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내게 있어 남녀 간의 관계는 지극히 단순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고백한다. 나를 좋아하면 시작되고, 아니면 끝난다. 운 좋게도 고백이 실패한 적은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공정한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을 숨기지 못한다.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나는 그 사람을 오래 관찰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빛이 나는 이들에게 모이는 법이다. 특히 소외된 친구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사람에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권위 같은 것이 생겼다.
사실 나에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했기에, 나는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더 많이 보았던 것 같다. 기가 센 동성에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약자에게는 어떻게 대하는지, 이성에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동성과 이성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권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된 분위기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에게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그를 지켜주고 싶어지는 분위기가 생겨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보호하는 편에 서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세상과 조금 맞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더 쉽게 상처받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정이나 선심 같은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가 알려준 것은 아니었지만, 내 안에는 사람을 알아보는 감각 같은 것이 있다고 믿었다. 내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사람들은 실제로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연인에게 좋은 기억만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어떤 나쁜 일들은 결국 좋은 것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좋은 일들이 나쁜 쪽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좋은 기억이 대부분인 연애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쉽게 주지 않는다. 자동차의 블랙박스를 사고가 나기 전까지 확인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처럼. 결국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는 대부분 문제가 생겼을 때 찾아온다.
타인으로 인해, 혹은 사랑으로 인해 큰 아픔을 겪어본 적이 없던 나는 그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무언가에 대해 고민할 때 남의 말을 그대로 믿는 편은 아니다. 그보다는 관찰에 가까운 방식이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만 그것은 그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정도의 참고일 뿐이다. 결국 나는 그것들을 통해 내 생각을 굳히는 편이다.
실제로 좋아하는 이성을 바라볼 때도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관찰하기가 꽤 어려워졌다. 사람을 볼 수 있는 시간도, 맥락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나와의 관계 속에서만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성역 같은 느낌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확신의 반장상 같은 사람들.
어쩌면 좋은 사람이라는 인성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재능일지도 모른다. 특히 강자와 약자 앞에서의 행동과 태도는 더욱 그렇다. 나는 학창 시절,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사랑이나 사람에 대한 어떤 확신으로 누군가를 쉽게 긍정하거나 혹은 그 확신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부정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사람을 알아본다고 믿었던 그 감각은, 학교라는 환경이 만들어준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는 사람을 오래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는 재능을 가진 이들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 세계를 벗어나자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쉽게 사람을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내가 사람을 알아본다고 믿었던 그 감각을 더 이상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해 그만큼 무지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