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에는 인물과 사건이 있다. 역사책이 재밌는 이유는 인물과 사건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성이 결여된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는 글들도 때로는 재밌다. 인간의 언어는 그 자체로 서사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그 안의 내용을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번 읽을 때 느꼈던 경험이 몹시 좋았기 때문에 그 경험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좋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와 같다. 이미 알고 있던 서사에 다시 한번 흠뻑 젖어본다.
교과서는 몰입의 여지가 적다. 딱딱한 문체가 몰입을 방해한다. 그래도 그 안에 의미가 있고 의미를 곱씹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그 방해요소를 극복하고 의미를 뽑아내서 그 맛을 즐긴다. 화장실에 핸드폰 없이 앉아있을 때 샴푸통에 적힌 글을 곱씹어 읽는다. 글 자체로는 재미가 없다. 단지 지친 내 의식이 그 글 위에 걸터 앉는 것 뿐이다. 그래도 서서 방황하는 것보다는 낫다. 교과서는 샴푸통 글보다 훨씬 더 너르고 재미난 터이다.
외로울 땐 사람을 가릴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지루한 인생을 산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묻게 되고 듣게 된다. 역시나 지루하지만 디테일에 집중한다. 책과 사람은 모두 이야기이다. 기승전결이 없는 이야기라도 외로운 사람은 그 안에서 스펙타클을 느낀다. 검은 하늘에 새겨진 별들을 이어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