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엄마, 나

육아는 우리를 연결하는 삶의 여정이다.

by ROZY


양지에 개나리꽃이 피어 아이들과 개나리잎을 관찰하던 어느 날, 아직은 찬 공기가 남아 옷깃을 여미며 아이들에게 얼른 들어가자고 재촉하던 순간이었다. 멀찍이 엄마가 집 앞 편의점에서 무엇인가 사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엄마를 보고 있는 방향으로 아이들도 고개를 돌리더니 금세 외할머니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어, 할머니다! 할미!”


아이들과 개나리꽃을 보고 엄마가 해주는 벚나무 설명을 들으며 친정집에 도착했다.


“아까 뭐 샀어?”


검정비닐 안을 쓱 열어보니,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이었다.


맞다, 꽃샘추위가 있는 3월이면 엄마가 외할머니 산소를 방문하는 날이 다가온다.


이번에는 외할머니 산소에 유난히 추운 날씨에 이모와 함께 엄마만 다녀오셨다. 한 번씩 외할머니 묘 위에 고양이가 앉아있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방문에도 같은 고양이인지 모르겠지만 앉아있었다는데 엄마 말로는 왠지 같은 고양이는 아니지만 비슷한 걸 보아 혹시 그 고양이의 2세가 아닐까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여느 날처럼 소주 한 잔 올리고 담배를 한 대 태워 놓아주셨다고 했다. 그 담배 연기에 엄마는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보내고 오셨을 테다.


최근 엄마랑 팔짱을 끼고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했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오셨던 것처럼,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에 오니 마음이 묘했다. 엄마 가슴 중앙에는 어린 시절부터 있던 림프종이 있다. 추적검사를 계속하고 있었다가 크기가 좀 커진 것 같아 뻐근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진료를 보게 되었다. 12년 전에 뵀던 의사 선생님이셨는데 다행히 아직도 계셨고, 엄마의 증상을 잊지 않고 계셨다. 엄마는 결혼 전에 2번의 수술을 받으셨지만, 그때의 의료기술로는 완벽히 제거하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수술기법이 발전함에 따라 이번에는 허벅지살로 이식하는 유리피판수술을 통해 잘 제거해 보자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엄마의 모습에서 외할머니의 분위기가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나도 세월이 지나면 시간이 묻어있는 엄마와 닮은 모습을 우리 딸들이 발견하겠지? 나이가 들어 진료를 보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즐기는 모든 행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테다. 결국엔 내가 엄마와 같은 길을 간 것처럼 말이다. <김미경의 인생미답>이라는 책에서 부모와 비슷한 취미가 있지는 않은지를 떠올리며 ‘내 부모를 사랑한다는 건 내 부모가 즐겨 했던 것을 한 번쯤 따라 해보고, 부모님의 모습을 내 모습에 투영해 보고, 그걸 반복하면서 내 몸으로 그리워하는 것 아닐까요?’라는 말이 나온다. 그 때 그 모습을 따라 하면서 내 부모의 운명도 이해가 되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감성팔이 단어라고 취급한 적이 있다. 드라마, 소설, 영화나 연극 등 ‘엄마’ 라는 소재가 있으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설정처럼 그렇게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상황 자체도 불편하게만 진행되는 모습이 흔했기 때문이었다. 편견처럼 ‘눈물을 자아내는 요소’로부터 ‘나는 절대 울지 않겠어’ 라고 버티기도 했었다.


출산 이후엔 나를 둘러싼 모든 감정이 응집된 어떤 주머니가 내 마음속에 꽉꽉 차있는 듯한 시절도 있었다. 여성으로서 자유를 누리다 자녀의 탄생으로 인하여 엄마라는 위치에 서 있게 되고 소위 워킹맘이라는 그 임무가 부여되는 이 단순한 사실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글로써 표현될 수 없는 복합적인 부분, 구체적으로 형용될 수 없는 형태였지만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그 시기를 지나온 지금은 사소한 모든 것에도 다 반응할 수 있을 만큼 감각이 열려있음을 느낀다.


엄마?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엄마로서 해내는 과정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명쾌하게 공식처럼 떨어지는 과정이 아니기에 누가 다 잘한다고 자신하는 엄마가 몇이나 있을까?

고학력의 여성도 엄마가 되면 초보 엄마부터 시작된다. 관련학과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느끼는 모든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모성을 경험한 여성으로서 더욱 성장하고 사고를 확장하게 된다. 그 속에는 본인의 아쉬움과 후회, 설렘 등의 여러 감정과 함께 스스로를 둘러싼 많은 인간관계에 대해 좀 더 성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육아를 둘러싼 모든 관계는 환경과 상황의 변수 등이 초집중된 ‘밀착연결고리’이다. 그래서 정답은 없다. 육아는 결국 본인만의 풀이와 해석으로 근접치를 찾아 풀어나가는 과정으로 자녀와 나, 나와 엄마, 엄마와 외할머니를 잇는 삶의 여정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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