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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Q Apr 07. 2019

확실한 오답찾기

유독 한국은 정확한 정답에 대한 극심한 집착이 뿌리내린 곳이다. 현재 한국 스타트업들이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규제와 기존 집단들의 헤게모니는 극복하기가 태산처럼 어렵다. 스타트업은 신속함과 유연함을 갖추고 기존의 경직된 체제에서 불가능했던 맹점들을 녹여내며 싹을 틔운다. 그러나 그마저도 체재의 빈 곳이 충분히 열려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현재 한국의 규제는 기본적으로 법체계에서 발생한다. 어떤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 하나는 '정답'을 정하고 나머지 행동을 '오답'으로 간주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오답'을 정하고 나머지 행동을 '정답'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한국은 극도로 전자에 해당한다.


확실한 '정답'이 정해진 세계에서는 오답이 살아남기 어렵다. 사람의 피부는 '살구색'이어야 하고, 하늘은 '하늘색'이어야 하는 세계, 오지선다 선택지를 놓아도 오로지 '정답인 것'과 '아닌 것'으로만 나뉘는 극단적인 흑백의 세계다. 이 세계에서는 아무리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도 보이는 것은 단 하나의 정답뿐이다. 오로지 정답만을 따르면 되므로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는 행위는 '쓸모없음' 취급을 받는다. 정답과 다른 것들의 가치는 제로다. 이런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답만을 추구하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생각은 좁아지고 다양성은 줄어들며, 정답이 되기 위한 끝없는 투쟁이 시작된다. 정답을 맞추기 위한 시험은 나날이 교묘해진다.  


한국의 정답 맹목주의는 한반도의 기구한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정답을 따르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던 역사였다. 강력한 군부에 '아니오'를 외치면 안보부에 끌려가 매질을 당하고 물고문을 당하다 목숨을 잃었다. 거리로 뛰어나온 시민은 군홧발과 총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해 땅속에 묻혔다. 공산당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잡혀가 죽었고,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죽었다. 매일 주인이 달라지던 마을에서는 국군, 인민군할 것 없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 물었다. '너 빨갱이냐?' 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얼굴에 비추며 정답을 묻던 그 검은 실루엣은 그저 공포의 존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이름으로 바꾸지 않는다며 죽고, 한글을 배운다며 죽었다. 조선에서는 수상한 역모를 꾸민다하여 매타작을 맞다 죽고, 유배를 가서 죽었다. 지금도 우리는 '단일민족'의 꿈을 꾸고, 위대한 지도자를 찾는다. 아직도 검은 실루엣의 손전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회다.


확실한 오답이 정해진 세계에서 다양한 정답은 서로 공존할 수 있다. 오지선다가 아닌 서술형의 세계다. 수능시험이 아닌 에세이의 세계다. 하나의 옳은 정답을 찾기 위해서 다양성을 훼손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다. 확실한 오답이 아니라면 누구나 정답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서로 고민할 수 있는 세계다. 다양한 정답은 다양한 생각을 키운다.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우리가 경직된 정답의 세계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더 많은 '다름'이 필요하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완전한 정의가 무엇인지 찾기보다 확실한 불의를 찾아서 막자.'고 했다. 평범한 존재들의 희생으로 혼란스러웠던 한반도의 근현대사는 점차 변화했다. 시위에 나가면 총칼에 목숨을 잃던 과거에서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시키던 시대로 나아왔다. 나는 우리가 계속 나아가고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정답의 세계에서 머무르고 있다. 우리 사회에가 정답의 세계에서 확실한 오답을 찾아 수많은 정답들이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갈 때, 지금보다는 더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세계가 되리라 믿는다. 그러니 정답을 맞추지 못할 것을 두려워말고 확실한 오답을 찾자. 오답을 통제하기보다 정답이 부족해지는 것을 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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