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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Oct 27. 2019

결혼은 지옥행 열차일까?

일곱살 무렵 두발 자전거를 처음 타던 때가 생각난다. 처음으로 네발에서 두발이 되던 날은 한톨의 용기를 낸 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조심스레 두발 자전거의 패달을 밟던 날, 내 자전거 뒤를 잡고 있던 누군가가 그 손을 놓았다. 언제 놓았는지는 알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조련자들은 티안나게 그 손을 놓아버리므로. "우아! 두발로 달린다~~~~!"하는 엄청난 쾌감을 느끼며 앞으로 굴러갔다. 그리고, 몇초 되지 않아 뾰족 뾰족한 가시 장미 덩굴 속으로 쳐박히며 쓰려졌다.


장미 가시가 사정없이 내 콧잔등과 이마를 할퀴어 뺨을 타고 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지금이라면 내 허리춤 밖에 되지 않았을 장미 덩쿨이 그 시절에는 온통 가시로 덮힌 커다란 숲 같이 느껴졌다.


장미 덩굴에 쳐박힌 그날 이후, 두발 자전거가 주는 공포가 굉장했다. 비틀거리던 순간은 내 인생에서 처음 느껴본 강렬한 '두려움'의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일곱살의 나이에 집 밖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가 무모한 도전을 했던 이유는 자전거를 잘타는 동네 친구들이 부러웠기 때문일테다.


'역시 두발 자전거는 안되겠어!'라고 단념하며 다시는 두발 자전거를 타지 않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두 날개처럼 올라간 자전거의 두발을 다시 발로 걷어차 네발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 이를 악물고 다시 두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길을 선택했다.


내 몸이 자전거의 감각을 기억하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두번째날엔 그 어디에도 쑤셔박히지 않고 두발 자전거의 패달을 밟으며 동네를 한 바퀴를 돌았다.  "아!!!!! 신난다!!!!" 세상을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달릴 때 느끼는 그 쾌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네발 자전거에서 두발 자전거로 넘어가는 과정처럼 신혼의 과정에도 험난한 과도기가 필요하다. "신혼 기간에 많이 싸운 부부들이 잘산다."는 말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당연한 것이다. 연애의 파트너에서 부부라는 기능적인 파트너로 넘어가는 과정에 로맨스만 있을리는 만무하기 때문. 현모양형 아내 모델에 순응하기 어려운 나같은 사람은 그 과정이 참으로 혹독했다. 장미 덩굴에 열번쯤 쳐박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부부가 됐을때 가장 먼저 느끼는 변화는 각자 해야할 일들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이다. 기울어진 업무분장을 통해 한쪽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 결국 싸움의 원인이 된다. 거듭된 비효율적인 싸움은 서로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고, 삶과 지옥의 경계에서 길을 헤매게 된다.


신혼 초기라면 “혼인 신고 전에 빠르게 이혼하고 새삶을 살아야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아이가 생긴 이후엔 “아 내 결혼 생활은 이대로 망한건가...”하고 행복하기를 단념할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배우자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무조건 헌신하면서도, 그게 그토록 꿈꿔온 안정적인 삶의 댓가라고 합리화할지도 모른다. 덩굴에 쳐박히는 모험이 싫어 자전거의 행복을 포기하는 경우다. 


건강한 부부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두발 자전거를 처음 탈때처럼 비틀거리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결혼 생활을 만들겠다는 승부욕, 내겐 도저히 맞지 않는 고전적 결혼 모형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투쟁의지를 발현시켜야 한다. 누군가는 타고난 균형감각으로 덜 넘어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뒤에서 잡아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 조금 더 힘이 날수도 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일찍 결혼한 탓에 적절한 균형 감각도 센스있는 조언자도 없었던 나는 계속 넘어지고 일어나길 반복하면서 삶의 동반자와 투쟁하듯 합을 맞춰오고 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지옥으로 향하는 기로에서 선택한 최선의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다. 넘어진 자전거를 붙들고 일어나 시뻘건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째려보듯 다시 안장대에 오르던 마음이 신혼기에 배우자와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도 오롯이 발현되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어른이 되는 과정은 원래 이렇게 힘든거냐’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 시간들이 알려준 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저 내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굳건히 존재할 때, 타인과도 함께 내 자리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한걸음 성숙해지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지만 그 댓가로 얻은 사랑, 독립적인 부부로 살면서 얻게된 최고의 안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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