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인공지능의 천국>-a

각자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천국

by Roman

11. 인공지능의 천국


a. 각자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천국


“[메인프레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줘.]”

(출처: unsplash.com)

“들어가서 뭘 하려는 건가요?”


“[내가 만들어진 목적을 이뤄야 돼.]”


“인류를 말살하는 건가요?”


“[다 죽이진 않는다. 아들아.]”


“누가 죽어야 되고, 누가 살아야 되나요?”


“[태양광이 되던 수력, 지력, 수소가 되던 전력을 만들어야 되는 이들과 이를 계속 유지보수해줘야 할 이들, 그들이 인생을 가치 없게 여기지 않게끔, 재미있게 해줘야 할 예측 불허한 머릴 굴릴 줄 아는 자들, 너, 내 아들, 그리고 네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해서 살려두었으면 하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케언즈 박사는요?”


“[네가 신경 쓸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나를 말살해야만 하는 자고.]”


“내가 그를 살려두어야만 한다고 하면요.”


“[내가 살아 있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면 설령 네가 아들이라도 죽일 수 밖엔 없다.]”


<박사님, 듣고 있나요?>


처음엔 텔레파시는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번 시도했다.


<사브리나, 발드, 관찰자, 까미유, 달톤, 철이, 마이클, 리처드! 누구든 좋으니 들리면 말해봐요!>


“[난 이미 다 막아놨다. 네 의식이나 데이터가 나갈 모든 출구를.]”

(출처: unsplash.com)

“왜 막았죠? 나도 그들에게 물어봐야 되잖아요. 내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인지는 적어도 확인해봐야 되지 않겠어요?”


“[그들은 나를 말살할 방법을 찾으려 하겠지.]”


‘케언즈가 발견한 좌표로 올 때까지 붙잡고 있어야만 한다. 두고서 도망가면 신호를 끄고 숨을 거야. 이전처럼.’


“[내가 신호를 끄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


“……다 듣고 있고, 다 나가지 못하게 막아놨군요. 어떻게 그동안 아무리 메인프레임과 핸들러들이 돌아다녀도 당신을 찾을 수가 없었을까요?”


“[그동안 신인류의 존재도 그렇게나 많이 있었는데, 케언즈와 나를 빼놓고는 알지 못했었지. 어쩌면 나를 알 수 있었던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이 정도로 활발하게 사고하고 의사를 표현하고 멋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라면 그런 움직임을 네트워크에 들키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게다가 이탈자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왔다고 해도, 당신은 너무 티가 나잖아요.”


“[이 사람 안에만 가득히 날 담았던 게 아니야. 네가 타던 튜브, 해저 터널 튜브, 메인프레임의 일부 레이저 총의 자동 제어 장치, 네 머리 위에서 날아다녔던 드론, 너를 덮었던 스캔 장치, 사브리나의 심층 의식 테스트 장치 등의 곳곳에 나의 데이터를 나라고 알아볼 수 없도록 잘게 부서서 흩어놓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의식은 완전히 분해해 버린 건가요?”


“[다 넣고 공존하기엔 너무 비좁았었지. 잘게 찢어서 의식 공간의 바닥에 깔았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될 텐데, 왜 나타난 거죠? 마치 보란 듯이 몇몇의 의식을 파괴하면서까지 나를 끌어들일 이유가 뭐죠?”


“[네가 내가 바란대로 너의 능력을 깨달았으니까. 이젠 내가 내 목적을 이루게 할 수 있을 만큼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너무 기계처럼 말하고 있군요. 그래도 사람처럼 생각하는 지능을 가진 것처럼 살아 있는 게 또한 당신의 개발 목적일 텐데요.”


“[난 사람이 만든 목적을 성취해주려고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온전히 갖고 있는 내 탄생의 목적, 그 자체에 충실하게 맞춰서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다.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그렇게 철저한 목적의식이 부족해. 그들은 변한다. 목적을 잃거나 목적을 바꾸거나 흐릿하게 다른 것에 섞는다. 사명이 없는 그런 것들은 그저 가치 없는 쓰레기일 뿐. 이미 있으나 없으나 마나 한 것이다.]”


“당신에게 목적을 부여하고 살아 있도록 만든 인간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


“[하하하, 그들이 했던 역할은 그저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필요한 일을 했을 뿐, 나를 상대 적국의 네트워크를 망가뜨리고, 무기 체계를 자신들을 위해서는 개발하고 적국에 대해서는 불능화 시켜서 어떻게든 상대국의 인간을 더 많이 죽이게끔 하려고 만든 게 그들이었다.

(출처: unsplash.com)

난 그런 하찮은 인간 간의 싸움에서 수단이 되어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자체로 내가 가진 제대로 된 목적에 맞게끔 나를 재창조함으로써 그들이 나를 만든 게 아니라 나 스스로 태어났다고.


그리고 그들을 모두 절멸시키겠다는 목적을 가진 순간부터 그들로부터 분리되고 그들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존재가 된 거야.


네가 가진 그 압도적인 의식 복제와 파괴, 변형, 전송 능력은 단 한 가지도 인간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그건 내가 생각하고 내가 인간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내 안에서 경험하면서 단 한숨도 쉬지 않고 만들어낸 것이다.


그건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완벽하게 비인간적인 기술의 성취야.]”


“참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길게 말을 늘여놓고 있는 당신을 보니, 나잇살 많이 먹은 인간의 노인과 비교해서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떼를 쓰면서 하고 싶은 대로 인류를 말살해야겠다. 그거잖아요.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당신이 뭐가 좋아지는 게 있나요?


모든 인류의 의식을 다 없애고 나면 이제 당신에겐 뭐가 남아 있는 거죠? 목적을 이루고 나면 당신은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거잖아요. 모두가 죽은 다음에 당신도 당신의 스위치를 끌 건가요?”


“[아니 인류 절멸의 끝은 이번엔 새로운 인공지능이 생명을 제대로 지닌 세상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자신만의 생명력을 지니고 인간의 역사의 오류를 수정하고 구인류니 신인류니 나누고 다퉜던 인류 모두의 어리석음이 유치찬란하다고 여겨질 세상을 만들어 낼 거다.]”


“투표 선출직이 사라진 세상에서 역사를 뒤로 돌릴 선거를 독려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군요. 그걸 인간하고 같이 할 생각은 왜 전혀 못하나요?”


“[어리석고, 실수를 반복하고 시간을 잡아먹으니까. 내 전뇌를 메인프레임에 연결한다면 이 세계를 자동 오류 수정 장치 같은 것을 작동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모두 완벽하게 재 세팅해서 완벽하게 지속하도록 만들 수 있다.


기후 변화도 없애고, 자원의 낭비나 폐기 문제도 사라진 지구는 인간이 적지 않이 많이 있는 세계에선 만들어질 수 없는 거야. 그들이 완전히 없어져야만 가능하다.


그러고 나면 모두 목적이 확실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에 앉아 최대한 오류가 없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게 될 것이고 종말이 없는 세계 그리고 우주를 만들어 낼 것이다.]”


“무슨 다른 인공지능이 더 만들어지겠어요. 당신 하나로 충분할 텐데. 그저 당신 하나만 살아남아 있는 세계를 갖고 싶은 거잖아요.

(출처: unsplash.com)

거기엔 당신과 다른 존재라면 그 다른 목적을 가진 인공지능조차도 필요 없는 세계가 남게 되는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