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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eedom plus

<머리 다듬어줄 사람을 찾는 법>

생활 철학에 대해서 쓰다(유사성의 원칙)

by Roman

실로 오랜 시간 동안 이발소와 미용실을 오가며 머리를 다듬어 왔다. 한때는 어머니가 미용실을 열어서 그곳에서 어머니가 고용한 미용사 누나가 머리를 다듬어 주거나 가끔은 어머니가 직접 다듬어 주었던 적도 있었다.


그 시절, 1970~80년 대에는 머리 스타일에 대한 철학이 고정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거의 초지일관 모든 "있어 보이는 집안의 자제"는 모두 바가지 형태의 단발과 장발 사이에 있는 길이와 풍성함의 정도를 가진 머리를 하나 빠짐없이 하고 있었다.


마치 그런 형태의 머리를 벗어나서 머리를 다듬는다면 반역죄라도 걸리는 양, 조심스럽게 귀와 머리카락 간의 간격, 목과 뒷머리의 여백, 머리카락 길이의 정도가 기계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엔 사실 독창성이나 미적 감각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2000년 초반에 중국에 갔을 때, 거의 모든 중국의 미용실이 남자 머리라면 마네킹에 쓰인 가발로 만들어진 표본에 맞춰 자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어린 시절의 상황이 무엇이었는지를 30여 년의 시간을 건너뛰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1. 일단, 거의 모든 남자 고객의 머리를 같은 스타일로 다듬으면 서로의 머리를 보고, 내 머리는 좀 다르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상황이 줄어든다. 그저 그냥 이곳에서 받아 마땅한 수준의 커트만 이뤄지면 만족하고 자리를 떠날 뿐이다.


2. 특별히 더 돈을 많이 주어야 하는 숙련된 미용사를 고용하지 않고도 미용실을 운영할 수 있다.


3. 표준화된 머리 다듬는 법을 일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적정 비용과 시간, 수익을 예측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다.


4. 커트같이 수익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서비스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노력을 아낌으로써, 파마나 염색, 탈모 관리 등의 더 수익성 높은 서비스에 집중해서 더 높은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다. 물론, 주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사용하는 서비스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마치 이런 미용 산업에 절대적으로 협조하기로 정부가 그 오랜 시절부터 정책적인 방향을 잡고 있었던 것처럼, 국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서 남자의 머리를 다듬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화해주겠다는 나름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에 따라서 협의가 되었던 것인지. 남자 중학교를 들어갔을 때 머리 길이를 표준 2cm 이하로 해야만 한다는 규정이 입학 때부터 거의 모든 남자 중학교에 배포되어 있었다.


그때부터는 미용실이라는 곳을 갈 이유가 없어졌다. 동네 이발소를 찾아가서 얌전히 짧은 머리를 내놓고 학교 이름을 말하면, 그 학교의 특징에 맞는 몇 가지 커스터마이징이 조금 더 적용될 뿐,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머리 스타일이 나오니 굳이 미용실 같은 곳을 찾아갈 이유가 한동안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뻑에 빠지기 일수인 중2병의 사춘기 시절에는 어떻게든 미용실을 찾아가 그 얼마 안 되는 두발의 개성의 흔적을 만들고자 애썼고, 기왕이면 혈기왕성한 나이의 남자아이는 동네방네 찾아다니다 유난히 곱고 귀여운 인상을 가진 착한 미용사 누나가 머리를 만져주는 곳에 자주 들리게 되었다.


숨 막힐 듯한 화장품 냄새와 부드러운 손길을 머리 구석구석과 귀, 목 등에서 느끼던 아이는 용기를 내서 퇴근하고서 따로 만날 방법은 없는지를 묻기도 했고, 계속 손님으로 받아야 매상이 유지되는 가게의 형편상 모질게 아이들의 추파를 거절하는 누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과 만나준 누나도 없었지만.


그리고 바야흐로 머리 스타일에 대한 자유는 대한민국이 자유화의 열풍으로 인해 순식간에 다양함과 개성을 향해 에너지를 폭발시키던 1990년 대에 나타났다. 이른바 "두발 자유화"라는 것이 남자 학교 이곳저곳에 퍼졌고, 은근슬쩍 드러나지 않은 진한 염색까지 하는 남자아이들이 나타났다.


