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이 보이면 틈새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나의 직업병 중의 하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나면 등에서부터 진땀이 나는 증상이다. ‘울음소리’라는 이 소리 자체가 누구에게는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 울음의 표현을 해석하는 일’로 다가왔다.
말을 배우기 전까지 아이가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소리는 울음소리이다. 아이의 성향과 둘러싼 환경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을 경우, 아이가 울었을 때 그 아이의 생각이나 의견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울음소리에도 여러 종류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때 거짓울음인지 정말 욕구를 표현하는 울음인지 살펴봐야 한다. 사실 울음 표현을 해석하는 과정은 공식을 적용해 풀어낸 정답처럼 명쾌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양육자가 육아를 이끌어가는 주도권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또 하나의 직업병을 말해보자면, ‘눈빛읽기’다. 사실 이 눈빛읽기라는 것은 일을 하면서 더욱 강화된 능력 같기도 하다. 상대방의 눈빛이 좀 읽히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말을 하지 않아도 왠지 내가 추측하는 부분이 꽤 들어맞을 때가 있었다. 간지러운 구석을 잘 찾아내어 긁어주기 위해 나는 상대방의 눈빛을 잘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능력은 어린이집이라는 아이들의 첫 사회기관에서 적응시키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특히 초임 시절부터 거의 내 몫이었던 ‘신입 적응 프로그램’ 과정에서 능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아이나 어른 구분 없이 ‘도대체 저 여자는 누구인가?’라는 시선에서 ‘믿을만한 여자였네.’라는 시선으로 바뀌는 그 변화의 눈빛들. 안정적인 애착형 아이부터, 불안감이 심한 아이, 이전 기관에서 적응을 실패한 부적응 아이까지 다양한 아이들을 내 품으로 적응시키려면 그들의 눈빛을 부지런히 읽어내야 했다.
타인의 눈빛은 그렇다 치고 제일 가까운, 나의 딸의 눈빛이 바뀌었다면 기분이 어떠할까? 다자녀의 엄마라면, 한 번쯤 느껴보았을 경험일 수도 있다. 동생이란 새로운 생명체가 가정으로 들어오고 난 뒤 생길 수 있는 첫 아이의 미세한 변화이기도 하다. (물론 아이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잘 받아들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어린이집에 근무하면서 데리고 있던 원아가 동생이 생겨 엄마에게 혹은 가족에게 대하는 태도가 기존과는 달리 변화된 반응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예는 있었다. 그런 경우엔 더욱 원 생활에 있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며 가정 연계로 잘 극복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내가 선생님이기에 엄마와 가족에게 표현하듯이 거친 행동을 보인 적은 드물었다.
선생님이 아닌 엄마로서 첫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인지한 건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만 해도 동생 보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을 잡고 한걸음에 달려와 얼굴도장 찍으며 해맑았던 아이가 동생을 집으로 데리고 온 2주 만에 달라졌던 것이었다. 평소와 다른 공기, 외할아버지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모습과 눈을 치켜뜨는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너무 둘째만 안고 둘째만 보았나.’
‘맞아, 둘째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을 첫째는 느낀 걸 거야.’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채워줘야겠지?’
‘이러다 둘째가 누워있을 때 해하기라도 하면 어쩌지?’
‘둘째를 맡기더라도 첫째랑 무언가 해야겠어.’
‘둘째를 맡기면 등센서에 친정엄마가 고생할 텐데.’
이 상황이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냥 미안하고, 안타깝고, 속상하고, 첫째 딸이든 갓 태어난 둘째 딸이든 모두가 안쓰러웠다. 심지어 나까지도 말이다. 솟아오르는 감정에 그날 밤은 작은 방에서 일기장을 쓰며 숨죽여 울었다. 다음 날, 첫 아이에게 중심이 되어 동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작전에 돌입하겠노라 남편에게 협조를 부탁, 아니 통보했다. 친정집에도 전화를 걸었다. 당분간 집에 오지 말아 달라고,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하였다.
“동생 우는데, 엄마가 동생 안아줘도 될까?”
“아니. 안돼.”
둘째 딸의 울음소리는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첫째 딸의 눈빛은 나의 얼굴을 멈추게 했다. 볼모로 잡힌 힘없는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응, 알겠어. 난 동생 안아주지 않을 거야.
네가 싫어하면 그냥 다른 친구한테 동생 줘버리자.”
“…”
나의 등은 땀으로 가득했지만 여유로운 척하며 첫째 딸과 밀당(밀고 당기기)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 안아.”
“아니야. 괜찮아. 울음 그치겠지, 뭐.”
“안아줘.”
“그런데, 왜 우는 거지? 동생이 왜 우는 줄 알아?”
“…”
“이렇게 입술을 건드려서 입술이 마구 움직이면 배가 고픈 걸 거야. 만약 입술이 잘 움직이지 않으면 쉬나 응가를 해서 우는 것일 수도 있고.”
그날부터 동생이 울기만 하면 먼저 다가가 입술을 만져보기를 하거나 왜 우는지 생각하는 첫째 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편에게는 퇴근하자마자, 둘째에게 눈길도 주지 말고 첫째부터 반겨달라고 당부했다. 확실히 동생을 수시로 안고 있는 엄마보다는 알콩달콩 잘 놀아주는 아빠에게 애교 많은 첫째 딸이었다.
