빠들은 카페에서 10분을 앉아있지 못했다. 정처없는 방랑자처럼 의자에 앉자마자 커피를 후루룹 마시곤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갈 요량이다.
숙소 체크인까진 3시간이 남았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도중 아부지는 바닥에 이게 뭐냐며 뭔 그림을 이따위로 그려놨다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부모님들은 모든 것에 투덜댄다. 옛 맛집은 맛이 변했다고 투덜대고, 비싼 음식을 대접해도 자연산이다 아니다 달다 짜다 심사평을 늘어놓기 일쑤다. 심지어 쌀의 고슬함과 고등어의 눅진한 정도를 가지고도 하루 종일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다. 커피는 너무 비싸고 카페는 너무 덥고, 여긴 너무 돈을 많이 썼고, 저긴 이재명이 뭔갈 제대로 안해서 저모양인 것이다.
바닥에 그려진 페인트를 보며 이게 무슨 예산낭비냐며 투덜대는 아부지에게 [그게 사실 그런게 아니고 이게 사진으로 찍으면 이렇게 나온다]며 트릭아트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부지는 키야 야하! 전에 없던 웃음꽃과 감탄을 만발하며 키야!!이거 신기하다 이거!! 아니 어떻게 키야..예술가들이란 진짜..대애애애단허다... 키야... 아니 어떻게 이렇게!!! 도무지 끝나지 않는 감탄사와 [이렇게 찍어봐라 저렇게 찍어봐라, 너도 와서 한 번 찍어봐라. 어무니도 찍어드려라] 마이크로매니징을 연발하더니, 이내 근처에 지나가던 프랑스 관광객 두 명에게도 [히어!! 히어!!(here) 포토!]를 외치며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직접 한국인이 얼마나 사진에 진심인지 보여주며 직접 찍어주기에 이르렀다. 칠십 평생 이렇게 신기한 건 처음이라며, 오늘 경험한 것 중 단연 으뜸이라고 깊은 감동을 거듭 강조했다. 아픈 무릎도 잊고 갑자기 바닥에 앉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 일단 좋아하니 다행이긴 한데 'But why?'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순 없었다.
너무 흥에 취한 두 아버지는 이내 근처 슈퍼에서 바로 안동소주를 사오더니 고소미와 함께 이 놀라운 경험에 대한 소회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2박3일 내내, 그 놀라운 트릭아트 얘기를 끊임없이 듣게 되었는데 그래도 하나는 남겨가서 다행인건지 어쩐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