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_세르반테스, 「돈키호테」
2)
“기분 좋게 살면서 아름다운 것들만 본다고 감수성이 커지는 건 아니죠. 옳고 아름다운 것을 찾기 위해 온몸으로 고통을 감당할 때 거기서 감수성이 생깁니다.”
“인간의 매력도 마찬가지라 적당히 해서 적당히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호된 경험을 통해 인간이 깊어지는 것이며, 정말 중요한 것은 많은 경우 고통을 대가로 얻게 됩니다.”
_임경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개인적으로, 사람은 결국 ’어떤 고통을 견딜 것이냐를 선택하는가‘로 삶의 형태가 그려지는 것 같다
가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고통을 견딘 대가로 얻을 수 있다.
몸을 키우고 싶다면, 적당히 가벼운 무게로 운동해서는 쉽지 않다. 무거운 것을 들며 근섬유에 손상을 가해야 한다. 그러면 회복하는 과정을 거쳐 조금 더 멋진 몸을 얻을 수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는 것만 공부해서는 그 수월함에 당장에는 기분이 좋고 덜 고통스러울지는 몰라도 큰 성과를 얻을 순 없다. 모르는 것을 선별해 내고 틀리면서 더 많은 고통을 견뎌야 보답받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개인차가 존재한다. 누구에게는 너무 힘든 고통으로 다가오는 게, 누구에게는 별로 힘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건 마치, 사람의 마음과도 같다.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명의 제각각인 마음이 있듯이, 고통을 견디는 자세도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난 매일 똑같은 것을 먹어도 별로 힘들지 않다. 흔히 말하는 ‘식단’에 인이 박힌 사람인데, 매일 먹을 것을 고민할 필요 없이 간편해서 편하다. 식단을 하면 자연히 몸을 가꾸기 더 용이해진다. 그래서 친구들은 식단을 하는 나를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말해 개인적으로 칭찬받는 게 굉장히 머쓱하다. 그저 내 편의와 몸을 가꾼다는 지극히 나를 위한 자기만족일뿐이다.
무엇보다 위에 말한 것처럼 나에겐 별 고통이 아니다. 아마 이건 먹을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내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음식에 있어서 좋고 싫음의 호불호야 있지만, 굳이 더 맛있는 걸 찾지는 않는달까. 지금 내가 해먹을 수 있는 요리에 만족한다.
그런 맥락에서 자신이 어떤 고통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잘 파악하는 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자기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을 테지만.
돈키호테의 저 문장에 한동안 마음을 뺏긴 적이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꿈꾸던 그가 행복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닿을 수 없는 것에 닿으려는 자신의 결심에 진심을 다하는 그가, 내게 참 많이 멋져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