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하늘에 전세사기라뇨!

법원에서 도착한 문서

by 윤서A

아직은 태양이 뜨겁지 않은 싱그러운 초여름. 어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평일 오전이었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 준비는 순조로웠다. 집을 나서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 시킨 게 없는데…”


혼자 살고 있고, 찾아올 사람이 없었고, 배달주문한 것도 없었다. 예정된 초인종이 아니면 인기척을 내지 않고 부재중인 척 해왔다. 그날도 그랬다. 두 번 정도 벨이 울리나 싶더니 옆집으로 옮겨갔다. '도시가스 검침이면 나중에 전화해야지.'


벨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에 붙은 우체국 등기 도착 안내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발신인 부산회생법원’


회생법원에서 나에게 무슨 서류를 왜 보낸 걸까. 받는 사람 이름이 김ㅇ주 인 걸 보니 내가 맞다. 무심코 옆집을 봤다.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 옆집도. 옆옆집도. 손바닥보다 작은 등기 도착 안내문이, 법원에서 보낸 등기가 현관문마다 나란히 붙은 이유가 무엇일까?


정확히 그때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래층으로 걸어서 내려갔다. 아래층도 호실마다 등기 도착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모두 같은 법원에서 온 것일 테다. 이상하다. 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역시 같은 상황.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안내문에 적힌 번호로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여기 ㅇㅇ빌인데요. 금방 등기를 못 받았는데 혹시 지금 받을 수 있나요?”


집배원은 다행히 막 건물을 나선 참이었다. 1층으로 오면 바로 등기를 준다고 했다. 5층에서 1층까지 서둘러 내려갔다. 발은 빠르게 움직이는데 내 몸이 속도를 내는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회색 현관문에 빼곡히 붙은 하얀색 안내문. 왜 이렇게 기괴하게 느껴지는 걸까?


’결정, 채무자 ㅇㅇㅇ에 대하여 파산을 선고한다‘


'면책절차와 관련한 채권자 안내문, 채권자 여러분에게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가 이 법원에 파산 및 면책절차를 신청하여 이 법원은 파산선고 결정을 하고 면책절차를 심리하고자 합니다. 법률상, 채무자가 향후 이 법원으로부터 면책을 허가받게 되면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지고 있는 빚을 갚지 않아도 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채무자인 건물주가 파산 신청을 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일 예정인데 파산이 결정되면 채무자는 채권자들에게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 말을 이해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러니 이의 있는 채권자는 채무자가 파산하면 안된다는 이의 신청 서류를 정해진 기한 내에 내라는 안내문도 들어 있었다.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느껴보지 못할 거라 확신했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을 마침내 느끼고 말았다. 거대한 무언가가 머리를 내려친 듯 순간적으로 멍한 느낌. 통증은 없는데 눈은 멍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졌다. 아, 그러니까 내가 전세금을 내고 살고 있는 이 건물의 주인이 파산 신청을 했다. 그럼 내 전세금을 줄 돈이 없다는 뜻인데 나뿐 아니라 이 건물 세입자 전체가 그렇단 뜻이지? 그럼 내 돈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 전세사기 당한 건가?


통보문에는 채무자의 파산을 진행할 파산관재인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흐려진 판단력이 도무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전화부터 걸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죠? 전세사기인가요? 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뜻인가요?"


파산관재인은 이미 이런 전화를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은 받아본 듯 침착한 목소리로 마치 대사를 읆조리듯 말했다.

"저희는 채무자 편도 채권자 편도 아닙니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기 전에 우선 매수자를 찾고 있는데, 경매로 넘어가면 전세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누가 누구 편인지 아닌지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내 전세금 회수가 가능한지, 그것만 궁금했다. 일단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출근이 늦을 테니 이것부터 알려야 했다.


"부장님. 제가 전세사기를 당한 것 같아요.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부장은 그때 내 목소리가 너무 담담해서 본인이 되레 놀랐다고 했다. 그랬나, 내 목소리가 담담했나, 충격 받아서 멘탈이 나가서였기 때문인가. 목소리야 아무렴 어때. 호들갑을 떨든 담담하든 울면서 말하든 내가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이 발생해버렸는데.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로 이동하는 동안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자책과 후회였다. 연초부터 사회적 이슈로 떠들썩했던 전세사기는 모두 남의 일인 줄 알고 예사로 넘겼다. 처음 입주했을 때,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려다가 제출 서류가 많다는 이유로 귀찮아서 미뤘던 날이 기억 났다. 그때 귀찮아도 보증보험에 가입만 했더라면. 아니 그전에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부터 잘못됐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당당히 적시된 4억 원 상당의 담보대출을 보고도 '요즘 건물에 이 정도 빚은 다 있습니다'고 안심 시킨 부동산 직원의 말을 믿은 순간도 떠올랐다. 그때 좀 더 다른 건물을 알아봤더라면. 내 귀찮음과 게으름이 결국 내 청춘을 갉아먹는 건가.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느 날과 다름 없던 초여름 출근길. 법원에서 도착한 종이 세 장에 내 인생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