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한 거 없어요?

by 루바토 노트


창의력은 종종 과대평가된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 모두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일을 풀어내는 사람. 조직은 이런 천재성에 끌린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런 기대 앞에서 주눅 들곤 한다. 특히나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야 겨우 의견을 내는 나는 스스로를 창의력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회사가 말하는 창의력은 꼭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능력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조직 안에서 ‘다르게 보기’와 ‘조금 더 나은 방식 찾기’ 또한 창의력의 일부였다.


한 번은 팀에서 신규 콘텐츠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때였다. 이미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했고, 이렇다 할 아이디어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최근 영상 콘텐츠에서 자주 쓰이는 포맷을 텍스트 콘텐츠에 적용해보는 방식을 제안했다. 당시 회의에서 그 아이디어를 꺼낼 때만 해도 망설임이 컸다. 눈에 띄게 참신한 것도 아니었고, 가볍게 보이진 않을까 걱정도 됐다. 뜻밖에도 팀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아주 작은 제안이었지만, 정체된 논의의 흐름을 환기시키는 데는 충분했다.


우리는 종종 창의력을 선천적이고 타고난 감각과 연결지어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하는 건 그런 순간보다 일의 흐름을 약간 비틀어보는 시도에 가깝다. 그렇기에 화려한 아이디어는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업무 안에서 구조를 파악하고, 흐름을 읽고, 그 안에서 필요한 언어를 찾아내는 일은 분명히 존재한다.

잠시 멈춰 상황을 이해하고, 관성적으로 굴러가는 흐름을 바라보자. 꼭 돋보일 필요는 없다. 눈에 띄어야하고 완전히 새로워야만 한다는 기대는 오히려 실용적인 시도를 가로막기도 한다.


회사가 진짜로 기대하는 건 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 있다.

지금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을 다시 들여다보자. 충분히 괜찮은 시도를 놓치기 전에.





editor 승

아직은 철없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고픈 에디터 5년차. 결혼 등을 이유로 독립하는 친구들을 애써 외면하는 3n년차 캥거루족이다. 독립은 미뤘지만 불안과 동거하며 눈치껏 성장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