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정, <팔지 마라 사게 하라>
SBS에서 KBS까지? 단 2초면 충분했다. 리모컨 버튼 두 번만 누르면 됐으니까. 우리 집 TV 채널 5번은 SBS였고, 7번은 KBS였다. 그럼 6번은 뭐였냐고?
'홈쇼핑 채널'
나는 홈쇼핑 채널이 참 싫었다.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가 굵어진 뒤에는 6, 8, 10번에게 철퇴를 가했다. 그냥 채널 자체를 삭제해 버린 것이다. 그랬더니 버튼을 한 번만 눌러도 방송사를 이동할 수 있었다. 5번에서 바로 7번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홈쇼핑 채널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은 후회한다. 난 그때 홈쇼핑을 더 많이 봤어야 했다. 물론 물건을 못 사서 속상한 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20마리짜리 냉동 굴비가 필요하진 않다. 대신 나에게 필요한 건 쇼호스트들의 멘트다.
나는 크리에이터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런치스토리 등 웬만한 SNS는 다 운영한다. 콘텐츠를 거의 매일 올린다.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뭐라도 싸지른다.
나는 매일 조회수로 심판받는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읽히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다. 대중에게 자비를 바랄 순 없다. 재미없으면 끝이다.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는 데에는 1초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나 같은 크리에이터는 이 '1초'를 잡아야 한다.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 모두 원리는 같다. 1초 안에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지 못하면 망한 거다. 그래서 온갖 똥을 다 싼다. 대신 선 넘으면 나락이다. "충격!" "파문!"이런 멘트 남용했다간 악플 세례를 받을 수도 있다. 롱런하려면 아슬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이 줄타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그렇다! 홈쇼핑 쇼호스트들이다. 그들은 '1초 사로잡기'의 마법사다.
-5번에서 7번으로 넘어가는 단 1초를 노려야 함
-그러면서 방통위 규정은 다 지켜야 함
-심지어 매일 매출액으로 심판받음
유튜브에 '홈쇼핑 레전드'라고 검색해 보자. 온갖 영상들이 나온다.
-배게에 달걀 넣고 두들겼는데 달걀이 깨져버린 영상
-절대 안 깨지는 밀폐용기라고 망치로 두드렸는데 금이 쫙 가버린 영상
-용암 같이 뜨거운 청국장을 한 입에 넣다가 입천장 다 까지는 영상
예전에 나는 이 영상들을 보며 그냥 웃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이 쇼호스트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했는지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놈(?)의 '1초'를 잡으려고 애쓰다가 박제당한 것이다.
이 책, <팔지 마라 사게 하라>는 장문정이라는 쇼호스트가 지었다. 그는 1시간에 125억의 매출을 올려서 기네스북에 올라간 적도 있단다. 저자는 '1초'를 사로잡기 위한 비법을 아낌없이 책에다가 적어놓았다.
-아슬아슬 선 지키면서
-나락 안 가면서
-'1초' 사로잡기
이 비법을 알려준 저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책에 있는 비법 잘 버무려서 내 콘텐츠 만들 때 잘 써먹어야겠다. 그리고 이젠 집에 티비가 없어서 어쩔 순 없지만, 돌아오는 명절에 고향 내려간다면 홈쇼핑 채널을 되살려줘야겠다. 거기 나오는 쇼호스트 형님, 누님들께 한 수 배워야지!
아참, 홈쇼핑의 "오늘만 이 가격!"이라는 문구의 비밀이 나온다. 그 비밀은 바로! 내일은 더 좋은 조건으로 더 싸게 판다나 뭐라나?
사진: Unsplash의Markus Spis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