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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Oct 12. 2019

90년생이 오려다 말았다

내 브런치의 정체성

얼마 전 '90년생이 온다(임홍택 저)'를 흥미롭게 읽었다.
90년대생의 특징을 논리적으로 철저히 분석한 이 책에서는 이제 더 이상 긴 글이 읽히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사회의 주류가 되어 가고 있는 90년대생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복잡하고 긴 글에 집중하는 대신 간단하고 재밌는 것들을 찾기 때문이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부터도 어느 순간부터 긴 글 대신 휴대폰으로 쓱쓱 넘겨볼 수 있는 짧은 글 위주로 읽었으니까.

그런데 참 희한하다. 왜 "90년대생들은 간단한 것을 좋아한다"고 분석 '당한' 것에 살짝쿵 반감이 들까. 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나는 그 많고 많은 90년대생들 중 돌연변이인가?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던 나는 스스로 글놀이터를 만들어왔다.


초등학교 때는 일기 쓰는 숙제가 가장 즐거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심지어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일기를 쓰던 기억이 난다.


열두 살 때는 '12살에 쓴 동화'라는 책을 펴냈다. (물론 독자라곤 가족들밖에 없었다.)


좀 더 커서는 싸이월드에, 수험생 때는 스케줄러에...
어디서든, 어떤 플랫폼을 활용하든 글은 나와 함께였다. 요즘 인스타그램이 대세라곤 하지만 내 생각의 조각들을 남기는 공간으로 활용하기엔 너무 가볍다.



그런 날이 있다. 문득 스치는 순간이 너무 소중해 그 느낌을 무척이나 기록해두고 싶은. 런 날 인스타그램에 솔직한 느낌을 장문의 글로 썼다간 '진지충' 취급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그토록 소중했던 순간은 한 순간에 놀림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난 그런 것들이 정말 싫다.

조금 빠른 90년대생이라 그런가, 나는 퍽퍽한 일상의 느낌을 의식에 흐름에 따라 긴 글로 뱉어낼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래서 지금부터 이 브런치를 내 글놀이터로 삼고자 한다"




다시 '90년생이 온다'로 돌아와서, 저자의 설명이 맞다면 내 브런치의 글은 앞으로 읽히지 않거나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읽힐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90년대생이 좋아하는 '간단함'이나 '병맛'과는 거리가 멀 테니까.

그래도 상관없다. 간단하고 병맛 같은 단어로 풀기엔 내 모든 순간이 소중하므로. 그것이 90년대생인 내가 '오려다 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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