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 치료제
유진 : 치료제
제조실의 무균 환경 안에서, 나는 은현철 박사님이 남긴 마지막 유산과 마주하고 있었다.
레시피 2.0.
아니. 레시피 2.0의 93퍼센트.
모니터에 펼쳐진 데이터 클러스터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수연의 뇌에서 추출한 데이터는 완전하지 않았다. 현철 박사님이 신세틱 링크로 각인한 원본은 정돈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년 동안 수연의 뇌는 살아 있었다. 신경가소성. 새로운 시냅스 연결이 원본 데이터 위에 겹겹이 쌓였다. 퇴적물 속에 묻힌 유물처럼 — 원래 형태가 변형돼 있었다.
복원율 93퍼센트. 나머지 7퍼센트는 빈 곳이었다. 단백질 접힘 패턴의 일부, 면역 회피 시퀀스의 후반부. 박사님의 논문과 기존 연구 데이터를 참조해서 추정으로 채웠다.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게 가장 무서웠다.
박사님이 돌아가시기 전,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준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해야 한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지수의 혈액 샘플을 원심분리기에서 꺼냈다. 미토콘드리아 DNA 시퀀싱 결과가 이미 모니터에 떠 있었다.
m.3243A>G 변이. MELAS. 지수의 어머니 강수아도 같은 변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모계 유전이니까.
변이율은 78퍼센트. 높았다. 뇌세포와 근육세포에 축적된 결함 미토콘드리아가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뇌부종은 그 결과였다.
시간이 없었다.
***
T-오가넬 기본 배양체를 냉동고에서 꺼냈다.
투명한 바이알 안에 담긴 나노 크기의 단백질 복합체. 결함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대체하여 세포와 공생하도록 설계된 인공 기관. 현철 박사님의 걸작이었다.
하지만 레시피 1.0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T-오가넬은 텔로미어를 수선하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그 에너지를 신경계의 전기 신호에서 끌어왔다. 숙주에게 끊임없이 강렬한 감각 자극을 요구했다. 감각 과부하. 시스템 스로틀링. 혜인에게 일어났던 일. 수연이 겪고 있는 일.
레시피 2.0은 달랐다.
박사님은 텔로미어 복구 기능을 완전히 비활성화했다. 영생 대신 치료를 선택한 것이다. T-오가넬이 요구하는 에너지량이 대폭 감소하고, 감각 증폭이 필요 없어진다. 부작용 없는 순수한 MELAS 치료제.
모니터에 레시피 2.0 알고리즘을 불러왔다. 단백질 접힘 패턴, 세포막 투과 경로, 면역 회피 시퀀스. 박사님의 3년간의 연구가 압축된 데이터였다. 7퍼센트의 빈 곳을 내 추정으로 메운 데이터.
배양기에 바이알을 넣고, 알고리즘 적용 명령을 입력했다.
배양 예상 시간: 32시간.
***
유리벽 너머로 수연이 보였다.
간이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때때로 지수의 중환자실 쪽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피로가 역력했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수연이 아니었다.
준우 같았다.
인터콤 버튼을 눌렀다.
"수연아."
수연이 고개를 들었다.
"왜?"
"밥 먹어. 자판기에서 뭐라도 사 와."
"괜찮아."
"괜찮지 않아.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어?"
수연이 잠시 생각했다. 대답이 없다는 건 기억이 안 난다는 뜻이었다.
"가서 먹어. 배양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
수연이 마지못해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나를 바라보았다.
"언니."
"응."
"고마워."
"아직 고마워할 거 없어. 끝나면 그때 해."
수연이 희미하게 웃었다. 문이 닫혔다.
***
배양기의 온도를 확인하고, 영양 배지 농도를 점검했다.
T-오가넬의 증식 속도는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텔로미어 복구 효소의 발현이 억제되고 있는 것이 데이터로 확인되었다.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아직 한 단계가 남아 있었다.
지수의 미토콘드리아 프로파일에 맞게 T-오가넬을 조정해야 했다. 면역 거부 반응을 피하려면 지수의 세포막 수용체 패턴과 T-오가넬의 표면 단백질이 정확히 맞아야 한다. 열쇠와 자물쇠처럼.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