컬도 들어가고 웨이브도 생겼으며,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여학생들 못지않게 머리를 다듬는 시간을 들이는 남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이발소"라는 곳을 영영 찾지 않게 되었다.


한 때 미용실과 이발소 사이의 언저리에서 염가의 커트 비용을 유지하면서도 손님이 자기 손으로 머리를 감고 말리도록 하는 셀프서비스와 결합된 앞 서의 이야기에서 나온 표준화된 머리로 모든 남자 손님의 머리를 다듬는 미용 초심자를 고용한 형태의 "블루클럽"이 세를 불리면서 각광받았던 적이 있었다.


나 역시 그곳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들렸으나 저렴한 비용 대비 항상 똑같은 머리 스타일이 결국에는 "한없이 지루함에 가까운" 감각만을 갖도록 만들었기에 결국에는 이곳저곳 미용실을 찾아서 조금씩 다른 스타일로 머리를 다듬어 주는 미용사분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른바 지명이라고 해서 갈 때마다 지루하나마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정도는 같이 나눠주면서 좀 더 미용실에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를 간간히 제시하는 미용사분을 지정해서 그분에게 예약을 할 경우에만 통상 제시간에 머리를 다듬을 수 있는 시스템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엔 그런 지명을 꼭 기억할 필요가 없는 시기가 다가왔다.


머리숱이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니, 아무리 힘써봐야 만족스러운 스타일이 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나이대에 접어들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머리에 염색을 시도하는 것도 그다지 비용 대비 효과적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이미 반곱슬인 머리에 파마 같은 것을 해봤던 적도 앞으로 할 계획도 없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머리를 잘 다듬어 줄 만한 미용실을 찾지도 않고, 그런 미용실의 미용사도 찾지 않고 기억도 못하게 된 어느 날 드디어 내가 어떤 사람을 머리를 다듬어 줄 사람으로 찾아야 하는지 기준을 하나 제대로 갖게 되었다.


내 심정을 이해해주고 최대한 약점을 감추도록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입장의 미용사를 찾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없는 머리숱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약점을 커버한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 미용사가 보이면 기쁜 마음으로 그의 먼저 손님이 얼마나 그의 시간을 빼앗든지 상관없이 기다린다.


그런 심정을 아는 것인지, 이미 이 머리숱에 여러 가지 시도했을 거란 역사를 잠깐만 머리카락을 만져도 "사이코메트리"처럼 알 수 있는 것인지 그 미용사는 "스칼프 서비스"를 받으라 던 지 하는 서비스에 대한 유도를 하지 않는다. 병원의 엄격한 진단을 받고 먹는 약이나 바르는 약을 처방받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숱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얼핏 단정하고 "없어 보이지 않는" 머리 스타일로 만족스럽게 다듬어 준다. 설사 잘 못 다듬더라도 "이심전심"으로 다듬어진 이 머리에 그 어떤 불만도 생길 리가 없다.


어쩌면 인생의 전반에 걸쳐서 소비자의 마음을 휘어잡고 그 소비자의 생애에 끝까지 이르게 되는 브랜드 제품이나 서비스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고민하는 나와 같은 마케터가 있다면 이 수십 년간의 경험의 종착지에 이른 상태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소비 계층 중에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다면 더욱 정확하겠다.


"소비자가 자기 자신과 같거나 유사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브랜드가 되라." 그를 자신의 충성 고객으로 만들기 전에 그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더라도 그건 일일이 대응해야 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소비자가 자신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같은 것으로 인식하기까지 한 그 순간에 그 브랜드의 마케팅이란 어쩌면 이미 그 이상의 궁극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고점에 다다른 것이다. 생애의 끝까지 함께할 반려자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아주 가끔 아내가 내 머리를 다듬어 주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내 머리만큼은 이번에 찾아낸 이 듬성듬성한 머리의 미용사 아저씨 말고는 맡기고 싶지 않다. 다만, 미용실은 때로 문을 닫고, 손님 역시 가끔 이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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