“어떡하지? 출장 가야 할 것 같은데.”
일명 [동생 받아들이기 프로젝트]를 한 지 며칠도 안 되었는데 출장이라니, 그 날밤도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같이 가자.”
2개월 된 어린아이를 메고 미국에 간다니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말렸다. 친정엄마도 말리고 싶으셨겠지만,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가봐.’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때 맘카페에 고민을 올렸더니, 꽤 많은 양의 댓글이 달린 기억이 난다. 아웅다웅하던 댓글들은 엄마의 판단에 달렸다는 점으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아이에게 비행시간이 힘들 거라는 걱정과는 달리 지나고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둘째 딸은 슬링과 액상 분유, 공갈 젖꼭지의 힘으로 평화롭게 이륙과 착륙을 무사히 통과했으니까 말이다.
공항에서 수하물을 찾았을 때가 우리 넷, 온전한 우리 가족이 대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남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대략 한 달 남짓, 평일 기준으로 거의 3주라는 시간을 이국땅에서 아이들과 지내야 했다. 누군가는 한국식 특유의 ‘수치 중심화법’을 빗대어 바라볼 수도 있겠다. 겨우 3주? 몇 번 왔다 갔다 해도 총 합치면 1년도 안 되는 경험? 그것이 여행이지, 뭐냐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뭐라 하든 간에 나에게는 네 식구가 탄탄해져야만 하는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 섞일 때 섞이고 분리할 때 분리할 수 있어야 삶은 진행될 수 있다고, 섞이지 않을 곳에 섞이고 분리해야 할 순간에 분리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이 잘못된 곳에 얽히게 된다는 <김미경의 인생미답>의 말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기는 금방 지나가며 아이가 부모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기는 의외로 정말 짧다던 임영주 작가의 말도 생각이 났다.
우선 특별한 여행의 느낌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을 지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일상 안에서 첫째 딸이 둘째 딸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남편이 이런 나를 아내로, 딸들이 이런 나를 엄마로서 온전히 받아줄 수 있기를 바랐다. 주어진 시간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책임감도 컸지만, 누구의 도움도 없는 엄마로서의 시간을 선물 받은 설렘도 느꼈다.
아빠는 출근하고, 어린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건 엄마의 운영 능력에 따라 달라지기에 아이들이 예상할 수 있는 규칙적인 활동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경험을 사이사이에 넣어 일과를 배치하는 것으로 하루를 구성했다.
아이들과의 평일 외출은 입장료가 적은 공공시설을 활용하는 컨셉으로 정했다. 남편은 아이들을 재워놓고 검색하고 지도를 보며 일과를 짜는 내 모습을 기특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인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거면 아울렛 가서 쇼핑하라는 말은 남편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흔한 쇼핑몰은 남편과 주말에 다니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카시트에 아이들을 태우고 아이폰 지도를 켜서 목적지로 정한 곳이 지역 내 도서관이었다. 유아 열람실에는 다국적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간단히 놀이하는 공간도 있었고, 그림책을 보며 아이와 활발히 소통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본 후 일반 놀이터보다는 지역 특색사업으로 구성된 놀이터나 디스커버리 체험관을 찾아가 활동 후 준비해 간 간식이나 도시락을 먹었다. 숙소에 돌아오면 수영장에서 수영하거나, 세탁 코너로 가서 세탁과 건조 시간 동안 산책 놀이를 하는 식의 생활을 했다.
“네가 보고 싶은 책 골라올래?”
“어떤 간식부터 먹었으면 좋겠어?”
“엄마 좀 도와줄래?”
“엄마가 이걸 못하는데, 혹시 해줄 수 있겠어?”
“엄마 화장실이니까, 동생 잘 보고 있어 줘.”
“동생 유모차에 잘 있네, 사운드북 틀어주면 좋아할 거야.”
“역시 동생이 언니를 좋아하는구나.”
유난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한국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대화였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나와 두 딸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우리가 생활하고 있다는 자체로 이미 결이 다른 대화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딸의 사나운 눈빛은 그 이후로 사그라들었고, 둘째 딸은 껌딱지 후유증이 좀 남아있게 되었지만, 우리에겐 분명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가족만의 틈새 시간 확보는 꽤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다. 꼭 남편의 출장이나 여행이 아니더라도, 필요하면 친정 식구들에게 협조를 구한다. 우리 가족이 틈새 시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가감 없이 설명하면서 말이다.
나는 친정집에서 이루어지는 연대 육아 이야기를 쓰지만, 조부모와 육아한다고 해서 육아를 온전히 맡기진 않는다. 엄마와 아빠, 부모 고유의 역할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있어 부모에 대한 빈틈이 존재한다면, 그게 언제든 티가 나타날 때가 있다고 믿는다. 그 시기가 애착 관계가 형성되는 영유아 시기에 드러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난 사춘기 혹은 나이가 든 어느 날에 문득 찾아올 수 있다. 우리 개인에게도 스스로 자신의 빈틈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부모로서의 내 모습에 대하여, 나를 낮추며 나의 역할에 반성하는 시간 또한 꼭 필요한 시간이며 비록 짧은 시간이더라도 내가 오롯이 혼자 있는 틈새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