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이는 화창한 날이었다. 나는 봉사를 하던 요양원에 오랜만에 들렸다.
할머니 오랜만이에요! 제가 너무 늦게 왔죠. 죄송해요.
할머니는 여전히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며 나를 환영해 주셨다.
왔구나, 어서 와.
잘 지내셨어요?
똑같지 뭐.
할머니 근데 이번에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저만 여기서 할머니를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쌍방이어서. 할머니도 저 좋아하죠? 그런데 한 번도 먼저 찾은 적 없는 우리 할머니가 웬일로 나를 다 찾았대?
이제 돌아갈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서.
할머니… 왜 그런 말을 해요. 이렇게 정정한데.
이곳은 이제 너무 지루해. 그래서 좀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고 가려고. 넌 작가잖니.
아니 할머니 저는 기자라니까요. 작가가 아니야.
글 쓰는 사람은 다 작가지 뭐.
그런가? 어쨌든 할머니 옛날 얘기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너무 궁금하다. 빨리 해주세요. 아 잠깐만 이거 녹음해도 돼요? 그냥 할머니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어서.
작가가 그러고 싶으시다면 얼마든지.
나는 녹음기의 배터리와 전원을 확인하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
네? 무슨 일이요?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세상이 있었단다. 몇 명의 사람들만 빼고.
아…
이미 알고 있다는 반응이구나.
그런 건 아니고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긴 하는데, 지구평평설처럼 음모론으로 취급되고 있어요.
그래서 내 이야기 안 들을 테냐?
아니요! 해주세요.
정말 하루아침에 그런 일이 일어났어.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20% 정도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된 거야. 세상은 혼돈 그 자체였지. 밖에는 사고 난 차와 당황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다녔어. 마치 전쟁터 같았단다.
할머니는 시력을 잃지 않았어요?
응. 그래서 그 과정을 다 지켜봤지. 겨우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들의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의사들도 눈이 안 보이게 된 거야. 우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서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 그들은 보이는 사람과 안 보이는 사람의 차이를 찾기 시작했지.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몇 달이 지나도, 몇 년이 지나도 결국 그 이유를 찾지 못했어. 결국 신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버렸지. 그리고 세상은 마비가 되었어. 어쨌든 모든 일들은 중단이 되었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지. 세계가 멈췄으니까. 보이는 사람들 극소수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근데 그러면 약탈이라던지, 폭력을 써서 보이는 사람들이 우위를 가지게 되지는 않았나요?
너도 인간을 좋게 보지 않는구나.
인정하기 싫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넘처나니까요.
나는 지금생각하면 그게 시력을 잃은 사람들과 잃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어.
네? 도덕이요? 도덕을 잃지 않은 사람과 도덕을 잃은 사람의 차이라는 거예요?
아니 꼭 도덕이라는 것보다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마음이 단단한 사람들이었지. 정말 신기하게도 이 일이 있던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
만약 보이는 사람들만 세상에 살게 되었다면 유토피아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다는 말씀이세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내가 생각하기에 그때가 제일 혼돈스러우면서도 평화로웠으니까.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사람들은 점차 보이지 않는 세상에 적응해 갔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 사람들은 정말 쉽게 죽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지. 그 시대는 이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주가 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어. 보이는 사람들은 그들을 계속해서 도와주었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시대가 찾아왔단다.
진정한 사랑의 시대요?
원래 그때는 대부분 중매로 결혼했었는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집안이고 뭐고 신경도 못 쓰고 먹고살기 바빴던 시대였어. 돈이 있으면 뭐 하니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으면 돈 주고도 사 먹지 못하는 걸. 그 시대가 돈의 가치가 제일 하락한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어. 계급도 마찬가지고. 보이지 않는 시대가 몇 년 동안 지속되고 나서는 절반이상이 죽었으니까. 오히려 그렇게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어쩌면 잠시동안은 단단한 사회가 되었지. 그 속에서 사랑이 피어나기 시작한 거야.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그때 중매를 겪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말 진정한 사랑이었겠네요.
그렇지. 보이는 사람들끼리도 사랑했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과도 사랑을 했어. 외모도, 재산도 보지 않는 정말 진정한 사랑이었지. 너라면 지금 눈이 보이는 상황인데 외모도, 재산도 보지 않고 결혼할 수 있겠니?
아니요… 요즘에는 외모지상주의가 심한걸요. 어딘가 외모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정말 극소수지 않을까요?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네요. 책에서나 봤어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주인공… 저도 외모를 보니까요. 어쩌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랑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기 싫어했단다.
자신의 아이도 앞이 보이지 않을까 봐요?
그렇지. 그 사람들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알았던 거야. 그래서 출산율이 굉장히 낮았어.
그 시절 사람들이 아이를 낳기도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요? 그때는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나요? 그 당시는 아이를 노동력으로도 생각하고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꼭 낳아야 하는 존재였잖아요. 어쩌면 지금보다도 아이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나도 그게 놀라웠어. 무엇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결국 아이가 태어나기는 했지. 안타깝게도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앞을 볼 수 없었어. 그 부모는 절망하긴 했지만 열심히 키우더라고. 그런데…
잠깐만요, 할머니도 그런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은 거예요?
뭐, 그런 거지. 나는 그저 그들을 지켜보고 싶었을 뿐이야.
죄송해요 말 끊어서. 그런데요?
아이가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부터는 흐릿하게 세상이 보이더니 성인이 되고서 앞이 보이기 시작하더구나. 아이마다 눈을 뜨는 시기는 달랐지만 모든 아이들이 눈이 보이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드디어 신이 기도를 들어주기 시작했다고 난리였지. 믿기 힘들다는 눈치인데. 정말 믿거나 말거나다.
