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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an 28. 2024

교감선생님! 이 문제 어떻게 풀어요?

강원국, <회장님의 글쓰기>

나는 초등교사다. 담임만 내리 10년을 했다. 내 나이도 어느덧 3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간다. 동기 녀석들은 각자의 학교에서 부장을 맡고 있다.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지?


선생 세계관은 방대하다. 꼴랑 10년 가지고 마스터할 순 없다. 교무부, 연구부, 방과후부, 정보부, 안전인성부 등등... 부서도 다양하다. 초등학생이 배우는 과목이 많은 만큼, 선생들이 커버해야 하는 업무도 방대하다.


올해 배정받은 업무도 역시나 생소하다. 그런데 귀찮음이 몰려온다. 이제 짬도 좀 찬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업무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1. 그냥 대충 작년 문서함 보고 하자.

2. 교감 교장선생님께 한 번 여쭤 볼까?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1번 고르면 안 된다는 거, 세상 모두가 안다. 관리자(교장, 교감) 분들과는 자주 이야기 나눌수록 좋다. 관리자도 좋아하시고, 담임교사도 실수를 덜 할 수 있으며, 결론적으로 학생들에게 이득이다. 그러므로 교사도 모르면 질문해야 한다. "교감선생님, 이 문제 어떻게 풀어요? 도와주세요!"


[SOS치면 좋은 이유]

1. 관리자들은 웬만한 업무 다 해보심

2. 관리자도 결국 본체는 선생님임

3. 실수해도 용서받을 가능성 높아짐


먼저, 관리자 분들은 베테랑이다. 교직 경력이 기본 30년은 넘는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으신 분이라는 거다. 나 같은 쩌리 교사가 어떤 정신머리를 갖고 있는지 눈동자만 봐도 캐치 가능하다.


관리자께 업무로 질문해 보자. 모범 답안이 술술술 튀어나온다. K에듀파인의 문서함과는 비교가 안 되는 퀄리티다. 이거 '크몽'이나 '탈잉'에서 코칭받으려면 돈 내야 할 수준이다.


둘째, 대부분의 관리자는 질문받는 걸 좋아하신다. 교장, 교감도 결국 '선생님'이다. 우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가. 관리자를 언급할 때 '교장', '교감'이라고 하는 선생은 아무도 없다. 꼬박꼬박 뒤에 '선생님' 자를 붙인다. 왜냐고? 그분들도 본체는 교사니까.


교사는 질문받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이 업을 택한다. 자신의 말과 글로 남을 이해시키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교장, 교감선생님도 질문받는 걸 좋아하신다.


셋째, 실수해도 용서가 된다. 내가 학예회 업무를 맡았을 때다. 학부모님들을 강당에 모시는 학예회를 계획했다. 작년, 재작년 문서함을 찾아봐도 정보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업무 명맥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뇌피셜로 업무를 할 순 없었다. 초안을 짜고 예상 돌발 상황들을 추렸다. 부장님과 함께 교감, 교장선생님께 찾아갔다. 그리고 여쭤봤다.


-당일 학부모님 주차는 운동장에 할까요?

-비가 오면 학부모님 우산은 어떻게 할까요?

-강당에 정전이 나면 어떻게 할까요?


... 맞다. 나는 물음표 살인마였다. 질문을 15개 정도 적어갔는데, 나중에는 관리자 분들도 지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여쭤보길 잘했다. 내가 질문한 것 중에, 행사 당일에 돌발상황이 꽤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돌발 이벤트는 미리 대비한 덕분에 잘 처리했다.


하지만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행사 끝나고 혼나진 않았다. 왜냐고? 이제 그 행사는 나만의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일이 되어버린 거다. 관리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유대감이 생겼다. 그래서 덜 털렸다.


이 책, <회장님의 글쓰기>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모르면 상사에게 질문하라고.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과제로 만들라고 말이다. 실수해도 용서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단다. 무려 두 명의 대통령 연설문을 쓴 사람의 조언이다. 나도 백퍼 천퍼 만퍼 공감한다.



업무 하다가 막히면? 잘 정리해서 관리자께 찾아가자. 학교 규모가 크다면 부장님부터 찾아가고. 물론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눈 딱 감고 찾아가 보자. 절대 손해보지 않는 장사다.


"구 선생, 매뉴얼도 안 읽어보고 질문하는 건 아니지?"


...관리자께 질문하러 가기 전, 매뉴얼 숙지는 필수다. 문제집의 답지도 한 번 안 보고 냅다 질문하는 학생을 좋아하는 선생은 없다.



사진: Unsplash의Chris Liver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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