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만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면

by 루바토 노트


“보셨죠. 저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 입사 기수가 제일 높은데, 제일 막내 같잖아요.”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길, 디자이너가 내게 건넨 말이다. 나는 퇴사 후, 한 스타트업에 블로그 운영을 도우러 프리랜서로 합류했다. 그리고 지금은 콘텐츠팀 리더를 맡아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의학 지식과 AI 기술로 시작한 회사였기에 콘텐츠나 디자인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프리랜서인 나에게 디자이너나 영상 제작자들은 회사의 문제나 불만을 편하게 털어놓는 일이 잦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민을 알게 되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니, 어느새 리더가 되어 있었다.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콘텐츠 제작팀에만 10년 가까이 있어온 사람으로서 너무나 공감되었다. 같이 분노했고, 함께 해결하고 싶었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리더 회의에 처음 들어간 날, 나는 알게 되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시스템의 부재가 아니었다는 걸.


갈등. 갈등을 피하려 했기에 생긴 문제였다.


콘텐츠 제작은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일이다. 제품을 기획한 사람,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 콘텐츠를 기획한 사람의 손과 발이 되어 촬영하고, 디자인하고, 결과물을 만든다. 누구나 멋진 결과물을 원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나 영상 편집자에게 너도나도 부탁을 하게 된다. 막내일 때는 괜찮다. 시키는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포트폴리오가 쌓이고, 스스로 성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3년 차쯤 되면 생각이 바뀐다. '나는 왜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지?' 회사 일이란 결국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제작자들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게 되고,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분별하게 된다. 후임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시점이 오기도 한다.


내가 만난 스타트업 동료들은 이미 그 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회의에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수없이 이야기했던 방법들이고, 반복되는 비효율적인 문제들이 주제로 나오는데도,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이런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제안하자 회의의 흐름이 바뀌었고, 모두가 좋은 아이디어라며 일의 방식도 바뀌었다.


왜 회의에서 의견을 내지 않았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저만 참으면 되는 문제잖아요.”


과연, 회사 일이라는 게 ‘나만 참으면 되는 문제’가 있을까? 내가 불편한 문제를 참고 지나가면, 결국 그 문제는 누군가의 짐이 된다. 일의 목적은 하나이고, 우리는 모두 그 하나를 향해 힘을 모으는 사람들인데, ‘참는 것’으로 해결되길 바라는 건 판타지에 가깝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갈등을 피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을 계속 찾아가는 일이다. 문제라고 생각이 들면, 피하지 말고 파고들어 해결해야 한다. 특히나 반복되는 문제에 지쳐 있다면, 퇴사나 이직을 고민하기 전에 회의 시간에 그 이야기를 꺼내보길 바란다.


성장통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대화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풀다 보면 다음은 조금 더 쉬워진다. 혹시 지금, ‘왜 이 문제가계속 반복되지?’ ‘왜 나만 참고 있는 것 같지?’ 라는 생각에 지쳐있다면 한 번 돌아보자.

이 문제, 내가 제기해본 적 있었나?





editor 큐

10년간 회사를 위해 글을 쓰다, 다음 10년은 나와 가족을 위한 글을 쓰기로 했다.
글로 먹고사는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도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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