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목소리를 조율하고 새로운 곡 2개의 연습을 시작하다
오늘은 지금까지 전혀 배워본 적이 없었던 언어로 된 노래를 하나 배웠다. 연습 시작 5분 만에 지휘자님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한 음절이었다. 딱 두 글자. 그런데 지휘자님의 표정은, 우리가 지금 뭔가 잘못 부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고요. 더 단단하게. OO." 나는 방금 OO라고 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다시 불렀다. "OO." 지휘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한, 그 미묘한 간극 위에서 나는 일단 고개를 함께 끄덕였다.
이 곡은 낯선 언어로 쓰여 있었다. 그리고 지휘자님은 처음부터 못을 박으셨다. 한국식으로 읽으면 안 된다고. L은 그냥 'ㄹ'이 아니고, T는 그냥 '티읕'이 아니고, C는 '치읓'이 아니며, 모음을 괜히 늘려서도 안 된다고. 머릿속에서 영어, 한국어, 오늘 처음 만난 이 언어가 동시에 뒤섞이면서 나는 잠시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잊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다들 같이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습실 안에 전문가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같은 발음 앞에서 같이 멈춰 서 있었다. 그 공평한 낯섦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뜻을 알게 된 건 연습 중반쯤이었다. 이 노래는 줄다리기를 담은 곡이라고 했다. 줄을 잡고, 서로 당기는 장면. 그러니까 이 발음들은 그냥 예쁜 소리가 아니라, 힘을 써야 하는 소리였다. 지휘자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겨라, 이겨라 하면서 당기는 건데, 곱상하게 읽으시면 안 되잖아요." 연습실에 웃음이 번졌고, 그 직후에 우리 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뜻을 알고 나니 입에서 나오는 게 달라지더라는 것, 나는 그걸 그날 다시 배웠다.
파트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파트 이동을 전제로 한 "평정"이라는 단어를 쓴 간이 오디션이 지난주에 이어서 다시 벌어졌다. 베이스 파트와 테너 파트의 인원이 정확히 똑같기 때문에, 맞트레이드가 이뤄지는 것이 맞겠으나, 한분이 가게 된 반면, 와야 할 분은 오지 않게 되었다. 당장은 손해 같지만, 밸런스 상 "베이스"는 인원이 더 필요할 것이므로 더 충원이 될 테니, 그걸 기다리는 게 맞겠다.
파트 연습은 반복이었다. 소프라노가 먼저 나가고, 알토가 받고, 테너가 이어지고, 베이스가 따라붙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같은 마디를 몇 번이고 돌아갔는데, 그렇게 반복되는 사이 어느 순간 흩어져 있던 소리가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 왔다. 아주 잠깐이고, 완성이라고 부르기엔 이르지만, 분명히 어떤 방향이 생기는 순간. 합창의 쾌감이 있다면 바로 거기에 있다.
후반부에는 다른 언어의 가사도 다뤘다. 끝 자음을 놓치지 말 것, 숨은 정해진 데서만 쉴 것, 말을 흘리지 말 것.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시네요." 지휘자님이 말씀하셨고, 우리는 또 웃었다. 칭찬인지 놀라움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이, 왠지 기분 좋게 들렸다. 왜냐면, 화음이 음정이 아직 정확하게 배여 들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럴듯하게 조화로운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지휘자님이 잠시 멈추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부분은 음형보다 메시지가 먼저라고. 어떻게 부르느냐보다 무엇을 전하느냐가 중요한 자리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오늘 내내 붙들고 있던 발음과 박자와 호흡이 모두 결국 그 한마디를 위한 준비였구나 싶었다. 평화. 그 단어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시간 가까이 함께 입을 고쳐 물고 있었던 셈이다.
연습이 끝날 때 나는 처음보다 조금 덜 낯선 상태였다. 잘하게 됐다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조금 알게 됐다는 뜻으로. 합창을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많이 나아간 날이 아닌데, 뭔가 조금 쌓인 것 같은 날. 오늘이 그랬다.
다음 연습 전까지 집에서 혼자 연습해 오라는 부분이 있다. 지휘자님은 "오늘은 안 합니다, 걱정 마세요"라고 하셨는데, 합창단 생활을 좀 해보니 알겠다. 걱정 말라는 말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