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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흐 Apr 26. 2017

내가 걸어가는 길

세상은 이화에게 물었고, 이화는 그대를 답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속에 있을 땐 좋은지 모른다.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런 것 같다. 특히 학교는 졸업한 지금 떠올려보면 참으로 버팀목이 되는 것 같다.



무거운 그 이름

그 당시에는 너무 싫었다. 나는 이 학교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무거웠고, 주위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내가 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타짜의 '나 이대나온 여자야'가 한창 유머(?)로 돌때여서 더 그랬다. 시덥잖은 유머가 싫었고 학교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틀도 싫었다. 그리 예쁜 모습으로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학구적으로 공부를 잘한것도 아니었고(열심히 했지만 나는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아니 이대애들은 무서울만큼 공부한다. 혀를 내두를만큼 대단한 아이들이었다) 해외로 멋지게 어학연수를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누군가 묻지 않으면 굳이 학교를 밝히지 않았다. 졸업하고도 취업할때도 학교는 무겁기만 했다.


정체성과 버팀목

나는 2013년에 졸업했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나는 학교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총장님!

전교생에게 보낸 형식적인 문자였을 것이다. 그저그런 문자였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문자를 가지고 있다. 힘들때마다 꺼내어 본다.


이화인 여러분,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계획하는 일에 열중하는 방학을 보내세요.


이화는 그런 곳이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계획하고 꿈꾸고 열중하는 곳. 항상 뜨거웠고 불탔다. 학교 정독실에서, 방에서, 도서관에서, 혹은 시험 전 화장실에서. 과제와 발제, 시험들. 커피와 함께 밤을 하얗게 새며 몸으로 보냈던 그 시간은 나에게 이화를 남겨주었다.


가끔 선배들이 이화는 졸업하고 더 애정이 생기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졸업하고도 당장은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제는 몸으로 닿는다. 세상에서 부딪치고 넘어지고 좌절해서, 나에 대한 믿음과 내가 걸어온 길이 부정되는 것 같을 때, 그때 이화가 내 버팀목이 되어준다.


입학할 때, 누군가는 '시집 잘가겠네'라고 일축했던 이화는, 사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전업주부로 살든 워킹맘으로 살든, 어떻든 상관 없이 그저 이화답게 사는 것을 지지한다.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바르다고 믿는 빛나는 삶을 살게 한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이화가 있어서 고맙고 또 고맙다. 오늘도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이화를 떠올린다.


그래서 일부로 시간을 내어 이화에 가서 기념품을 사왔다. 그때 사온 파일이며 엽서 등은 볼때마다 리프레시가 된다.




내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

그래도 돌아보면 내가 꿈꾸고 생각한 대로 걷고있다.

첫 연애, 첫 취업, 내가 살 집을 구할 때, 모두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항상 혼란스럽고 감정이 많이 들어가게 되는데, 정리가 되면 아주 가볍고 이성적으로 변해서 한큐에 해결하곤 했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고집스럽고 꽤 강하고 뚝심이 있는 것 같다.(이 나이가 되도록 아무것도 없는 게 이상하긴 하다)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게 조금은 가볍게 움직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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