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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Feb 24. 2019

치열할수록 독한여자가 되는 사회

일할수없는여자들 at 성수동 카우앤독

올해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12년차가 되었습니다. 출산휴가 100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날들을 일터에서 보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동안, 일하고 공부하며 버텨내기 위해 매일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마음을 나누던 여성 동료들이 모두 회사에서 사라져 있었습니다. 시시콜콜한 일 고민들을 나누던 여성 동료들이 사라진다는 건 예상보다 훨씬 외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다들 어디로 간거지..?



"여자들이 노동 시장에서 점점 도태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일에 대한 위기를 더 많이 자주
느끼는 쪽도 여자들인 것 같아"  


오래 알고 지낸 업계 친구가 일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여성의 경력 개발 문제는 제가 오랜기간 동안 분투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사회 초년생일때는 진입 장벽이 높은 노동시장에 10년만 버틴다면 수많은 기회가 열릴줄로만 믿어왔었지요. 공채 입사 동기  여성 동기의 비율은 10%밖에 되지 않았기에 입사의 관문만 통과하고 버티기에 성공하면 되는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 둘씩 육아하며 열심히 달리는 여자 동료들은 쉬이 속도가 나질 않는듯 했습니다.  모습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저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요.  '기울어진 운동장' 달리면서 그 기울기를 인식하지 못한체 자신을 탓하는 여성들. 남자들과는 다른 형태의 전투력을 사용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그 모습이 싫었던 날도 많았습니다.  '남녀 평등한 경쟁' 환상에서 벗어나 녹록치 않은 노동 시장의 진짜 현실에 직면한 것이죠.  



저는 페미니즘이나 여성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반드시 일하는 여성으로 살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실천하며 살겠다는 큰 명제만 마음 속에 간직한채, 여자들이 좀 더 씩씩해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사람이었지요. 현상의 구조적인 원인을 잘 몰랐기에 남녀 노동 격차 문제가 정말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임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고용시장에서의 성별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해결방법은 없을까? 정책적으로, 개인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부분들은 무엇일까?  마음속을 떠도는 여러가지 질문들이 저의 현실 속 고민들과 뒤범벅된 시간들이었습니다. 제가 딸을 둔 엄마가 아니었다면, 제 선에서 포기하고 말았을 복잡한 퍼즐같은 주제인 것이지요.  



<일할 수 없는 여자들> '일하고 싶은 여성을 위한 사회'를 이야기하다

지난 2월 23일,  위커넥트가 성수동 코워킹페이스 ‘카우앤독’에서 주최한  북토크에 참여했습니다. 쓰리체어스에서 출판한  <일할 수 없는 여자들>의 저자 최성은 박사가 진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대전세종연구원이자 여성.아동 정책 담당 연구위원이자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합니다.


기억에 남는 내용


이날 강연을 통해 한국의 노동 시장이 여성을 어떻게 배제하고 차별하는가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성들이 일터에서 원하는 만큼 일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자리였습니다.

실로 많은 주제들이 오고갔는데요, 그 중 가장 기억에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해봅니다.


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

  " 여성은 기업이 전문 숙련기술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노동력이 아니다. 지금의 사회 구조에서 여성은 결혼이나 출산, 양육 등의 이유로 노동 시장에서 떠날 가능성이 높다.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기업에게 전가된다. 결국 기업은 여성에게 비용을 투자해 중요한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여성은 고용 보호 제도가 강력할수록 오히려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에서 여성의 고용을 강력하게 보호할수록, 기업은 여성이 이탈할 경우 더 큰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 결국 처음부터 여성을 뽑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여성 노동력을 보호하는 국가에서 역설적으로 성별 직종 분리 현상이 심화되는 이유다."


가사 노동의 외주화

"상식적으로는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 부모 대신 아이를 돌봐 주는 베이비시터 등 가사 노동의 외주화 규모가 커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공공 보육 서비스가 취약한 나라인데도 다른 국가에 비해 가사 노동 시장의 규모가 작다. 그 이유는 고학력 여성의 저조한 노동 시장 참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남성 중심의 기업 내부 노동은 저학력 여성보다 고학력 여성에게 더 높은 장벽을 세운다."


"우리 사회에서 육아는 정부가 아니라 가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이를 가진 직장 여성인 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의 저출산 지원 사업도 아니고, 아동 수당이나 보육 지원도, 여성을 위한 일·가정 양립 정책도 아닌, 가족의 희생이었다."


여성 운동의 역할 

"여성들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한국 여성 운동의 조직화된 힘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스웨덴과 같은 연대의 정치도, 미국처럼 고학력 여성들의 노동 시장 참여를 독려할 강력한 시민 사회의 목소리도 미약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높임으로써 제도권 내에서 여성 운동이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이 여성에게 투자하지 않는 사회

"기업 입장에서는 여성은 투자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기업은 상당한 교육 훈련비를 투자해 직원으로부터  효과를 회수해야 하는데, 결혼과 양육을 위해 회사를 그만 둘수 있는 특정 위험 확률을 고려한다면 남성 채용을 선호할 것입니다. 시장경쟁체제에서 살아 남아 돈을 많이 버는 사장님이 되기 위해, 일을 오래 잘하는 직원을 뽑는 것이지요."  강연 <일할  없는 여자들>  


여성이 스스로에게 투자하지 않는 사회

"또 하나는 여성이 스스로에게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고용시장에서의 격차를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평범한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연대하고 목소리를 높여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 강연 <일할 수 없는 여자들> 중




관련 내용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최성은 박사님의 책 <일할수없는 여자들>을 구입해서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기존의 관습을 타파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쉬운 문제였으면 진작 해결됐게?"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여성경제활동참여 문제는 오랜동안 지겹도록 논의되어 온 주제입니다. 그만큼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경제성장지수가 둔화되어 있고 청년 취업, 결혼, 출산 등 여러가지 문제들이 산재되어있는 상황이기에 여러 시각에서 공동의 지향점을 모색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 필요할 테지요 .  


기존의 관습을 타파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한명의 정책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수렴하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일을 경제적 관점 이외에도 자아실현의 장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가 좀 더 빠르게 나아지기 위해서는 생각을 기록하고, 입장을 공유하는 등의 작은 목소리부터 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첫 포스팅을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기록하고 의견을 내주시면 좋은 날들을 만드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음편 브런치는 좀 더 편안하고 재밌는 것으로 준비해볼께요.



ps. 덧붙히는 말

-  이날 수십명의 참여자는 대부분 여성들이었어요. 특히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분들이 많이 참석하셨답니다.

- 이날 남성은 단 두분이 참여하셨습니다. 한분은 중년의 남성, 다른 한분은 참여자 여성이 유모차에 데려온 남자 아이였어요.

- 다음에 이와 같은 자리가 또 마련된다면, 그땐 더 많은 남성분들이 참여해서 서로 생각을 맞춰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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