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단거리보다는 장거리 달리기를 잘하는 편이다.
장거리의 기준은 모호하겠지만, 대게 10km 정도 부터 달리기 대회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그쯤부터는 장거리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항상 숨이 가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여기에 조금 힘이 되어주는 나만의 만트라가 있다.
나만의 만트라라고 하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덕분에 너무 유명해졌지만 그래도 소개하자면,
“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이다”라는 문장이 나의 만트라다.
달리는 와중 너무 힘들고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고 포기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완주하게 되는 건, 지금 이 달리기를 내가 선택했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를 느끼기 때문 아닐까.
이 만트라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명장면과 맞물리면 더욱 빛을 발한다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지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대학생 시절 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할 때 쯤 항상 하던 논쟁거리가 있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외모나 능력은 사실상 ‘나’라는 개체를 표현하는데 아무런 가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은 누구나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그 배경 역시 운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내가 실존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 혹 나는 무엇으로 타인과의 차별을 둘 수 있는가?
가물가물 하지만 당시의 대답은 아마 ‘나는 무엇에 고통을 느끼는가’ 였던 것 같다.
‘누구에게는 쉬운 일이 누구에게는 치열하게 노력해도 얻지 못할 것들이었다. ‘
_ 김이설 「나쁜 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