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휴가를 맞아 호텔에서 최고급 뷔페음식을 먹었다. 월급쟁이가 부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를 부린 거다. 기름진 고급요리를 실컷 먹었더니 오늘아침엔 정갈한 밥 한 그릇이 당겼다. 자연스레 근처에 있는 곰탕집을 찾게 됐다. 뜨끈한 사골국물을 들이키면 더부룩한 속이 좀 풀리겠거니.
즉흥적으로 들어간 곰탕집은 이미 지역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어릴 적부터 곰탕을 좋아하던 나는 고민도 없이 곰탕 한 그릇을 주문했다. 곧 음식이 차려졌고, 내 앞에는 새하얗기 그지없는 곰탕 한 그릇이 놓였다. 한 숟갈 떠먹는데 내가 먹어본 곰탕 중 가장 국물이 진했다. 고기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왜 맛집인지 알 수 있을 법했다.
그런데 왜일까? 그토록 진한 국물을 삼키면서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 것은. 파나 마늘을 넣으면 좀 나을까 싶어 재료들을 때려넣었지만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몰려왔다. 몇 숟갈 더 먹으며 깨달았다. '아, 내가 상상한 그 맛이 아니구나...'
스무 살 때 독립한 이후 벌써 자취 9년차다. 자취하면 집밥이 그렇게 그리워진다는데, 남들이 집밥 집밥 외칠 때도 나는 그저 좋아하는 음식을 누군가의 간섭 없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집밥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 말이다.
내게 집밥이 그리워지는 순간은 조미료 범벅인 회사 구내식당 밥을 먹을 때도, 체중조절을 한답시고 맛없는 닭가슴살을 우적우적 씹을 때도 아니다. 우연히 좋아하는 사골곰탕을 먹고 싶어 식당에 들어갔는데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닐 때. 무섭도록 익숙해진 그 맛을 느낄 수 없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어머니는 내가 속이 안 좋을 때 그리고 고3 수험생 때 몸보신 시켜야겠다며 종종 곰탕을 해주셨다. 그러면 참 신기하게도 속이 편해지고 공부도 더 잘됐다. 수능 날 아침에도 나는 어머니가 해주신 곰탕 한 그릇을 후루룩 해치우고 왠지 모르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험을 보러 갔었다.
어느덧 대학생이 된 나는 홀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그 뒤로도 어머니는 내가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커다란 통에 며칠이고 사골을 우려, 올라가는 길에 몇 봉지씩 소분해 싸주셨다. 귀찮다고 밥 굶지 말고 얼려뒀다가 한 봉지씩 해동해 먹으라며.
어머니가 곰탕을 끓이면서 빨래를 널고 계실 때면, 나는 어린 마음에 저렇게 가족들이 며칠간 먹을 음식을 다 해놓고 집을 나가버리시는 건 아닐까, 어이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러니까 엄마한테 잘해"라며 호탕하게 웃으시곤 했다. 곰탕 끓이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내게 그토록 익숙한 장면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세상에서 가장 진한 사골곰탕을 바라보며, 나는 어설프게 뽀얀 어머니의 사골곰탕을 떠올린다. 소금 한 스푼 후추 한 줌 넣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그 국물. 맛집에 와서야 비로소 내가 그 어설픈 국물을 참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에 좋은 거니까 후루룩 다 마셔". 조금이라도 남기면 무작정 다 먹으라고 보채던 어머니의 말투가, 시간마다 알람 맞춰놓고 밤새 국물을 우리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뽀얀 국물 위에 겹친다.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다 말고 뜨거운 뭔가가 훅-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