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앞에 다시 서는 사람

by 루바토 노트


모두가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외치던 시절이었다.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축구팀 덕분에 그 말은 일종의 주문처럼 퍼졌고, 나같은 취준생은 진짜로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 덕분인지도 모른다. “축구처럼 회사도 골문만 계속 두드리면 돼. 그럼 결국 골 들어가잖아.” 진짜 그런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계속 두드리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 에디터 시절, 인터뷰 섭외는 진짜 ‘골문 두드리기’였다. 그 중에서도 한 인플루언서 작가가 기억에 남는다. 대기업 협업, 전시, 셀럽 팬덤까지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인물이었다. 왠지 이번이 아니면 늦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소속사에 전화하고, 공문을 보내고, 개인 연락처도 수소문했다.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다. 주변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총동원해 보낸 DM만 해도 10개는 족히 됐을 것이다. 멀리서보면 조금은 무서운 집착이었을 수도..


마감을 해본 사람은 안다. 하루가 얼마나 숨 가쁘게 지나가는지. 나는 매일 조급함을 숨긴 채, 자연스럽지만 간절하게 다른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보름이 흘렀다. 체념 끝에 다른 인터뷰이를 찾기로 마음먹은 어느 아침,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인터뷰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좋다며 답장을 보내던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짧은 에디터 인생을 통틀어 보자면, 오랜 기다림 끝에 긍정적인 답변을 받는 건 기적 같은 일이긴 하다. 실제로는 더 많은 '정중한 거절'을 겪는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말로,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가 보는 것. 그게 에디터의 섭외력이고, 결국엔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매체의 정체성보다 진솔한 마음이 더 가까이 가닿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마음만 조급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신입 시절을 지나왔다. 지금은 ‘어떤 매체에서’, ‘왜 연락을 드리는지’를 한두 문장 안에 설명할 여유가 생겼다. 상대의 차가운 반응에도 상처받지 않은 척 하던 말을 이어갈 수도 있다.


처음엔 정중하게 다듬은 공문으로, 두 번째 연락에선 팬심까지 슬쩍 고백해본다. “오래 전부터 만나뵙고 싶었고, 당신의 가치 있는 행보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진심을 덧붙인다. 조금은 뻔하지만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레퍼토리다.


에디터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다.

어떤 날은 열리고, 어떤 날은 소리 소문 없이 닫히지만 중요한 건 계속 두드리는 행위일 것이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서너 번의 거절을 감수하고, 그럼에도 다시 손을 뻗는 일.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고, 내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다.





editor 승

아직은 철없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고픈 에디터 5년차. 결혼 등을 이유로 독립하는 친구들을 애써 외면하는 3n년차 캥거루족이다. 독립은 미뤘지만 불안과 동거하며 눈치껏 성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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