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을 찾는 여정

세부 여행을 다녀와서 적는 다짐

by 맥봉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적게 된 이유는 역시나 게으름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글을 적게 된 이유는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고.


이번에 필리핀 세부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 두 명과 함께 총 세 명이서 다녀왔는데 솔직히 매우 좋고 재밌었다.


내 친구 중에는 말을 함부로 하는 친구가 있다. 이전의 글에서 봐서 알겠지만 '황금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라는 브런치 스토리의 제목은 그 친구를 보고 만들어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신의 기분이 먼저인 친구였고, 말은 친구를 위한다면서 꼬붕을 데리고 다니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물씬 풍겼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화부터 냈다. 처음에는 그것에 맞춰서 싸웠으나 점점 도가 지나치자 친구들이 하나씩 그 아이에게 그만 하라고 말을 했고, 성인이 되며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던가. 억지로 화를 내고 사과를 요구하는 심성은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치를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일단 친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행동을 하거나, 남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날카로운 말들로 찌르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비아냥 대며 그것이 장난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술술 풀어서 말하는 것을 내가 공감이라도 할라 치면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한다.


내가 실수한 일에 대해서 화를 내고, 나는 그 아이가 화를 낸 것에 대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를 구하면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라는 식으로 응수한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화를 내기에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해도 사과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버리기에 지칠 수 밖에 없는 구조.

본인도 본인이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라 말이 날카롭게 나온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고칠 수 없단다.


문제는 그 아이의 성격과 말투가 아니라 내가 싫은 게 문제다.

그 아이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그것이 자신의 성격이고, 그게 존재 이유다.

고쳐지지 않을 것을 안다. 그래서 그 아이 스스로에게는 그 아이의 성격이 문제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 아이의 성격보다 내가 그 아이를 싫어하는 게 더 문제다.


어느 순간, 그 아이의 기분에 놀아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기분이 좋으면 신이 나서 얘기를 하고, 그러다가 기분 좋을 때 생각해서 신나서 얘기하면 또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 하나하나가 꽂히니, 나중에는 눈치를 알아서 보게 되더라.


그 아이는 내가 다른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행동을 했을 때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항상 이유를 묻곤 하는데, 솔직히 그냥 나온 행동에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예를 들어, 음식을 다섯 개씩 나눠야 하는데, 때마침 버스가 오고 있어서 부리나케 나누느라 한 개를 더 줬다 치자.

그럼 그냥 대충 잘못 줬겠거니 하고 나중에 갖다주거나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 되는데 그 친구는 굳이 전화를 걸어서 '이거 하나 더 준 이유가 뭐야?' 하고 묻는 녀석이다.

그 말투가 심히 날카로워서 그냥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공격성을 다분하게 띄고 있고,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듣는 사람은 '어? 내가 하나를 왜 더 줬지?' '아, 주면 안되는데 내 실수인가?'하고 눈치를 보게 만드는 거다.


물론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 같은 경우 그냥 잘못 줬다고 하겠지만, 애당초 그런 아이들에게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대하지 않는다.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걸.

내 자신을 깎아 먹으면서까지 그런 사람의 곁에 있는 내 문제라는 걸.


그렇다고 모든 친구 관계를 버리고 은둔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걸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맞다. 내게 친구들을 버릴 용기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용기를 만들어가고 싶다.

내 자신이 더 소중해져서, 그래서 나를 깎아 먹는 친구들 주변에 내가 서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아까워지게 되면, 나도 자연스레 그들에게서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가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남도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그저 그렇게 방치한다면 그런 아이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괴물이 되어가는 친구와, 그런 괴물 아래에서 눈치를 보며 떠받드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될 뿐이다.


속 얘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저 친구는 너를 왜 이렇게 함부로 대하냐고.


그런데 속얘기를 몰라도 괜찮다.

속얘기가 있든 없든,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게 당연한 건 아니니까.


그 아이가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나 또한 이렇게 살아왔다.


사람은 바뀌지 않지만, 내가 정한 한계를 한 번 깨보고 싶다.

눈치보며 주눅들었던 내 삶을 한 번 깨보고 싶다.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렇게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을 때, 내 인간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걸 한 번 알아보고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 써 왔던 인간관계 글에 더해 진정한 인간관계를 위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글로 옮길 작정이다.


내 단점과 장점을 파악하고, 단점을 깨부수며 나 본인을 찾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기 조절감과, 자기 효능감, 그리고 자기 안정감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인지.

알아내고 도전해본 것들을 이 브런치에 쓰는 글을 통해서 독자 여러분께 소개할 생각이다.


함께 따라오셔도 좋고, 그저 멀리서 지켜봐 주셔도 상관 없다.

나중에 도착한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나 또한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나는 실천했고.

그 끝에 뭐가 됐든 배우고 있는 나 자신이 있을 테니까.


그럼 용기 또한 생기지 않을까?


이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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