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집에 있으면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즐기는 편인데, 가끔 사람들 만나서 수다 떠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모임이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다시 활발해졌다. 역시 사람은 직접 만나 서로 얼굴 보면서 대화를 나눠야 제맛인가 보다.
내가 참여하는 모임 중에 나보다 한참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임도 있다. 내가 끼어있어서 평균 나이 50대가 되어버린 이모임의 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나이를 잊게 된다. 심지어 내 아들과는 두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친구도 있다. 나는 이 모임에서 '언니'로 통하는데
'언니~, 아드님 장가 안 보내요? 두어 살 연상도 괜찮다면 내 친구 하나 소개해 드릴까요? 진짜 괜찮은 앤 데.'
10여 년을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이런 대화도 가능해진다.
어느 정도냐 하면 엊그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 모임에 친구 하나가 외국으로 발령이 난 남편 따라 나가 살고 있는데, 아이 방학에 맞춰 한국에 들어왔다길래오랜만에 모임을가졌다.
모처럼 만난 여자들의 수다는 외국에 살면서 지내는 동네 사람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이야기, 그리고 사회적 이슈까지 레퍼토리도 다양했는데 나하고는 상관도 없는 피임 이야기까지 나왔다. 아마도 원치 않는 임신 때문에 범죄가 저질러지는 사회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것 같은데 새로 나온 피임도구가 그렇게나 편하다는 것이다.
이 젊은 친구가 지금 직접 사용하고 있는데 너무 좋다며 장점들을 나열하니 귀를 쫑긋 하며 듣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하마터면 나도 사용하고 싶어질 뻔했다. ㅠㅠ
젊은 친구들은 환갑 진갑 한참 넘은 이 왕언니가 앞에 있음을 잊은 건지, 내가 내 나이를 잊고 그들 대화에 동화되어 있는 건지 아무튼 격의 없이 지내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약 10여 년 전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IT 교육장소에서 함께 공부했던 이 친구들과 만나면 역시나 주로 나누는 대화가 정보기술 분야라던가 IT사업에 관한 관심사가 대부분이라 나이와는 크게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 배웠던 공부를 응용해 IT교육 강사로 혹은 유명 블로거로 그리고 온라인 몰을 운영하는 대표로 활약하는 이 친구들이 나이도 많은 이 언니를 모임에 꼭꼭 불러준다. 그것이 고마워 나이 들수록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선지자의 말씀을 실천이라도 하려 들면 정확하게 엔 분의 일을 해야 한다며 말리는이성파들이기도 하다.
그날 모임에서 내가 메타버스에 관한 얘기를 소설로 쓰고 있는 중인데 어떨지 내용을 말해주면서 조언을 구했더니 IT전문가들답게 관련 서적도 소개해주는 등 도움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니, 우리 엄마가 언니보다 겨우 두 살이 더 많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우리 엄마는 할머니 같고 언니는 그냥 언니 같아요.ㅋㅋ'
젊은 그 친구가 했던 이 말이 꽤 설득력 있게 들려서 나는 그대로 믿기로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한다면 똑같이 주어진 인생이지만 그만큼 세상을 더 넓게 많이 살아갈 수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