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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an 19. 2024

혹시 내리갈굼 해봤니?

지그 지글러, <정상에서 만납시다>

내리갈굼이라는 말이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갈구면 그 아랫사람은 더 아랫사람을 갈군다는 뜻이다. 모르는 사이어도 상관없다. 처음 보는 상황에도 통용된다.


내리갈굼이 가장 많이 보이는 곳은 자동차 도로다. 누군가 짜증을 담아 경적을 울렸고, 열받은 다른 운전자는 급끼어들기를 하며, 그것에 위협을 느낀 차는 상향등으로 복수한다. 이런 것도 내리갈굼이다.


하지만 이걸 끊어내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를 프로라고 부른다. 프로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설정한 원칙만 따를 뿐이다. 프로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편안하다. 오토바이가 칼치기를 해도, '아이가 타고 있어요'를 붙인 채 난폭운전을 하는 차를 만나도 동요하지 않는다. 자기 선에서 내리갈굼을 끊어내기 때문이다.



이 책 <정상에서 만납시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리갈굼을 끊어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 할 수 있다고 말이다. 프로는 끊어내기를 잘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아마추어였다.


아마추어짓을 가장 열심히 했던 때가 있다. 바로 군대 시절이다. 나는 해군 보급병이었다. 매일 쌀 나르고 김치를 배달했다. 보급병은 항상 운전병과 함께 움직인다. 그런데 그 운전병과 보급병이 내무생활을 같이 한다. 선후임으로 엮인 사이라는 뜻이다.


내가 상병 때 운전병 병장에게 탈탈 털렸다. 왜 자기 후임들 괴롭히냐는 것이었다. 일이병 운전병들이 그 병장에거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쳤나 보다. 전말은 이렇다.


보급병 상병 여럿이서 트럭에 물건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내무반 후임 운전병이 차 시동 걸어 놓고 에어컨 튼 채로 자고 있었다. 우리들이 배기가스를 맡으며 작업해야 했다. 이게 군대니?


물론 후임에게 곱게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마추어였다. 그래서 한소리 했다. 그리고 저녁에 내무반에 돌아갔더니 병장 운전병이 나를 호출했다. 그리고 개털렸다. 그럼 내가 또 가만히 있나? 더욱 지능적으로 운전병 후임들에게 눈으로 레이저를 쐈다. 그렇게 내리갈굼은 더욱 강화되었다.


같은 부대에 나 같은 아마추어만 있던 건 아니다. 프로도 있었다. 그 선임은 부정적인 상황을 자기가 다 먹어치웠다. 절대로 내리갈굼을 하지 않았다.


그가 전역하던 날 직별에 상관없이 모두 나와서 그를 축하해줬다. 그의 눈에선 빛이 났고 목소리는 당당했다. 그 선임이라고 억울한 상황이 없었을까? 아니다. 그는 나보다 더 모진 고초(?)를 당했다. 하지만 그걸 자기 선에서 끊어냈다. 그것이 그의 클라스였다.


나도 이제 아마추어 그만하고 싶다. 프로가 되고 싶다. 그 선임처럼 당당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내리갈굼을 끊어내는 것은 정말 힘들다. 억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다른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순 없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내리갈굼을 한다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워야겠다.


'사장님, 내리갈굼 당하셨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보내 주신 감정의 쓰레기는 제 선에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 편도 1차로 도로에서 제한속도 맞춰 주행하는데, 뒤차가 자꾸 하이빔을 쏜다. 빨리 가라고 똥꾸멍을 쑤신다. 혈압이 살살 오른다. 아무래도 나는 프로 되긴 그른 것 같다^^;



사진: Unsplash의Denys Sudilkov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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