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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Jul 19. 2023

마음가짐, 나의 마음의 짐

하늘의 햇빛이 쨍하다 못해 쏴버린 듯한 레이저 빛 아니 레이저 빔



남편은 가볍게 먹는다는 말을 가볍게 뛰어넘어 자정이 넘은 시간에 들어왔다.

따로 메세지를 말하지 않아도 일이 꽤나 힘들어서 마음도 힘들었구나가

나를 향해 허그를 요청하는 그의 두 팔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고맙고, 미안하고, 또 고맙다. 

지치지 않게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어제 회식은 급작스럽게 먹기로 한 회식이었는데,

굳이 말하지 않아도 회사의 일이 유독 힘들었거나

아니면 술이 마시고 싶었거나 두 가지 정도로 축약해서 생각한다.


미리 정한 약속이든, 갑자기 정해진 약속이든

편하게 먹고 오게끔 말해주는 편이다. 

회식도 일의 연장선이고, 동료들하고도 회포도 풀고,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잘 풀어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1차는 오리백숙, 2차는 소고기, 3차는 맥주집에 들렀다고 한다.

나는 하루에 초복과 중복, 말복까지 스페셜로 즐기고 온 것 같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소고기집에 가서 보내준 소고기 사진의 빛깔은 너무나도 부러웠다.

마치 사람으로 치면, 빤히 나를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느낌이었달까.




아주 가끔 나의 마음은 쇠약해지고 나약해질 때가 있다.

예전에는 자주 그러했다면, 결혼을 통해 마음이 단단해져서 그런건지.

아니면 약함이 찾아와도 잠시 머물다 가는건지는 몰라도.


오늘은 약간 그런날이었다.

눈물이 나진 않아도, 얇은 이불 하나 깔고

그냥 그대로 누워서 아무것도 안하고 싶던 날이었다고나 할까.



막상 집에 있더라도, 나는 누워있거나 퍼져있지 않으려고 한다.

정해진 루틴대로 가급적 살려고 한다. 


결혼 전에는 준비할 것도 많고, 머리가 뒤죽박죽이라서

쉬었던 일본어 회화공부를 다시 시작했으며,

느슨해졌던 독서는 팽팽한 고무줄을 바짝 당기듯

집중해서 몰입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분명히 키와 외모에는 좀 변화가 있는데

내적인 것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오전에는 집을 청소하고 나서 소격동으로 넘어가서 전시회를 봤다.

혼자 또는 두 명이 온 사람들이 많았었던 것 같다. 비가 미친듯이 내리는 날에

가는 것보다는 해가 쨍쨍한 날에 가는게 나을 것 같아서 다녀왔다.


탈수과정을 거치지 않은 축축한 그 어느 옷을 입고 나왔어도

오 분 내에 바짝 마를 수 있는 정도의 햇빛을 체감했다.



전시회를 보고나서는 반사적으로 광화문역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급하게 스마트폰을 켰지만, 걸어서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기엔

민망하게 애매한 거리였다. 그냥 걷기 시작했다.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땀을 흘리며 음료나 디저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복을 입은 그들이 멋있고, 자태도 참 곱다고 생각했다. 


나는 걸어서 삼청동 블루보틀이 보여서 무의식적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이젠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로선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메뉴판을 조금 둘러보고 다시 돌아서 문을 열고 나왔다.


그 때 잠시 배경삼아 앞에 서있었다. 

생각해보니 4년 전 쯤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할 때 쯔음,

수료 얼마 전에 머리를 식히러 온 이후로 오랜만에 온 것이구나 하는 메세지가 

뇌리를 스쳤다.

 

그 땐 늦깎이 기자 연수생이었고,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던 때에

내가 기자가 되면 발빠르게 소식을 전하고, 따뜻한 글을 쓰고,

마음 울림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그 곳에 서있었는데....




오랜만에 그 곳에 가서는 기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뭔가 처연하게 더운 바람을 맞고 서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집에 오는 길, 이 구절이 떠올랐다.


"같은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더라도

같은 장소에 가거나 음식을 먹더라도

어떤 시기에 가느냐에 따라 그 감흥이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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