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해저기지에서 탈출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나가게 도와줄 수는 있어요

by 리을의 생각

1. 온갖 걸 다 되돌려보고 후회하는 인간이라 후회를 안 한 게 거의 없을 지경이다. 자신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남을 돕는 걸 선이라 볼 수 있나? 유금이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선으로 생각하겠지? 사람들은 쉽게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 그게 편해서. 그게 쉬워서. 그게 덜 힘들어서. 그게 이득이 되니까. 나는 그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덜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서도 여길 나갈 수 있는 거라면.



2. 심정적으로는 해저기지를 벗어나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만, 나보다 훨씬 작고 약해 보이는 투마나코나 슈란에게 탈출정을 양보받아 타고 나가라고? 나는 용감하진 못할지언정 비겁하진 않다. 그리고 나는 부끄러움을 안다.



3. “아마 저는 이 해저기지에서 탈출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나가게 도와줄 수는 있어요.”


이 해저기지에서 아무도 못 나가는 거보단 나았다. 나는 탈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내게 위로가 되었다. 살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는데, 그게 내게 도움이 안 된다면 타인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게 낫지 않은가. 아무 의미 없이 계속 죽거나 괴롭기만 했다면, 나는 내 방에 처박혀 하루종일 울면서 드러누워 있었을지도 모른다.


4.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같이 갑시다.”

“… 그럴 의무는 없습니다.”

“네. 없죠. 하지만 신 팀장님은 자기 팀원이 다쳤으면 끝까지 데리고 가셨을 거 아닙니까. 저도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에게에게 짐이었을 겁니다. 수많은 호의와 동정으로 살아왔는데 이번에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5. 좋은 사람들 볼 때마다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해요. 아무 풍파에 시달리지 않고,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되도록 커다란 금고에 넣어서 보호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6. 강당에 있는 인질들을 구출 하시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풀밭에서 있었던 전투보다 더 위험할 겁니다. 제가 옆에서 아무리 열심히 돕는다 해도 애영 씨에게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실질적으로는 애영 씨 혼자서 테러리스트들과 맞서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제가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해야죠

백애영의 말을 잠시 곱씹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사람도 있는 세상에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니.


7. 어차피 사람들 다 비슷하고 똑같아요. 왜 당신만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죠?

… 인생 한 번 사는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그래


8. 저는 당신이 겁에 질려서 이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아마 저희가 다른 곳에서 다른 일로 만났더라면 더 괜찮은 사이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9. 전 최대한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살 거예요. 세상이 좋아지는 건 둘째 치고 저한테도 좋은 기억을 많이 심어주고 싶거든요


10. 백애영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백애영이 최소한 신해량이나 서지혁 같은 신체 조건을 가졌다면 이런 식으로 어마어마한 불안감을 가지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11. 저는 언제나 남이 안 가던 길을 개척해서 갔어요.

예전에 가본 길을 계속 가면, 경험해본 실패와 작은 성공만 하게 돼요


12. 해량 씨가 제 좋은 부분들만 보셔서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엔 겁에 질려 울면서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별 도움도 안 되는 저를 주변 사람들이 같이 데리고 다니고, 또 도와주셨기에 그걸 보고 배운 겁니다. 사실 저는 별 능력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걸 돌려준 거지. 나도 도망치는 모습들만 봤으면 계속 울면서 혼자 도망치기만 했을 것이다.


13. 상대방에게 제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도 모자랄 판국에 왜 제일가는 나쁜 놈이 되고 싶어 합니까?



14. 설명하기 되게 애매해요.

33번 중에 19번은 겁에 질려 날 두고 혼자 도망쳤고,

10번은 날 데리고 갔고, 4번은 데리고 가다가 힘들어서 중간에 버리고 갔는데.

그럼 평균을 내서 괜찮은 나쁜 놈이었다고 알려줘야할까요?

아마 구원자님이 만나는 사람들도 비슷할 거예요.

무현 씨를 대가 없이 도와주는 사람도 있을 거고, 10번 죽어 마땅할 놈처럼 구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평소엔 잘 도와주던 이가 상황에 따라선 천하의 쓰레기처럼 굴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자면 제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래요. 저한테 친절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개같이 굴 때도 있으니까


15. 해량 씨가 제 좋은 부분들만 보셔서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엔 겁에 질려 울면서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별 도움도 안 되는 저를 주변 사람들이 같이 데리고 다니고, 또 도와주셨기에 그걸 보고 배운 겁니다. 사실 저는 별 능력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걸 돌려준 거지. 나도 도망치는 모습들만 봤으면 계속 울면서 혼자 도망치기만 했을 것이다.


16. 저는 무현 씨의 착한 행동들이 속으로 좀… 지겨웠어요.

능력도 없으면서 책임지려고 하는 데다, 도덕책 같은 소리나 하고.

아마 저같이 망가진 사람은 무현 씨가 하는 행동을 보며 비웃고 있거나,

무현 씨가 철저하게 망가지길 바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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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글은 스쳐 지나가고, 몇몇 문장만이 우리 안에 남는다. 봉준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말했지만, 우리에게 남는 문장이 반드시 기발하거나 새롭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끝내 말로 꺼내지 못했던 감정을 정확하게 짚어내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도 사람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작가란, 그 서로 다른 풍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타인에게 건네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는 ‘선의’라는 관념을 끝까지 붙드는 한 인물을 통해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선의는 과연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이 작품은 판타지에 가깝다. 주인공은 아무 능력도 없지만, 그의 주변에는 그를 지탱하는 초인적인 존재들이 있다. 그래서 그는 종종, 능력도 없이 말만 앞선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베푸는 선의는 오래가지 못한다. 기대는 쉽게 어긋나고, 그때마다 사람은 상처를 입는다. 그렇게 선의는 점점 계산으로 바뀌고, 결국에는 회의로 굳어진다. 그렇다면 끝까지 남는 선의는 어떤 것일까.


그들은 선의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할 수 있으니까 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선의는 이미 그들의 삶에 각인된 방식이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나는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받아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어렸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배려와 가르침 속에서 자란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든,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든, 누군가를 돕는 선택 자체는 이미 충분하다. 설령 자신은 끝내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타인을 밖으로 탈출하도록 돕는 사람을 보면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런 사람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작지 않은 의미로 남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착해진다. 기분과 상황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 우리가 가진 자연스러운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쉽게 달라진다. 그만큼 한결 같은 이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무한하다면 얼마든지 다시 고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횟수는 한정되어 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며 살았는지는 사라지지 않고 쌓여, 끝내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점처럼 찍힌 선택들이 이어져,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말해준다.


결국, 타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따뜻한 말을 건네는 쪽을 택하고 싶다.

어제보다 오늘, 그런 선택을 더 자주 반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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