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본능에 불과하다면
내가 인식한 사랑은 크게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능과 해석. 사랑은 이 둘이 뒤섞이며 만들어진다.
누군가는 사랑을 자연적인 감정이라고 말한다. 우연히 찾아오는 떨림, 설명할 수 없는 끌림, 운명처럼 마주치는 어떤 순간.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눈에 이끌리고 아직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괜히 물컵을 만지작거리거나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마주친다. 그때 이유 없이 심장이 조금 빨리 뛴다.
이런 감각은 매우 본능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쉽게 자각한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사랑은 단순하지 않다. 사람은 각자의 인생 속에서 ‘사랑’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낸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자신의 결핍을 완성해 주는 서사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은 ‘운명적 만남’이라는 신화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랑 속에서 영원을 꿈꾸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각자가 만들어낸 서로 다른 이야기로 사랑을 해석한다.
그래서 사랑은 더 이상 순수한 본능이 아니다. 경험, 욕망, 기대, 계산, 기억, 그리고 사회적 이야기들. 수많은 것들이 섞여 사랑이라는 감정을 하나의 형태로 구성한다.
즉 사랑은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감정이라기보다, 인간이 해석하고 만들어낸 복합적인 구성에 가깝다. 그래서 사랑은 어쩌면 대단히 인위적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 점에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본다. 만약 사랑이 단지 본능이라면 그것은 동물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다르다. 우리는 특정한 사람을 특별하게 만든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단 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책임을 떠안는다.
좋을 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란 단지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곁을 지키겠다는 지속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어쩌면 의지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온기와 떨림이 사라진 사랑은 어딘가 지나치게 건조해진다. 머리로만 유지되는 관계는 결국 공허해지기 쉽다.
그래서 사랑은 아마 이 두 영역 사이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본능이 불씨를 만들고 의지가 그것을 오래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본능만 있다면 사랑은 가벼워지고, 의지만 있다면 사랑은 메말라버린다. 사랑은 그 두 힘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순간 비로소 인간적인 형태를 갖게 된다.
우리는 의미를 부여함으로 의지를 가질 수 있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사람은 행복이 아니라 의미로 살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 사랑을 지키는 방식은 그 사람의 고귀함을 드러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본능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인위적이기에 고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