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편린
가끔 아카이빙 한 예전 대화나 글들을 보면, 좋은 추억들이 떠올라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이건 아마 대학생 때 친구들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추천하며 쓴 글 같다. - 어렴풋한 기억에 2016년 ~ 2017년을 기점으로 저 작품이 한국에서 유행한 것 같은데 그게 벌써 10년이라니.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솔직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많이, 기록해 이런 편린들을 점으로 만들고 내 기억의 여러 점들과 연결시키고 싶다. 조금이라도 남겨놓는다면 나는 내 삶을 한 번 더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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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것이다 - 물론 타고나길 타인에게 사랑받기 좋은 본성과 재능으로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긴 함. 질투도 별로 없고, 있어도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다루고, 섣불리 타인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누군가를 시기하지도 않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 그릇이 크다의 느낌이 이런 거 같긴 함 - 여기에 좋고 나쁨은 없다. 그저 날씨 같은 것. 우리는 그냥 토끼가 이유 없이 태어나듯이 그렇게 태어난 것. 그런데 벗어날 수 없는 이런 구성원리를 자꾸 부정하려고 하니까 방황하게 되는 것.
종교적 박애주의조차도 인간의 이기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회하는 것인데 자꾸 벗어날 수 없는 걸 벗어나려고 하면서 부끄러움과 고독을 느끼니까 인간실격 속 주인공 요조는 방탕한 생활과 방황을 반복했던 것 같음.
건강하게 사는 건 나에게 있어 부정적인 걸 망각하거나 덮어두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마음으로 적확하게 부족한 나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가꾸어나가는 것인데, 그게 종교적 수행이나 마음공부 같은 것이고. 그런 실천 속에서 새롭고 긍정적인 것들이 다시 꽃 피우는 것이고.
태백산맥의 조정래가 이런 사소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건 아무래도 재능 있는 작가들이 자신의 내부에 사로잡혀 감성과 감각에 의존해서 작품을 쓰고, 결국 이 시대를 무대로 태어난 한 작가로서 지는 책임을 회피한, 역사와는 떨어진 문학이 나온다는 것 같음.
조정래는 대하소설을 주로 썼던 작가이고 그에게 문학은 시대와 구조를 다루는 것이었을 테니까. 사회적 책임이나 연대를 상기하고 이끌어내는 역사를 요소로 한 작품들이 실제로 문단에서 고평가 받는 추세기도 하지.
하지만 난 무언가를 틀에 맞게 정해놓고 정의 내리는 걸 선호하지 않아. 뭐랄까 그런 불관용에는 폭력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시대를 다루는 문학이 있다면 개인의 심연을 다룬 작품도 있는 거지 뭐. 결국 난 재밌게 읽었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냥 자기한테 재밌으면 장땡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