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배정받은 인터뷰 일정이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 당일, 인터뷰이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를 두 시간, 대뜸 전화를 걸어온 그는 ‘지금 바쁘니 당신이 이리로 오라’며 낯선 주소를 불러줬다. 다시 찾아간 장소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본체만체하며 나를 맞이한 인터뷰이는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로 나를 안내했다.
“거, 내가 어제 전화 받고 나서 그쪽 매체를 찾아봤는데.. 다른 데서 했던 거랑 비슷하더라고. 이런 거 관심 없으니까 그냥 가요.”
이럴 거면 미리 안 만난다고 말이나 해주던가. 인터뷰이는 굳이 나를 불러 앉혀놓고 갖은 모욕을 줬다. 그에게 건넨 명함과 매거진은 이미 책상 모퉁이로 밀려나 있었다. 여러 이유를 들어 재차 설득했지만 그는 끝끝내 인터뷰를 거절했다.
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밤새워 준비한 질문지가 떠올라 속이 쓰렸지만, 플랜 A가 망했으면 빨리 B로 틀어야지. 밥이라도 얻어먹고 인터뷰할 만한 다른 사람 소개해달라고 해야겠다! 자신의 공간에서 얼른 나를 치워버리려는 인터뷰이에게 나는 ‘여기까지 불러놓고 그냥 보내실 거냐‘며 아득바득 그의 차에 올라탔다.
식사 자리에서도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 쉼 없이 오가는 그들만의 대화에 언제 끼어들지만 노리기를 한참. 어느 순간 ‘이런 거 관심 없다’던 그의 ‘진짜 관심’이 무엇인지 들리기 시작했다. 곧장 수첩과 펜을 꺼내 들고 녹음기를 켰다. 손은 대화의 키워드를 받아 적고, 귀로는 그가 늘어놓는 말의 요지를 주워 담았다. “기사 내보낼 필요 없다”며 그는 연신 손을 휘저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신나게 대화를 받아 적었다.
다음 날 오전 기사가 완성됐다. 디자인 작업까지 거쳐 최대한 완성본에 가까운 그림을 인터뷰이에게 전송했다. ‘이런 문제는 대중의 관심과 공감대가 필요한데, 그 일에 저희 매체를 활용하시면 어떨까요? 어제 말씀하신 내용은 기사에 전부 담았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여서. 반나절 후 그에게 답장이 왔다.
[기자님 말대로 하시죠.]
‘사람들은 직접 보기 전까진 자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고 했던가. 이렇듯 설득은 말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결과로 완성되기도 한다. 당사자조차 몰랐던 마음속 이야기를 먼저 읽어내는 사람. 그 이야기에 형태를 부여해 세상에 건네는 사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포착해 기록으로 설득하는 사람. 나는 나의 일을 이렇게 정의 내린다.
editor 빈
언론사 기자와 사보 에디터로 6년간 일하며 살아있는 목소리가 담긴 콘텐츠를 만들어왔습니다. 서울을 탈출하고픈 30대 여성의 싱글라이프를 기록하며 일상 속 스쳐가는 생각과 감정들을 붙잡아두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