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과 적응, 그 중간 어딘가에 떠있는 외딴섬 표류기
남편의 휴가는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사촌동생에게 택배로 보낼 샤브레를 구웠고,
남편은 침대에 푹 누워서 충전을 하고 있었다.
다소 여유로운 시간들이 가득한 것으로 사려되나
주말의 피로와 긴장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주말은 예정돼있던 남편의 친척 분들과 펜션을 다녀왔다.
남편, 시아버님, 도련님, 큰고모님, 작은 고모님,
큰고모님의 4남매인 친척형누님들과 열 명이 좀 안되는 조카들.
수많은 분들은 이미 교류가 있는 가족분들이지만,
외딴섬같은 나는 고군분투를 하고 왔다.
그 어떤 분도 나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셨고
도와달라고 말한 분이 한 분도 안계셨지만
나는 미어캣처럼 살금살금 가서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윷놀이 말놓기, 야채씻기, 감자굽기 등
포지션에 인원이 비어있거나 애매한 곳에
알아서 침투해서 하나씩 도와드리는 것에 집중했다.
남편의 사촌형님을 비롯해 내가 일하는 것을 보신 몇몇분은
일하지 말고 편하게 있으라고 하시거나, 누가 시킨거냐면서
놀래셨는데 그게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 뭐라도 도와드리는 게
제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어딜가서 뒷짐지거나 가만히 있지말고,
일을 찾아서 하라는 우리 엄마의 말이 매우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모인 분들께서 나누시는 잘 모르는 것 같은 정신없는 이야기들에도
나에게 물어오는 수많은 질문에는 일단 적당한 미소로 시종일관 웃기 바빴다.
잘 몰라도 웃다보면 내가 즐거워지겠지 라고 주문을 걸어대며.
술과 노래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곳에는 더 없이 인생의 마지막날을
즐기는 분위기로 이어져서 발바닥 힘까지 끌어서 박수를 치고 호응을 했다,
남편은 우리 식구들과 모였을 때에는 볼 수 없는
귀까지 스마일이 걸린 모습을 보여줬다. 우러나오는 진짜 웃음이 느껴졌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웃음을 지을 수 없는 나는 너무도 부러웠다.
어떻게든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스며들고 싶으나
내가 집어 올린 스펀지는 물을 흡수 못하는 돌멩이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한 번 '아 내가 진짜 결혼했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도 우리 가족과 왔다면, 지난 밤 잠을 못자서 피곤하다는 것과
내가 모르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거냐며
농담을 던질 수 있었을텐데 싶었다. 그 자리는 참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남편외에 편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나마 농담을 잘 건네고 종종 내게 괜찮냐고
웃으면서 물어보는 도련님정도.... 내가 곤란한 표정이 어떻게든 보여서 그럴까 싶어서
무척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아버님은 저번보다 내가 살이 빠져 보인다고 하시면서 며느리 많이 먹으라고 말을 건네셨다.
죄송하지만 그 말은 귓바퀴에 3초도 채 머물지 못했다. 뭔가 어지러웠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 아빠가 10남매에 둘째인데다가 제사 두 번, 명절 두 번을 어릴 때부터
바글바글한 친척들과 모여서 지낸 거라 스무 명 정도의 인원은 거뜬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생각해보니 그건 어쨌든 어릴 때부터
마주하고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 아니던가.
나는 상추에 깻잎을 싸먹고, 꺳잎에 버섯을 싸먹을 정도로 속이 안좋았지만
많이 먹는 척을 하기 바빴다. 어떻게든 먹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했으니
느글느글한 고기보다 야채 위주로 싸서 한 쌈 싸먹는 모습이라도 보여드렸다.
나는 얼굴 표정과 말투는 웃음이 탑재된 부드러움을 유지했지만,
내 얼굴, 몸통, 팔, 다리는 어디 좁은 골목 틈에 끼어버려서 못 나오는 느낌이었다.
분명 새 식구가 되어 너무 반갑다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인데
스스로는 예민하고 뭔가 터져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휩쌓여 있었다.
시종일관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으로 적당한 미소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시간이었다. 돌아와서 두통이 꽤 이어졌다.
그렇게 그 다음날 오전에 집에 돌아와 무리하게 에너지를 끌어 쓴 탓에
지쳐버렸지만, 청소를 한 후에 남편과 냉동실에 남아있던 치킨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먹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포지션에서도 완벽한 사람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어차피 될 수도 없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으니까.........
생각보다 덜 애썼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지만
오히려 너무 생각이 많아서 스스로를 골치아프게 한 것 같다는 것을.
남편에게 서운하거나 아쉬운 것 보다
내 스스로가 모자르고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자리였어서
마음이 조금 지쳐있는 것 같다.
욕실에 락스칠 해둔 것에 물을 뿌려주면서
생각에 환기를 불어 넣어야겠다.
문득 요몇일 기차를 타고 혼자 어딘가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조만간 남편한테 양해를 구하고 당일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이 시간에 거실 커텐 틈 사이로 내려쬐는 빛보다는
커텐이 가려서 만들어진 어둠이 좀 더 오늘은 마음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