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입사한 사촌 동생이 울먹이며 말했다. 상사는 친절하지 않고, 털어놓을 곳도 없어 출근이 무섭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6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 역시 첫 직장에서 매일이 두려웠다. 상사는 감정 기복이 심해 버럭 화를 내기 일쑤였다. 신입이던 나는 기 죽은 채 하고 싶은 말도 꼭 눌러 삼키는 게 최선이었다. 전략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오기로 버텼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니 내가 조언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고심 끝에 떠오른 말은 단 하나였다.
“눈 딱 감고 2년만 버텨봐. 상황도, 상사도 다르게 보일 거야.”
딱 2년이 지나자 달라졌다. 덜 상처받는 태도 같은 게 생겼다. 무례한 말에 침묵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건 흘려보낼 수 있게 됐다. 관계가 아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도 그쯤부터였다. 하지만 동생에게 해준 말이 정말 위로가 되었을까? 그 시절 나는 그저 여기서 멈추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겁쟁이에 불과했다. 그래서 어떤 확신도 없이 떠올린 말이었다.
며칠 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게시글을 봤다. 한 학부생이 택시 기사님과 나눈 대화였다. 기사님은 2년만 지나면 울지 않고 세상에 대들며 살 수 있을 거라 했다. 그 말이 흔한 위로처럼 들리진 않았다. 오히려 2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게 같은 게 느껴졌다.
회사 생활은 온보딩, 관찰, 적응, 기여라는 사이클로 돌아간다. 그 중 ‘적응’과 ‘기여’ 사이의 문턱은 대개 18개월에서 24개월 즈음에 찾아온다. 이 시기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다. 처음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관계의 역학과 조직 안에서 나의 위치를 실감하게 된다. 2년은 그 모든 걸 받아들이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신기하게도 이직한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 역시 비슷한 시절을 지나왔다고 했다. 시작부터 하드코어였다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어쨌든 그 시절을 겪어온 우리는 버틴 사람이 아닌 바뀐 사람이었다. 그 변화가 성장이라 불리든 단련이라 불리든 말이다.
그래서 흔들리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마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가 상처받고 있다면 이 말을 건네고 싶다.
2년만 지나면 생각보다 많은 게 바뀐다고.
무조건 버티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어떤 시기는 지나가기만 해도 무언가룰 조금씩 바꾼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editor 승
아직은 철없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고픈 에디터 5년차. 결혼 등을 이유로 독립하는 친구들을 애써 외면하는 3n년차 캥거루족이다. 독립은 미뤘지만 불안과 동거하며 눈치껏 성장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