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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Jul 17. 2016

맏딸 콤플렉스

못난이 굽은 소나무

엄마에게 다녀온 지 열흘도 넘었다.

처음 요양원에 오면 자식들이 자주 들여다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뜸해진다더니 내가 딱 그렇다.

오늘은 모처럼 시간이 났으니 엄마에게 면회 가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엄마가 요양원에 편안하게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니 이젠 내가 느긋해졌다. 느긋해지다 못해 엄마에 대한 서운했던 감정까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오늘 부엌에서 음식 장만을 하며 칼질을 하다가 문득 스친 기억만 해도 그렇다.

그러니까 20년도 넘은 그 일에 아직도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은걸 보면 나도 뒤끝이 꽤 있는 편인가 보다.

엄마가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을 때인데 내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부엌칼을 사용하면서 무뎌서 잘 들지 않자 무심코 말했었다.

"독일제 쌍둥이칼이 그렇게 좋대. 나도 하나 사서 쓰고 싶은데 워낙 비싸서.."

엄마는 그래? 하면서 무심히 흘려듣는 것 같았다.

그 후 명절에 친정식구들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바로 그 쌍둥이칼 얘기가 나왔다.

어머니가 사다주신 칼이 너무 잘 들어 무섭기까지 하다는 둥 올케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듣자 하니 직장에 다니느라 음식을 잘해먹지 않는 여동생한테도 그 비싼 쌍둥이칼을  칼갈이까지 세트로 사주셨단다. 정작 정보를 제공한 나만 쏙 빼고 말이다.

내가 엄마한테 서운하다고 따지자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신다.

" 네가 사서 쓰면 되잖니 "

아마도 엄마는 아직 살림이 서툰 올케들과 여동생에게 좋은 연장을 사다 줘서 요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나 보다.

좋은 칼을 잘 아는 나는 따로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사다 쓰겠지 싶었나 본데 그게 무척 서운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유독 나한테만 인색했던 엄마의 사랑을 다 싸잡아서 항의했다. 생각해보니 다른 형제들은 다 똑똑하고 잘 나가는데 나만 못나서 차별하는 것  같다고 마구 퍼부으면서 말이다. 엄마는 지가 못나 그런 걸 가지고 왜 따지냐고 오히려 면박을 주어 나는 정말 깊은 상처를 받았다.

다시는 엄마 얼굴 보지 않겠다고 작심할 정도로 엄마와 멀어졌는데 엄마가 심장수술을 하는 등 아프면서 엄마는 내 차지가 됐다.

다들 바쁜 사람들이라 엄마를 돌볼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이다.

엄마가 몸을 회복하고 혼자 생활하시면서 반찬 해나르기, 병원 모시고 가기 등 내가 가장 많은 도움을 드리는데도 나한테는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어쩌다 한 번 다른 형제가 와서 모실라치면 바쁜 사람이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서 어떡하냐고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하신다.

그 모든 게 못마땅하면서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나도 참 한심했다.  아마 내가 아니면 누군가가 했을 텐데도 나 스스로 벗어나질 못했으니 누굴 원망하랴.

엄마가 하도 나만 부려먹기에 내가 정말 엄마 딸이 맞나 의심할 정도로 엄마는 나를 다른 형제들과 차별했다.

언젠가 심리학 책에서 읽었는데 엄마가 맏딸에게서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생각해보니  엄마에게는 불만이 많았지만  동생들은 어쩐지 내가 돌봐야 할 아이들만 같아서 애틋한 마음이 먼저였던 것 같다.

엄마가 나와 내 동생들을 달리 여긴 것이, 그러니까 그런 맥락이었단 말인가.

동생들이 소풍날 내가 싸준 김밥이 더 맛있고 예쁘다고 가져간 것에도 엄마는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걸까. 요즘 와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이 많아졌는데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기처럼 마냥 해맑은 모습이다. 엄마의 자리를 나한테 떠맡겨 버리고 말이다.

차라리 선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가 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엄마가 그렇게도 편애했던 오빠는 이세상에 없고 다른 형제들도 외국에 나가있는 등 엄마를 돌보고 있는 사람은 어차피 나밖에 없다.

평생 맏딸로 살아온 나도 이젠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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