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파트 재조정을 위해 간이로 치른 오디션, 오디션 준비
오늘 오랜만에 다시 합창단원이 개강이란 이름 아래 모였다.
방학 후 4개월 가까이가 흐른 오늘 그동안 떠나게 된 사람도 알게 모르게 있었고, 신상에 변화가 와서 다시 오기 어려워진 이들도 생겼다. 3월 말이었고, 새해 인사를 나누기엔 조금 늦은 때였다. 그래도 올해를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있었다.
기부 단체의 고객경험팀장님은 올해는 그 단체의 80주년이고, 후원자 합창단은 10주년이라고 했다. 또 2030년까지의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이야기하며, 그중 기후위기와 어린이의 관계를 짚었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가까운 거리는 걷는 것 같은 작은 실천도 함께 이야기됐다. 올해를 어떤 마음으로 시작할지 먼저 나누는 시간이었다. 보다 거대한 목표를 갖는 것이 구성원에게 중요한 것이니 잘 들었다.
곧이어 총무님과 지휘자님으로 이어지는 악보에 대한 저작권 이야기가 나왔다.
악보와 음원, 관련 자료는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되고, 복제와 배포, 온라인 공유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합창단 내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자료이고, 영상 결과물도 기관 승인 없이 외부에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합창단은 노래를 부르는 곳이지만, 그전에 지켜야 할 규칙이 분명한 곳이기도 했다.
그 뒤에는 올해 곡과 방향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올해는 소리만이 아니라 행동과 메시지가 함께 보이는 무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여러 나라 언어의 곡을 검토했고, 아카펠라 곡도 포함됐다. 국내 대회에서는 한국 가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대회 규정상 아카펠라 두 곡 이상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왔다. 쉽게 들리는 곡보다, 무대에서 합창단의 성격이 드러나는 곡들을 놓고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곡 이야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곡은 아직 시장에 공개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악보의 출처가 드러날 수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한 해 동안 어떤 곡들을 어떤 방식으로 편찬해 나눌지, 자료를 묶어서 줄지 나눠서 줄지도 아직 고민 중이라고 했다. 연습은 시작됐지만, 준비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이날의 마지막은 파트 점검이었다.
이름을 부르고, 각자 자기 파트를 불렀다. 필요하면 다른 파트도 확인했다. 잘하고 못하고 보다 호흡과 음색,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겠다는 말이 있었고,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베이스의 배치를 다시 조정하겠다는 설명도 나왔다. 지금 편한 자리에서 소리가 나와야 이후 안무와 움직임도 가능하다는 말이 남았다.
그러고 나서 파트별로 우선 오늘 나온 단원이 성별로 각각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베이스 부분을 일부 마디만 발췌해서 불렀다. 그 과정에서 테너 파트만을 제외하고는 소프라노와 알토, 베이스 모두에서 원래의 파트에서 다른 파트로 이동하는 사람이 생겼다.
누군가는 극구 거부했고, 누군가는 선호하고 원했다. 나도 일단은 이같이 조정하는 것이 금년 동안 난이도가 또한 높아진 여러 곡을 익히고 소화하기 위해선 필요한 일임을 납득하는 입장이었지만, 베이스 파트장인 나를 제외한 모든 파트원이 베이스보다는 테너 파트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나 이전의 베이스 파트장님도 테너 적합 평가를 받고, 이동하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서는 나조차도 가느다랗고도 높은 미성으로 노래를 부르며, 테너로 이동하고 싶다는 강력한 신호를 느꼈다. 그런데, 테너에 적합 여부를 확인할 기회도 없이 베이스 곡만을 부르고 평가가 끝났다. 나 역시 음역대가 넓은 바리톤이기도 하다.
물론, 신입단원을 뽑으면 베이스 인원이 더 오기야 하겠지만 그동안 같이 연습하고 손발을 맞추며, 유대감을 쌓은 파트원이 하나도 남지 않고 나만 남아 있는다면, 참으로 썰렁한 조직이 되는 셈이다.
지휘자님이 일정 규모 이상의 아마추어 합창단의 경우 평정을 분기별로도 하면서 여러 파트에 대한 동시 가창 능력을 가진 멀티플레이어도 탄생시키고, 파트 이동을 통해 리더도 꿈꾸게 해 주기도 한다며 이 같은 음색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통한 이동의 이점을 열심히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야 충분히 이해했지만, 어느새 감정을 빌은 입이 "저도 테너 갈 방법은 없을까요"란 질문을 던졌다.
그저 웃는 정도의 답변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지만, 테너가 적합하다고 판정을 받은 이전의 베이스 단원 중에 몇 분이나 이 파트에 남아 있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인간적인 유대감을 쌓아왔던 시간이 갑작스럽게 균열을 일으키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자책까지 몰려드는 것을 깨달았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이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음을 오늘 깨달은 것이다.
듣고 보니 합창단은 늘 노래보다 먼저 시작되는 것이 있었다.
방향을 정하는 말, 지켜야 할 규칙, 무대 성격을 정하는 선곡, 그리고 사람의 음색이 자리할 파트를 다시 보고 배치를 달리하는 시간. 같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그리고 노래 전에 있는 관계와 관계의 유지를 통한 참여 유지라는 것은 실제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계속 참여하게 만든 일종의 이유였지만. 어찌 되었든 베이스로서는 타고난 것인지, 그동안의 삶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정받기는 받은 것이니 감사할만하다.
그러나 오디션이 진행되고 신규 베이스 단원이 빠져나간 기존 단원의 자리를 채울 때까지 대략 한 달간의 시간은 어쩌면 고독과 더불어 테너에 대비,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오는 보다 적은 인원의 빈약한 사운드로 연습에 임해야 한다.
점심 식사를 지휘자님과 반주자님과 나를 포함한 자발적인 봉사자로서의 임원이 모여서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 마치고 헤어질 때, 뭔가 한없이 가벼워진 듯한 나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쓸데없는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전두엽의 활성화를 위해서 마음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김주환 교수님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이렇게 뭔가를 잃은듯한 느낌이 사실 아무 근거가 없거나 실체조차 제대로 없는 것에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했던 탓이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누구나 각자의 판단이 있고, 내가 내린 판단이나 평가가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어떤 결정에 대해서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겠다. 그저 마음을 더 가볍게 하고, 집착을 지우며, 선호만 남겨두면 되는 것이니까.
다음 주부터의 연습에 설사 베이스 파트에서 혼자가 되더라도 참여해서 할 수 있는 연습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합창단과 후원에 관련된 헛된 바램과 환상을 마음으로부터 비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