에이 아니에요~ 할머니말 당연히 믿죠. 그러면 다시 출산율이 높아졌겠네요?
그래.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고 아이를 많이 낳기 시작했어. 그리고 점차 다시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너도 볼 수 있지 않니?
그렇네요. 근데 그때 진정한 사랑을 했다면 왜 지금은 그런 사랑이 많지 않은 거죠? 왜 이렇게 외모지상주의가 심한 걸까요?
이유는 간단해. 다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나도 그들이 그런 시기를 겪었으면 평생을 그렇게 살 줄 알았어. 아이들이 보이지 않다가 보이게 된 것이니까. 보이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평생 마음속에 새기며 살 줄 알았지.
그런데 그렇지 못했군요.
맞아. 그 진정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더구나. 눈이 보이게 된 아이들은 점점 보이는 것에 휘둘리게 되었어. 그런 아이들이 또 아이를 낳고… 결국 원래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다시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지. ‘그 시대’를 직접 겪었던 사람들은 그들에게 반기를 들었지만, 앞이 보이지도 않고 늙은 사람들이 뭐 어쩌겠어. 그 당시 권력을 쥐고자 했던 아이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증거들을 찾아 불태웠단다. 그리고 그 시대를 역사에서 지워버린 거야. 그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으니 확실하게 남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단다. 그리고 아이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 시작했어.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버린 거지.
…
믿거나 말거나. 나는 이 이야기가 그저 오랫동안 남았으면 좋겠어. 너희들이 말하는, 마치 신화처럼 말이야.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어.
할머니 이 이야기 누구한테 한 번도 하신 적 없죠?
응.
왜 저한테만 해주시는 거예요?
만약 네가 그 시대에 있었다면 너는 눈이 보이는 사람이었을 거야.
네?
너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고. 이런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 기억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어. 지금처럼 계속해서 어둠 속을 들어가야 해.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만약 정말 안 보이게 만든 것이 신이라면, 나는 그들이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그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한 거지. 그들이 시력을 잃었던 이유는 자신의 어둠을 못 보며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잠깐이나마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었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고독을 느꼈기 때문이지. 말하자면 명상과 비슷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들은 그때 처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계속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래. 그들은 이미 자신의 깊은 내면에, 즉 그 어둠을 자유롭게 드나들던 사람들이었던 거야. 그리고 너도 그런 사람이고.
제가요?
글을 쓴다는 것은 명상과 같아. 글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기록하게 되지. 너는 기자보다는 작가에 가까워. 예전에 네가 보여주었던 글들 말이야. 내가 아주 감명 깊게 읽었어. 그리고 안도했지. 마음의 눈을 뜬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계속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 한 번 뜬다고 계속 보이는 건 아니야. 이 세상을 봐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고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니? 너는 그 어둠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해. 그러니 계속해서 글을 써. 명상하고 생각해. 이게 내가 돌아가기 전에 너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감사합니다. 할머니. 그 교훈 평생 잊지 않을게요.
저기요. 면회시간 다 끝났어요.
가봐야겠네요. 이야기 너무 재밌었어요. 저 내일 또 올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나는 할머니를 꽉 껴안았다. 그런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서늘함과 차가움이 느껴졌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할머니 왜 이렇게 몸이 차?
늙어서 그렇지 뭐. 어여 가.
나는 그렇게 요양원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녹음기를 틀었다.
…
하지만 녹음기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녹음이 되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이거 고장 났나? 어제까지만 해도 잘 됐는데. 어쩔 수 없지 뭐. 빨리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놔야지. 아 그리고 그 음모론에 대해서도 좀 찾아봐야겠다.
‘여러분 역사에 아무도 모르게 지워진 부분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약 150년 전 모두가 앞이 보이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 세계 곳곳에서 그런 시대가 존재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소통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똑같은 결말을 맞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약 150년 전? 할머니가 어렸을 때라고 해도 최대 100년 정도 일 텐데…아 이건 정확한 정보는 아니니까. 내일 할머니한테 가서 정확히 몇 살이신지 여쭤봐야겠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몇 살인지도 모르고 있었네. 왜 모르지?
다음날 아침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다미 씨 맞나요? 여기는 00 요양원입니다.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한밤중에 미수 할머니가 저희 몰래 나가셔서 안 돌아오고 계세요. 저희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요. 어떻게 나가셨는지도 모르겠고. 실종신고도 했는데 아직 못 찾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면회 오셨던 분이 다미 씨여서… 혹시 어디 계실지 짐작이라도 가는 데가 있으실까요?
네? 저도 어디로 가시는지는 모르겠는데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긴 했어요. 정말 어디를 가신다는 뜻인지는 몰랐는데… 혹시 CCTV에는 안 찍혔나요?
네. 진짜 이상한 게 딱 그날 CCTV가 다 고장 나 있었어요. 할머님 보호자도 없어서 정말 곤란해요.
보호자가 없다고요? 그런데 요양원을 어떻게…
할머님 들어오고 나서 요양원 사람들이 싹 바뀌어가지고 저희도 어떻게 들어오시게 되었고 돈을 누가 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좀 이상한 게 많아요.
일단 알겠습니다. 할머니 찾게 되면 꼭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뚝.
그리고 요양원에서는 연락 한 번 오지 않았다.
정말 그런 시대가 있었을까.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제일 많은 것을 볼 수 있던 시대. 지금 당장 모두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외모를 따지지 않는 세계가 올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는 날이 올까? 모두가 고독함과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과연 신화는 신화일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