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마음으로 쓴다. 저도 그냥, 엄마입니다.

어린이집을 정리하며 나는 되고 싶었던 엄마가 됩니다.

by ROZY


10년 전, 내가 울면서 힘들다고 투정 부렸던 그곳에서 다시 누워보았다.

한창 사랑의 열기로 가득했던 이곳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날들이 이젠 과거로 묻히게 되었다. 언젠가 내가 어린이집을 정리하면 어떨지 상상만 해보곤 했었는데, 생각보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오열보다는 양 가슴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보육사업은 책임감과 사명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 다른 사업(자영업)처럼 매출액을 따라가는 영리사업과는 구조가 다르다며 남편에게 토로했던 내 말을 곱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동안 원장이라는 무게가 ‘등에 지고 있는 책가방’과도 같아서 내 목과 어깨, 등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가슴에 열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이 낳고 젖도는 것처럼 가슴이 후끈해서 어젯밤에 잠을 못 잤어.”



유방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며칠은 괜찮은 것 같아서 넘겼다. 우연히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아차 했다. 배우 류승수 님의 장인에 관한 건강 에피소드였다. 장인어른의 지속적인 발 통증으로 인하여 유명한 병원에 다니며 원인을 찾아보고자 했다고 한다. 결론은 우울증의 증상이 신체화로 나타난 것 같다는 말이었다. 우울증은 정신적인 문제라서 항상 신체화라는 증상이 나오게 되는데 조금씩 아픈 부위가 발산하지 못한 부정 에너지가 그곳으로 꽂히게 되며 통증으로 유발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듣자, 그때부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실제로 어떤 밤은 세탁기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쓰레기봉투를 여미다가도 눈물이 났다. 멈추지 못하는 눈물을 샤워로 진정시키고 겨우 잠을 자면 얼굴은 퉁퉁 부어있기도 했다. 이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번아웃이라고 했다.


“너 혹시 번아웃 온 거 아니야?”

“원장님, 너무 피곤해 보여요.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임신을 했을 때, 입덧을 심하게 하는 시기에도 어린이집에 출근하면 입덧이 멈추는 사람이었다. 한때 아이들이 줄어 매월 내 월급을 차입으로 넣으며 버텨갈 때도 잘 이겨냈는데 이번에는 가슴의 통증이 심상치 않았다. 오죽하면 경고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우울증이나 번아웃이라는 말을 의사에게 들으러 가기는 싫었다.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서 그런 건 나에게 절대 오지 않는다고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타협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외부적인 요소로 위기가 닥쳐온다면 오는 좌절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장 어린이집이 새로 생기거나 국공립어린이집에서 인원이 빠져 학기 중 호출이 올 때면 연령이 어린아이들은 옮길 수밖에 없다. 재개발로 인하여 주변 대단지가 들어서며 이사의 퇴소 사유가 발생하거나 새 정책으로 부모 급여를 받겠다며 당장은 입소하지 않을 거라는 허수의 입소 대기자들이 확인될 때면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가방을 붙들어 매고 있는 것보단 그 가방끈을 끊어 가방을 버려야만 상황이 명쾌해지는 것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어린이집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가슴의 통증은 불규칙한 주기로 나를 괴롭혔지만 내가 폐원 공문을 받은 이후에는 사라졌다. 뒤늦게나마 2023년 4월이 되어서야 정밀 검사를 해보았다. 정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경험은 내 스스로의 싸움, 내면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의 성장통처럼, 알에서 나오려고 싸우는 새처럼. 내 감정을 자꾸 마주하는 연습을 했다. 어차피 내가 해결해야 하는 내 마음의 문제였기에 다스리거나 분출하거나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을 정리하면서 나는 이제 엄마가 되어야 했다. 그냥, 엄마.

<언어의 온도>에서 이기주 작가는 ‘그냥’이라는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하였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인생을 동행하는 사람이다. 사심 담지 않은 시선으로 격려하면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인생의 조력 역할을 해 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아이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다가갈 수 있으려면 엄마 역시 무조건적 희생이 아닌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간의 길을 가야 한다. 엄마의 인생을 통해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나는 두 딸의 손을 잡고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 이 글을 적어내며 이미 출발했을 수도 있겠다. 그냥 엄마라고 불리지만 좀처럼 그냥이 아닌 엄마로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삶을 실천하고자 한다.


“부모가 삶을 해석하는 방식은 결국 아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대부분의 경우 이는 대물림된다. 삶을 해석하는 태도가 곧 유산인 것이다.” (위대한 유산, 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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