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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an 25. 2024

명강사는 10분 일찍 끝낸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10분 일찍 마치는 사람이 명강사다."


의자에 앉아 연수를 들을 땐, 10분 일찍 마치면 기분이 참 좋았다. 하지만 무대 위 강사가 되니 얘기가 달라졌다. 10분 일찍 마치고 싶은데 제시간에 끝내는 것도 힘들다.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 이러다가 제한시간 넘길 판이다.


작년 6월, 관내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경제 강의를 했다. 무려 6시간 연강이었다. 한 달 넘게 강의를 준비했다. ppt를 압축하고 압축해서 280장으로 만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래퍼처럼 떠들었다.


연수가 끝나기 10분 전, '그때'가 되었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명강사는 물 건너간다. 하지만 ppt는 아직 50쪽이나 남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1) 준비한 거 포기하고 명강사 타이틀 얻기

선택2) 명강사 포기하고 끝까지 하기


나는 1번을 택했다. 명강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강의를 끝내기로 했다.


"선생님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제가 준비한 게 더 있지만, 시간을 지켜야 해서요. 남은 내용은 제 블로그에도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에 놀러 와 주세요!"


자, 이제 나는 명강사다. 어서 박수를


"강사님! 그냥 시간 넘겨도 되니까 끝까지 해주세요!"

"맞아 맞아! 뒤에 스케줄 있는 분들은 지금 나가면 되잖아요!"

"옳소. 뒤에 내용도 궁금합니다."


상상도 못 한 결말이었다. 이제 어떡하지? 명강사 물 건너가는 건가?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친 걸로 하겠습니다. 이제 저 혼자 떠들 테니까, 스케줄 있는 분들은 나가시면 되고요, 더 들으실 분들은 계속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어차피 강의했던 곳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였다. 뒷사람에게 강의장을 비워줄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가 뒷정리까지 다 하고 나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냥 질렀다.


그렇게 30분을 더 떠들었다. 강의를 들은 선생님들은 웃으며 귀가하셨다. 하지만 단 한 명, 표정이 어두운 분이 계셨다. 바로 이 연수를 주관하신 교육연수원 연구사님이었다.


"선생님, 오늘 강의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시간엄수'는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합니다."


6시간 30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떠들었다. 목에서 피가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명강사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다. 그리고 연구사님께 한 소리까지 들었다. 힝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그날을 다시 떠올려 본다. 맞다. 그때의 나는 잘못을 저질렀다. 반박할 수 없다. 무조건 제한시간은 지켜야 한다. 그건 약속이다. 아무리 좋은 강의라도 시간 오버하면 그건 오바다.


이 책 <대통령의 글쓰기>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말 그대로 '두 대통령'의 연설에 관한 이야기다. 강원국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연설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 엄수'라고 말이다.


세상에, 대통령도 지키는 시간을 내가 어겼다는 거잖아?! 나 같은 조무래기가?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무리 선생님들께서 요청하셨다고 해도, 내 선에서 끊었어야 했다. 6개월 전의 나는 평정심을 잃었었다. 10분 일찍 마치는 게 맞았다.


"선생님, 여지를 주는 게 나아요. 소개팅하는 것처럼요."


연구사님의 조언이 귀에 맴돈다. 맞는 말이다. 구구절절 나를 다 드러내면 매력이 뚝 떨어진다. 오히려 여지를 남기고 빨리 끊는 게 낫다. 어디에도 결말을 다 보여주는 영화 예고편은 없다. 끝까지 다 보여주면 극장에 아무도 안 온다.


시간 오버? 99명이 좋아했어도 1명이 불쾌했다면 그건 꽝이다. 실패한 강의다. 다시 한번 메모해야겠다.


"10분 일찍 마치는 사람이 명강사다."



사진: Unsplash의Alexandre Pella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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