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 살며시 발을 들여놓으니 발바닥의 촉감이 좋다. 갯벌과 바위에는 따개비, 비틀이, 고둥, 게가 왔다 갔다 지천으로 많았다.
방게는 눈 밑에 돌기를 깜박거리며 엄지발을 바짝 세우고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노려본다. 바다의 주인인 녀석들의터전을 허락도 없이 들어온 인간을 향해 덤벼들 것만 같았다.빗방울이 떨어지니 더럭 겁이 났다.겁쟁이는 발을 옮길 때마다 갯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다리를 어쩌지도 못한 채 온몸으로 기어 본다. 갯벌이 침입자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모양이다. 아버지는 저 멀리 계시니 소리쳐 도와달라고 할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사투를 벌이다가 눈망울이 툭 튀어나온 생명체와 눈이 마주쳤다. 눈망울이 너무나 귀엽고 우스쾅스럽다. 녀석의 온몸은 갯벌투성이었다. 녀석은 깜짝 놀랐는지 몇 번 두리번거리더니 도망갈 구멍을 찾아 잽싸게 사라졌다.한 녀석은 다리 대신에 지느러미로 뛰어간다. 짱뚱어였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녀석들이 사라진 구멍 속을 채워버렸다. 내 모습이 처량하다. 갯벌에서 사투를 벌인 덕분에 옷 입은 체 머드팩을 한 모양이다.
아버지가 오시더니,
"어쩌다가 내려왔냐? 갯벌에서 장난쳤냐?"
갯벌에 묻었던 옷이 비에 씻기기는 했지만 모양새는 넘어진 듯 엉망진창이었나 보다.
아버지의바구니 속에는 갯벌을 뒤집어쓴 채 좀 전에 본 것과 같은 짱뚱어들이 팔딱거리고 있었다.예전에는 짱뚱어를 손으로 잡았다. 갯벌의 짱뚱어가 사는 구멍은 둘이다. 아버지는 둘 중 하나에 손을 넣어 잘 찾아내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휘파람을 부셨다. 그날 잡은 짱뚱어는 매운탕으로 끓여 상에 올랐다.
고향에서는 내장만 손질하고 통째로 넣어 끓인다. 어머니의 손맛에 된장과 시래기, 들깻가루, 깻잎, 매운 고추 등 갖은 야채를 넣어 끓인 후 상에 올리면 밥 한 그릇이 뚝딱일 정도로 맛이 있었다. 갯벌에서 봤던 눈망울이 어른거렸지만.
쇠고기를 먹을까요?
짱뚱어를 먹을까요? 선택하라면 짱뚱어다.
그만큼 맛이 있다.그 옛날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짱뚱어로 기름을 짜서 초롱불을 밝히기도 했다는 말을 들었다. 가난했던 시절 지치고 힘들 때 몸보신 음식이 되어 주었다.
지금 내 고향 해남은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졌다. 증도에 가야 짱뚱어 다리를 볼 수 있다. 짱뚱어가 잡히는 곳이라 다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짱뚱어 다리의 교각을 짱뚱어가 뛰어가는 모양처럼 만들었다. 증도의 갯벌은 미네랄이 풍부하여 짱뚱어가 살기 좋은 곳이다. 봄부터 시작해서 가을까지 잡힌다. 다리 위에서 갯벌이 있는 곳을 내려다보면 짱뚱어 뛰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자세히 관찰하면 새끼와 어미가 갯벌 위를 영역 표시하듯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다.짱뚱어는 오염에 민감하여 오염되지 않는 바다에서만 산다. 증도나 순천만은 여전히 생명의 갯벌이다.
갯벌에서는 게와 짱뚱어가 서로 견제하며 싸우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이는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등지느러미는 크고 부채 모양으로 펼쳐, 적이 영역 가까이 오면 몸을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활짝 펴고 위협한다.이제는 적이 되고 싶지 않다. 빗방울에 철벅거리며 뛰놀던 녀석들을 이제는 차마 더 이상 먹을 용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