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호사가 될 거예요.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by 김보준

“원래부터 간호사가 꿈이었어요?”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종종 받게 되는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뭔가 근사한 이유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 사실 처음부터 간호사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이팅게일과 마더 테레사 수녀님처럼 인류애와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명확한 꿈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운동을 남들보다 잘하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공부하기 싫어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던 내가 간호사가 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고3 때였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문과와 이과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나 분야가 명확히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과, 이과 어느 한 곳을 쉽사리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큰 고민 없이 주변의 친한 친구들을 따라 나도 이과를 선택했다. 그 후 이과 공부를 하게 되면서 생물과 같은 과학탐구 과목에서는 그나마 흥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이과의 핵심 과목인 수학은 전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수학을 공부하며 생각했다. 대학교에 갈 때는 꼭 수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학과를 선택해야겠다고. 물론 훗날 열심히 약물의 속도와 용량 계산을 하며 매일을 숫자와 함께 일하게 됐지만 말이다.


고3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이 없고 꿈도 없던 나에게도 어김없이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친구들이 명확한 꿈을 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나 혼자 앞으로 가지 못하고 어떠한 방향이나 갈피도 잡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런 스스로가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무런 목표나 꿈 없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아갈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내 미래에 대한 진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 기나긴 고민 끝에 내가 펼쳐든 것은 교과서가 아닌 대학입시 정보가 담긴 두툼한 책 한 권이었다. 전화번호부를 연상시키는 두꺼운 책 속에는 전국에 있는 수많은 대학교의 입시 정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전국에는 많은 대학교들과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학과들이 있었다. 나는 마치 재미난 소설책이라도 읽는 것처럼 집중해서 책에 나와 있는 학과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갔다. 수학과 관련된 학과를 제외하고 찾다 보니 자연스레 공대에 속해 있는 학과는 나의 대학 지원 선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선택지를 하나 둘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가고 싶은 학과들이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선택지를 지워나가다가 맨 마지막에 남게 된 것이 바로 ‘간호학과’였다.


이것을 계기로 나는 간호학과라는 곳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간호학과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은 신기함이었다.


“남자인데 간호학과에 가려고?”


지금은 간호학과에 지원하는 남성들의 비율이 매해 높아지면서 많은 남자 간호사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그 당시에는 남자가 간호학과에 지원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간호학과, 간호사라는 직업은 여자들만의 전유물로 생각되곤 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자라고 못할 것도 없고 여자라고 잘할 것도 없지 않은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무엇인가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그해에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간호학과를 지원한 남학생은 나를 포함해 단 3명뿐이었다.


간호학과로의 진학을 결정한 후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하나 둘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나는 간호사라고 하면 그저 아플 때 병원에 가면 엉덩이에 주사를 놓아 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제로 간호사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의료분야에서 폭넓게 전문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3교대의 교대 근무 특성상 업무 강도가 강해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직업이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의사와 함께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 내는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그렇게 나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됐고 간호사가 되겠다는 내 결심에 대해 점점 더 마음을 굳히고 확신을 가지게 됐다.


사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공부를 썩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에 대한 목표 의식이 없었고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결승선을 모르고 달리는 마라토너는 금방 의지를 상실하고 지쳐 버리기 마련이다. 목표 없는 공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얼마가지 않아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 버렸다. 그 대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컴퓨터 게임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다. 게임에 빠져 있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고 게임 속의 캐릭터 레벨이 높아지는 속도만큼이나 성적은 끊임없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학원을 다녔지만 의지가 없는 나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중학교 입학 후 받은 첫 시험 성적표에 적힌 한 자리의 석차가 세 자리로 바뀌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호학과 입학’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나서부터는 공부도 더 집중해서 할 수 있었다.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었고 어떤 곳을 보고 달려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노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열정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방황하던 중학교 때의 기나긴 학업의 공백을 메우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고, 기초가 많이 부족한 탓에 성적은 마음처럼 쉽게 올라주지 않았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간호학과는 그 당시에도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입시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학과 중에 하나였기에 합격을 위한 평균 점수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간호학과 입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간호학과를 노려 볼 만큼의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책.jpg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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